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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대신 교회의 주인공 된 목사와 돈 많은 장로들

기독일보

입력 Aug 05, 2018 06:25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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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홈에서는 존경받지 못함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막 6:4)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 유행하던 속담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곧 파송될 제자들과 관련이 있으며, 그로부터 얼마 후 제자들도 파송되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경험을 통해 배척을 받더라도 절대로 낙심치 말아야 함을 교훈받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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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더운 날씨이지만 파란 하늘이 구름을 밀어내고, 따사로운 햇빛 사이로 울창한 실록이 바람과 함께 싱그러운 내음을 발하며, 이른 아침 풀잎 이슬에 젖은 영롱한 물방울은 고요한 아침을 두드리며, 교회당에서 울려오는 찬양의 아름다운 곡조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영광의 주일 아침입니다.

선지자는 어디서나 존경을 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이웃 그리고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병자 몇 명을 고쳐주셨을 뿐, 기적은 행하지 못하셨다고 하십니다. 늘 함께하던 사람이 어느 날 선지자가 되었으니 믿지 못하는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란 속담처럼, 우리가 가까운 곳의 보석은 보지 못한 채 먼 하늘의 별을 찾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첫 기적을 믿고 있습니다. 가나 잔치의 포도주! 예수님의 첫 기적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이루신 기적은 부지기수가 아닐까요. 이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적을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해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아픔과 고통 속에 소망 없는 삶을 살 때,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병이 물러가고 새로운 삶이 찾아왔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기적의 체험은 한 순간 사라진 아픔과 함께 감동으로 물들어, 감사와 찬양, 기쁨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외로움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손수 찾아다니시며,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있었던 이들, 주님께서 탄생하실 때부터 잘 아는 이웃들은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굴러 들어오는 복을 차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2,500년 전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도 자신의 나라인 인도 땅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했고, 훗날 중국으로 가서야 비로소 불교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유대 땅에서는 철저히 버림을 받았습니다. 2,000년 지난 오늘날까지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그저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주위 사람들과 함께 그저 아는 사람으로 알려졌을 것입니다. '누구네 집 아들'로밖에 보일 수 없었기에, 선입관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변화를 맛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변화이든 큰 변화이든, 변화 없는 곳에서는 기적 역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냉대를 받은 것은 바로 예언자이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을 전하고 회개를 촉구했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던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함께 설파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배척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소박한 믿음은 기쁩니다. 비록 바라볼 수 없어도 그 분이 항상 동행하신다는 믿음, 그 믿음은 힘이 되고 소망이 됩니다. 기적을 믿지 않은 고향 사람들과 친척과 교회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들어오는 복을 차버린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교회 안에서 주님께 드리는 참 예배 속에 정작 주님을 배척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사사로운 이기심 때문에 예배를 방해해서도 안 될 것이며, 나의 욕심과 교만 때문에 주님을 추방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 곁에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시며, 우리에게 늘 용기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지켜 주시는 분임을 의심치 않아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성경 말씀에는 관심 없이 오직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지도자들 때문에 교회는 갈수록 본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같이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싶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스스로 교회의 주인공처럼 행세하면서 갖은 권력과 영광을 누리려는 지도자들 때문에, 교회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스스로 높은 자리를 꿰차고 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Jacob Jordeans, Christ Driving the Merchants from the Temple, 1650, Louvre Museum
▲Jacob Jordeans, Christ Driving the Merchants from the Temple, 1650, Louvre Museum.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영적 자산이자 신앙의 원천인,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지켜낸 순교 정신에 잠시라도 동참하고, 과연 그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혹 길을 걸으며 홀로 또 같이 교회 안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려고 하는지 점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성도들에게 올바른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혹 시샘과 모략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앙인으로서의 인격과 성실한 믿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시려 기회를 엿보고 계시지만, 공동체 안에는 수많은 우월감과 교만에 찬 지도자들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 한국교회의 미래에 혹여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신앙인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는 주인공일지, 아니면 그저 구경꾼일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모시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다른 어떤 곳이 아닌 내 안에 모셔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공동체는 모든 인재들을 고루 등용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공명정대하고 평등하게 질서를 지키며, 나누는 삶과 베푸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임을 잊지 마시고, 누구든지 함께 소통하며 사랑하는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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