▲조덕영 박사.
(Photo : ) ▲조덕영 박사.

 

1. 다윗의 시편 8편

 

다윗은 시편 8편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상에 나타난 그의 위엄과 아름다움과 영광을 노래한다. 심지어 다윗은 창조주께서 어린 아이와 젖먹이를 통해서도 찬양하게 하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예수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양한 아이들을 분하게 여기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이 구절(시 8:3)을 인용하면서 책망하고 있다(마 21:16). 다윗은 아이들의 이 장면을 보고 주의 원수들이 부끄러워 잠잠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믿음이 단순히 하나님이나 성경에 대한 지식에 있는 게 아님을 시편 8편은 보여준다.

2. 창조 세상을 찬양한 다윗

다윗의 찬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윗은 주님이 만드신 하늘과 그곳에 펼쳐진 달과 별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만 감격에 겨워 주께서 왜 사람을 생각하고 인자(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돌보시는 것인지 감탄하면서 인간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창조주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다스리게 하고 모든 가축과 들짐승, 공중의 새와 물고기, 모든 바다 생물이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한 것을 찬양한다. 늘 구속의 주를 찬양한 다윗은 실은 누구보다 주님의 세상(창조 세상)을 찬양한 사람이었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목자 출신이다. 그는 목자로 늘 양을 돌보고 때로는 밤을 지새며 깨달은 밤하늘의 위대한 신비에 성령께서 주신 깊은 사색과 감탄의 경험담을 시편 8편뿐 아니라 여러 시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3. 천사보다 조금 못한 사람(시 8:5)

그렇다면 이 인간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일까 아니면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일까? 우리 개역성경은 인간이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시 8:5)라고 번역하였다. 이것은 헬라어 역본인 70인 역(Septuagint)이 이 단어를 "천사들"로 번역한 것에 기인한다. 이 외에도 시리아 구약성경, 아람어 탈굼, 벌게이트역 등이 그러하다. KJV도 70인 역을 따라 이 단어를 "천사"로 번역하였다. NIV도 "heavenly beings"로 표현하여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여기에 준하여 현대인의 성경도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칼빈이 말한 것처럼 이 "천사"란 말의 히브리 원어는 "엘로힘"(하나님)이다. 이 단어를 왜 70인 역을 비롯한 여러 역본들은 "천사들"("앙겔로스")로 바꾼 것일까? 계시의 책 성경은 함부로 단어나 문맥을 바꿀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무언가 번역 상 문제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히브리어, 헬라어 전문가들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왜 "엘로힘"(하나님)을 "천사들"로 번역하여 인간이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표현한 것일까?? 당시 상황을 기록한 자료가 없으니 명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박윤선 목사는 주석에서 엘로힘을 천사로 번역함이 문맥에 함당하다고 보는 학설의 이유에 대해 "다윗은 이 시에서 하나님을 2인칭으로 불러서 "당신님"(우리 성경에 주)이라 하였고(시편 8: 4) 하나님(엘로힘)이라 하지 않은 까닭"이라 했다. 사실 구약 성경에는 이곳 말고도 "엘로힘"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 표현한 구절들이 있다(시 82: 6 참조). 그런데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시편(시 8: 4-6)을 인자를 중심으로 한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를 천사보다 잠간 못하게 하신 의미로 인용하였다(히 2:6-9). 그렇다면 70인 역이 "엘로힘"을 "천사"로 번역한 의도가 이해된다.

4.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사람(시 8:5)

그러면 개역 성경의 개정판인 개역 개정 성경은 왜 인간을 천사가 아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환원한 것일까? 히브리 본문에 더 충실하려는 의도였다고 보여 진다. 아퀼라역(Aquils), 심마쿠스역(Symmachus) 등 여러 역본들이 이 히브리 원문을 따랐다. RSV도 이 구절(시 8:5)의 "천사"를 "하나님"으로 환원하였다. 이렇게 구약에 대한 히브리적 시각이 바른 성경 번역의 원리이기는 하나 때로는 본 구절처럼 동일한 구절에 대한 전혀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번역으로 말미암아 성경 독자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경우가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천사와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시고(창 1:26-27) 피조세계의 생명체들을 주관하는 청지기가 되게 하셨다는 점이다. 구약의 관점 안에서 보면 인간이 연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표현한 것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구절은 굳이 "천사"로 번역되지 않아도 히브리 기자에 의해 기독론적으로 해석되면서 성경 독자들은 "엘로힘"과 "천사" 사이에 있는 이 구절이 지닌 해석상의 미스터리를 자연스럽게 풀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개역 개정 성경이 히브리 본문에 충실하고자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수정한 것은 번역의 정도를 따른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 부족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시 8:5 후반절).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평택대 신학부 겸임교수,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