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잔혹동화 <인랑>, 빨간 두건을 쓴 소녀와 인간의 탈을 쓴 늑대

한국판 잔혹동화, 영화 <인랑> 속 한 장면.
한국판 잔혹동화, 영화 <인랑> 속 한 장면.

◈설화와 역사: 빨간 두건과 붉은 군대

2015년과 2016년, 영화 <암살>과 <밀정>으로 대표되는 한국형 첩보물이 박스오피스 강세를 누린 시기가 있었다. 이런 추세는 작년(2017년) <군함도>의 흥행 실패 탓인지 짧은 유행으로 마감되었지만, 긴장감과 비장미, 그리고 농도 짙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한국의 비극적이고 치욕스러운 역사를 흥미로운 볼거리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가운데 <밀정>의 감독을 맡았던 김지운 감독이 이번에도 반간(反間), 즉 이중간첩이라는 소재를 들고 국내 박스오피스에 도전한다. 금주 개봉되는 <인랑>이 그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1999년 제작된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 <인랑(人狼, じんろう)>의 실사판 영화다. 물론 한국 관객들의 정서에 맞게 시대 배경 및 사건 설정은 각색되었으나, 원작이 전달하고 있는 서사의 골자는 그대로 보존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작 애니메이션 <인랑>에는 두 줄기의 서사가 얽혀 있다. 첫째는 1960년대 일본의 불안한 사회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은 과격한 경제정책을 통해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맞이했으나 그 부작용으로 심각한 빈부격차를 겪게 되고, 수도인 도쿄는 공산사상을 추종하는 과격 극렬 반정부단체 '섹트'(sect)의 테러에 밤낮없이 시달린다.

이 서사는 실제 역사가 아니라 팩션(faction)이다. 즉 몇몇 사실에 기반한 허구적 현실이다. 1960년대 말 일본에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반정부-반보수 혁명인 '68혁명'에 영향을 받은 학생 좌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그 가운데 일부는 도시 게릴라 폭력혁명을 통해 일본의 적화(赤化, 공산화)를 추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스스로를 적군(赤軍, 붉은 군대)이라 불렀던 이 극렬 무장투쟁 집단은 자체 군사훈련 중 발각돼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채 해체됐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인랑>은 이들이 활발한 테러 활동을 벌이며 일본의 수도 도쿄를 혼란스럽게 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특수무력단체 '특기대'를 조직한다는 가상적 서사를 따른다.

<인랑>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두 번째 줄기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전래동화 <빨간 두건(Little Red Riding Hood)>이다. <인랑>에서는 이 <빨간 두건>의 동화화 버전이 아닌 오리지널 버전, 즉 원본 잔혹 동화를 자주 인용하고, 또 그 서사를 충실하게 모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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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제작된 <인랑>의 원작 애니메이션.

김지운 감독의 실사판 <인랑>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서사 설정 가운데 1960년대의 불안정한 도쿄를 근미래인 2029년의 불안정한 서울로 교체한다.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하자, 한국은 통일을 반대하는 주변 강대국들의 경제 제재 대상이 된다. 파탄난 민생에 불만을 가진 극렬 도시 게릴라 단체 섹트는 통일추진을 반대하는 한편 테러를 통해 반정부활동을 펼치고, 정부는 이 테러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특수무력단체인 '특기대'를 조직한다. 이것이 금주 개봉을 앞둔 <인랑>의 시대배경이다.

메인 예고편만 두고 보면, 실사판 <인랑>은 원작과 달리 <빨간 두건>의 서사를 상당 부분 배제한 듯하다. 일본의 영화, 드라마 대부분이 작위적 교훈 찾기를 중시하는 반면, 한국의 영화, 드라마는 멜로 스토리를 중시한다.

이로 인해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 대사는 자주 비유나 풍유를 동원하는 반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대사를 선호한다. 이런 이유로 실사판 <인랑>에서는 <빨간 두건>의 직접적 인용이나 서사 적용이 상당부분 배제되는 듯하다.

