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환 원로목사가 김하나 목사에게 안수기도하고 있다

(Photo : ) ▲김삼환 원로목사가 김하나 목사에게 안수기도하고 있다

최근 명성교회에 대한 예장 통합 총회 재판국의 판결을 비난하는 '격문'이 나돌고 있다. 장신대 교수 58명이 서명한 글이다. 담임목사직 부자 계승/세습이 정당하다는 총회 재판국의 결정을 "신사참배 결의에 버금가는 판결"이라고 한다. 신사참배 결의 건과 목사직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이 비유는 수사적인 표현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지나친 감이 있다.

신사참배 결정은 교회 대표자들이 솔선수범한 성지(聖地, 일본) 순례와 일본 안의 신사방문과 참배, 신사참배 권유운동, 백귀난행의 친일 행각, 해방 후 친일파 인사들의 참회 거부와 교회 장악 등으로 이어졌다. 신사참배는 기독교 정체성과 민족성을 동시에 포기한, 사실상 배교 행위였다.

촛불이 꺼져가는 시점에 다행히 신사참배 거부운동이라는 작은 그룹이 경남, 평안, 만주 등지에서, 장춘, 평양, 청주 등지의 감옥에서 나오면서, 보편성, 사도성, 거룩성, 단일성을 가진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신앙고백서 '장로교인 언약(1940)'의 가치는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 신학선언(1934)'을 능가한다.

예장 통합은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교단이다. 통합 교단이 운영하는 장신대 교수들의 위 격문은 시대의 변화와 단호함 그리고 기백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사참배 건과 명성교회 건을 동일한 선상에 두는 표현은, 신사참배 사건의 심각성을 가볍게 여겨 교회와 대중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으로 각인시킬 소지가 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진가를 희석시켜 과소평가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장신대 학생들은 명성교회의 교단 탈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어느 유명인 목사는 계승/세습 관계자들에게 교단을 떠나라고 권한다.

예장 통합은 장로회 헌법에 따라 움직이는 신앙 공동체 조직이다. 교회의 결정이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히'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자신들이 교단, 교회를 탈퇴하는 것이 옳다. '기독교인의 자유' 원칙에 따르면 된다. 다른 구성원 또는 회원 교회의 탈퇴를 요구하는 것은 장로회 질서와 교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회의 결정이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히' 불일치할 때, 기독인은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교회의 다스림에 순종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명백히' 성경의 가르침에 불일치할 경우뿐이다. 교회 구성원은 자기 교회의 결정에 순종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개혁교회는 중세교회가 저지른 실수를 방지하려고 교회 헌법에 '자유' 조항을 도입했다. 제31조는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하게' 위반되는 무엇을 결정하고 시행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때, 교인은 그것에서 자유(liberation)할 수 있음을 명시한다. 교회의 결정과 가르침이 성경과 불일치하는 경우, 기독인은 우선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명성교회 세교모 세습
▲장신대 일부 교수들의 '격문'.

네덜란드개혁교회(자유파)는 이 조항에 근거하여 1940년대 독자적 교회로 출발했다. 중세기 교회의 횡포에 맞서 기존 교회를 이탈하는 일, 곧 진리성에 따른 교회 구성은 분리주의 교회관과 무관하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교회(공의회, 총회, 대회, 노회 포함)가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있고 또 범해 왔음을 지적하고, 교회라고 하는 조직체의 결정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신앙과 생활에 도움을 주는 보조 수단이라고 한다.

"사도시대 이후 교회의 모든 총회(Synod)와 공의회(Council)는 보편공의회이든 지역회의든지 간에 과오를 범할 수 있으며, 여러 번 과오를 범했다. 그러므로 교회회의의 결정을 신앙과 생활의 법칙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에 도움을 주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31조 4항).

'위대한 이단자들'의 발자취는 총회, 공의회라는 교회 조직체가 오류, 실수, 범죄를 저질러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교회는 종종 상을 주어야 할 자에게 벌을 주었다. 정통신앙인을 화형에 처했다. 목사직을 면직, 정직시켜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나라 사역 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재판을 받고 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재판석에 앉아 의로운 사람들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내몰고 박해했다.

