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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러지는' 집회, 과연 성령의 권능인가?

기독일보

입력 Jul 06, 2018 06:3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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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성령의 권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점을 설명하기 전에 필자는 먼저 신자들이 미혹되기 쉬운 잘못된 영성운동의 방향 몇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러한 극단적인 성격의 영성운동들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사례가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첫째는, 육감적 체험주의를 자극하는 영성운동을 경계해야 한다. 육감적 체험주의란 신체의 시청각적 기능이나 느낌 등을 통해 확인되는 현상적 차원에 너무 중점을 두는 영성운동을 말한다. 성령의 권능이 부여될 때 현상적 차원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현상이 성령의 권능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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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영성운동의 일각에서 '쓰러지는 집회'가 유행하고 있는 점은 큰 문제점이라고 본다. 분별력이 없는 이들은 어떤 인도자가 기도해 줘서 자기가 쓰러지면 그 인도자를 대단한 능력자라고 느낀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으면 그 인도자에게 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의 근원은 이들이 복음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나타나는 현상에만 미혹된다는 것이다.

기도나 예배 중에 이런 현상이 있다고 해서 다 성령의 권능이 임했다고 보거나 또는 귀신이 추방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권능이 역사할 때 이런 현상적 차원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나 쓰러지는 현상 모두가 다 성령의 역사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적절한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case> 서울 근교에 있는 한 큰 기도원에 필자가 매월 강사로 섬긴 적이 있다. 주로 성령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필자는 그날도 말씀을 전한 후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도록 통성기도의 시간을 인도하였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실 때 몸이 뜨거워지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혹 쓰러지거나 몸에 진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있으면 그냥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하시면서 기도에 집중하십시오."

그런데 기도가 진행되면서 보니 여기저기서 쓰러지거나 뒹구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 다음 달에 그 기도원에 다시 강사로 서게 되었다. 그때 나는 설교 후 통성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

"기도하실 때 몸에 어떤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런 현상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육감적 현상에 신경 쓰지 마시고 은혜의 본질에 집중하십시오."

그랬더니 그날 집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쓰러지거나 구르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쓰러지는 현상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현상이 있다고 해서 능력이 있고 현상이 없다고 해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을 쓰러트리는 일은 최면암시(hypnotic suggestion)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더군다나 교회 같은 신념 공동체 속에서는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집단 최면으로 쓰러트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집회 인도자가 기도하기 전에 어떤 육감적이거나 가시적인 현상을 회중에게 미리 강조해서 신념화 시켜 놓으면, 결국 예외 없이 그런 현상이 기도 받는 사람들 중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어떤 큰 교회 청년 집회에 강사로 초청 받았을 때의 일이다.

<case> 말씀을 전한 후 보니 앞쪽 자리에 앉아있는 한 자매를 기도해 주어야 하겠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내 속에 확신 되었다. 그 자매가 더러운 영에 의해 영혼과 몸이 속박 당하고 있다는 분별이 내 속에 생겼던 것이다. 물론 그 자매를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 보았지만, 그런 확신은 필자에게 종종 주어지는 일이기에 이상스러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자매를 내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내 앞에 나와 서는 순간 그 자매의 몸은 떨리기 시작하고 그 자매의 눈은 초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즉시 가볍게 그 자매의 이마에 손을 대었고, 그리고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명령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 자매로부터 더러운 영은 떠나가라!"

그러자 자매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후에는 큰 소란이 일어났다. 수백 명의 청년들이 기도를 받겠다고 앞을 다투어 나오는 것이다. 즉시 긴 줄이 예배실 저 뒤에까지 만들어졌고, 한 사람 한 사람 기도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손을 댈 필요도 없이 쓰러졌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오다가 그냥 쓰러지기도 한다.

그날 그 넓은 강단은 쓰러진 청년들로 가득 찼다. 쓰러졌다 일어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또 어느 곳에는 쓰러진 사람 위에 또 다른 사람이 겹쳐서 쓰러져 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필자의 경우엔 쓰러질 것에 대한 언급을 사전에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첫 번으로 나온 자매가 쓰러지고 나니 그런 현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쓰러진 사람들은 모두 문제의 해결을 받은 걸까? 필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일 뿐이지 은혜의 본질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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