그렇다 해서 이 유명한 전래동화의 설정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단 영화의 제목 자체가 인랑, 즉 인간의 탈을 쓴 늑대를 의미한다. 테러와 폭력혁명을 주도하는 섹트의 대표색, 즉 붉은색의 복장을 갖춘 소녀와 그 언니(인 척하는 정보원)의 이야기 역시 그대로 유지되는 듯하다. 이래저래 실사판 <인랑>은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부응하면서도 원작의 두 주요 서사 설정을 유지하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빨간 두건> 이야기의 구성요소들은 분위기상으로나 내용상 영화 <인랑>의 서사에 대단히 잘 어울린다. <인랑>의 어둡고 음울한 색조는 어린 소녀를 위험에 빠뜨리는 숲의 어두움을 반영한다.

할머니를 잡아먹은 뒤 변장한 잔인한 늑대는 <인랑>에서 속는 척하며 속이는 이중간첩의 교활함, 그리고 적에게 가차없이 기관총을 난사해 대는 살인기계의 냉혹함에 적절하게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빨간 두건>은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그림 형제의 동화가 아니라 각색되기 전의 원본 설화, 즉 이미 11세기 경부터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지극히 잔혹한 <빨간 두건> 설화를 말하는 것이다.

◈설화와 교훈: 인랑(人狼), 인간의 탈을 쓴 늑대

고전 설화는 대개 단순한 즐거움보다 교훈적 메시지를 담는 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 이는 비단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유독 권선징악을 강조했던 한국과 동아시아 설화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대단히 선정적이고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유럽의 설화들도 대부분 권선징악이나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랑
▲<빨간 두건> 설화의 삽화.

여기에는 공립학교나 의무교육제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중세 유럽의 시대상이 반영돼 있었다. 인구의 상당수가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고 문맹인 상태에서, 고대와 중세 유럽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하는 데 구전 설화를 애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에서는 이런 교육법이 교회 사제들에 의해 널리 보편화되었는데, 이는 이들의 설교 상당수가 성서의 비유를 가르치고 풀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빨간 두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설화다. 세계 고전설화 분류법인 아르네-톰프슨 분류 체계(Aarne-Thompson classification systems)에 의하면, <빨간 두건>은 그 자체가 하나의 항목(333번 항목)을 이룰 정도로 널리 알려지고 대중화된 설화이며, 그만큼 다양하게 변형되어 전해진 설화이기도 하다.

이 설화는 아르네-톰프슨 분류 체계 300번부터 399번 항복을 포괄하는 '초자연적 대적(大敵)' 류의 이야기에 속해 있다. <빨간 두건>의 늑대는 동물인 주제에 말을 하고, 변장으로 인간을 속이며, 끝내 불쌍한 할머니와 손녀를 잡아먹는 악한 대적으로 등장한다.

그림 형제에 의해 각색된 <빨간 두건>은 인육 섭취나 소아성애 같은 끔찍하고 비윤리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어린이용 동화로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원작설화 <빨간 두건>은 기괴하고 잔혹한 요소들을 그대로 보존한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다음은 원작 <빨간 두건>의 간략한 줄거리다.

인랑
▲<빨간 두건>의 원본 이야기. 인육섭취와 소아성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빨간 두건을 쓴 소녀가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 드리려고 길을 떠났다. 가던 길에 숲 속에서 멋진 남자의 모습으로 변장한 늑대가 나타나 소녀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변장한 늑대의 멋진 모습에 혹해 별 의심 없이 숲 속의 집에 사시는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 드린다고 대답했다.

늑대는 이 말을 듣고 소녀를 앞질러 할머니의 집에 가서 할머니를 살해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피를 포도주 병에, 할머니의 살을 잘라 접시에 담아 두었다. 그런 뒤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장해 침대에 눕는다.

이윽고 소녀가 도착하자, 변장한 늑대는 소녀에게 접시에 담긴 할머니의 살과 포도주 병에 담긴 할머니의 피를 먹게 한다. 그 다음 늑대는 소녀에게 입은 옷을 모두 벗고 침대에 눕게 한다. 침대에 올라간 소녀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해서 질문한다. 왜 이렇게 이빨이 날카롭냐고. 늑대는 너를 잡아먹기 위해라고 답하고서 소녀를 잡아먹는다."

대체 이런 기괴하고 잔혹한 서사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잔혹한 이야기 속에는 의외로 정교한 은유가 포함되어 있다.