장로교회 정치원리는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 원칙'을 서술하면서 교회의 결정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표방한다. "양심의 주재자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양심의 자유를 주어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거나 탈선되는 사람이나 집단의 명령과 교리를 받지 않도록 하셨다. 누구든지 신앙에 관계되는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자의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아무도 침해하지 못한다(장로교정치원리, 제1조)."

교회가 그동안 무슨 과오를 범했다는 말인가? 로마가톨릭교회 교황은 제2천년기를 시작하는 2000년에 교회가 과거에 저지른 흉악한 잘못과 잔인함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참회고백을 한 적이 있다.

신자들의 참회고백을 들어주기만 해 오던 그리스도가 세상을 향하여 멍석을 깔고 석고대죄를 한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프랑스가톨릭교회는 1997년에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에 대한 참회선언을 했다. 일본교회들도 참회고백문을 발표했다.

독일인 카를하인츠 데쉬너는 『기독교 범죄사(Kriminalgeschichte des Christentums, 1986-2013)』에서 교회와 성직자들이 저질러온 오류와 범죄를 나열한다. 기독교가 선한 일만 해 왔거나 사랑과 평화의 종교이며 윤리적 이상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면만 가진 종교라는 그릇된 이해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데쉬너는 기독교가 2000년 동안 범한 죄악의 역사 기술에 자기의 생애를 바친 역사가이다. 교회가 성직매매, 성물매매, 고리대금업을 했고, 그릇된 외교정책, 교육정책, 무역과 재정 악용, 무지와 미신 조장, 성도덕 문란과 결혼법 위반, 부당한 사법 정의, 무자비한 착취 등 다양한 범좌를 저질러 왔음을 방대하게 지적한다.

데쉬너의 저작은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자들이 교회사를 승리주의 기풍으로 쓴 것과 상반된다. 교회를 실수와 오류가 많은 범죄 집단으로 본다. 데쉬너의 책을 읽어나가면 갈수록, 점차 맥이 빠지고 지루한 느낌을 준다.

데쉬너는 교회가 완전하고 교황이 무오하며 교회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보는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자들의 꿈을 꺾는데 전념한 나머지, 교회라는 질그릇 안에 담겨 있는 복음 진리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 데쉬너가 근대 무신론자들이 이성의 신, 국가, 민족, 정당 등의 구호 아래 저지른 흉악한 범죄는 언급하지 않는지 궁금해진다.

교회가 완전하지 않으며, 실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로마가톨릭교회와 예장 통합은 다를 바 없다. 장신대 교수들의 격문은 자신들이 가진 친일파 전통을 포함한 많은 오류들을 반성하고 참회고백을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과제를 일깨운다.

교회를 우상숭배와 배교로 이끌었던 자들이 광복 후 재판석에 앉아 마음대로 자신들을 용서하고, 의로운 사람들을 정죄하여 교회 밖으로 내몰았던 죄를 참회하고, 날조된 장신대 역사도 고쳐 쓰는 기회로 전환되기 바란다.

지상(地上)의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허물, 실수, 오류가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진리와 복음을 담은 질그릇이다. 세상에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세상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생존이 걸린 사안이다.

유럽교회를 몰락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반기독교 운동이다. 한국 사회가 명성교회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명성교회 사건이라는 채널을 거쳐 한국교회와 기독교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평가한다. 우리는 마리아를 보호한 요셉과 같은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자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라고 일컫는 외형적 조직체의 결정은 절대적이지 않다. 교회의 정치체제, 신앙공동체 조직, 통제는 복음, 말씀, 성례 중심의 신앙고백 공동체를 보호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며 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수단(bene esse)이다. 본질(esse)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명성교회 건은 한국교회가 전력투구해야 할 사도직 직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교회라는 질그릇 안에 담겨 있는 복음진리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최덕성 (현 브니엘신학교 총장, 전 고신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