우선 첫째, 소녀의 '빨간' 두건은 소녀가 월경을 시작했다는 것, 즉 성관계와 임신, 출산이 가능한 나이가 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녀를 속이는 늑대는 순진한 어린 여성들을 유혹하는 남성들을 의미한다. 즉 빨간 망토 이야기는 어린 딸들이 남성들의 흉계에 빠져 몸을 버릴까 염려하는 어머니들이 딸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전해준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런 해석은 이 설화의 클라이맥스인 침대 위 장면에서 확실시된다. 옷을 모두 벗고 침대에 오르게 한 늑대의 행위는 순진한 여자들을 속여 성적 만족을 채우는 남성들의 소아성애적 욕망을 은유적으로 지시한다.

둘째, 늑대가 할머니의 살과 피를 소녀에게 먹도록 한 것은 기독교의 '주의 만찬'을 모방한 소재다. 빵과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주의 살을 먹고 주의 피를 마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기념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명령이자 기독교 예배의 필수 요소다. 즉 주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과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인다는 뜻이 된다. 주의 만찬은 이를 반복적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빨간 두건>의 소녀는 늑대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된 할머니의 살과 피를 먹는다. 이로써 <빨간 두건>의 할머니는 죄없이 죽임당한 그리스도의 표상을 덧입고, 늑대는 그리스도를 죽인 마귀의 표상을 덧입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빨간 두건>의 늑대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순진한 어린 여성을 속여 성적으로 유린하는 악독하고 변태적인 남성을 의미하고, 둘째는 인간의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적 마귀를 의미한다.

사실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성경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성서에서는 사람을 속여 진리가 아닌 거짓된 것을 믿게 하는 이들, 즉 거짓 선지자들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마 7:15)'로 명명한다. <빨간 두건>은 이 비유를 소녀들을 위한 교육용 설화로 변형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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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랑>. 원작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빨간 두건> 설화의 모티프가 반영되어 있다.

영화 <인랑>은 이런 모티프를 바탕으로 이중간첩 특수부대원, 즉 속이고 살해하는 일에 능숙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측이 빨간 두건을 쓴 소녀 편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인간의 탈을 쓴 늑대 편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물론 김지운 감독의 진의는 늑대를 악의 편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운의 주인공으로 미화하는 것이다. 즉 <인랑>은 통일을 위해 싸우는 이들을 미화하는 영화다. 그렇지만 이런 의도와는 상관없이 희생자인 소녀를 남북통일 반대편으로, 그리고 가해자인 늑대를 남북통일 찬성편으로 놓는 편 가르기 비유는 제법 적절하게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최근 한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재개 및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성사를 통해, 한반도 종전과 평화 안착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이를 주도하는 정부는 더 큰 규모의 치적을 남기고자 여러 방면에서 북한에 대한 유화책을 전개하고 있다. 철도, 가스관 공사 등 남북경협 검토를 비롯해 군사적 긴장을 줄이기 위한 조치들이 연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우리 민족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이를 위한 정부의 노력에 이의를 제기할 의도는 없다. 다만 우려되는 바는, 남북한 경제협력이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의 속도 및 수위에 관한 것이다.

우선 남북경협의 비용에 대한 과소평가 및 경협의 효과에 대한 과대평과가 횡행하는 듯하다. 단순히 철도와 교통망이 이어진다 해서 남북교류가 활성화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유라시아 대륙철도와 국내 철도망이 연결된다고 해서 얻어질 경제효과의 규모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실질적으로 막대한 것인지도 미지수다.

결정적으로는 교통망이 연결된다 해도 실제 남북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협 및 교류 확대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과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해 정부는 일부 무기체계 개발계획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해마다 시행해 온 범정부차원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중단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핵폐기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인 데다 여전히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훈련을 중단하는 일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의심스럽고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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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랑>. 남북통일을 위해 모략과 폭력을 사용하는 이들이 인간의 탈을 쓴 늑대로 표현된다.

영화 <인랑>이 표현한 대로, 남북통일이란 단꿈에 젖은 국내 정치지도부의 성급하고 부주의한 행태는, 그들이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 스스로를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들은 결국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 건국 이념을 근간으로부터 희석시키고, 특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환경 속에 성장해 온 한국교회의 안위를 위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개봉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영화 <인랑>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잠식을 정당화하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정착을 노래하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는 영화가 될 듯 하다. 이는 김지운 감독의 전작 <밀정>에서 드러난 그의 민족주의 성향을 감안할 때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서사의 중심이 주인공 중경(강동원 분)과 윤희(한효주 분)의 비극적 사랑에 맞춰지는 탓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는 분명 현 정부의 성급하고 부적절한 통일추진 행태를 옹호하는 친정부적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