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산상수훈'이란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필자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5장 8절 말씀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구절을 어릴 적부터 마음으로 읽고 외웠으며, 지금까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 중에 '팔복'이 나오는데, 외우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꾀를 내어 '심애온의 궁마화의'라고 외워서 지금까지 암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7장 말씀은 보통 '산상수훈' 또는 '산상설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씀들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높은 도덕적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실제 삶에서 지켜야 할 윤리의 대강령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시작된 '산상수훈'은 7장까지 이어집니다. 팔복(1-16절)은 산상수훈을 요약해 주는 말씀입니다. 본 장에서 주님은 천국 시민의 요건과 그에 대한 상급을 약속하시며, 이어 모세의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명령을 제시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과연 인간으로서 마음이 청결할 수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마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우리는 길을 가다 길거리에 쓰레기라도 쌓여 있으면, 불쾌감으로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함을 느끼며 그 길을 피해 가려 할 것입니다. 거기에 집안 곳곳에 지저분한 쓰레기가 쌓여 있다면, 아마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지고 짜증이 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지저분하다면, 아마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승용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주위가 산만하고 청결하지 못하면 몹시 기분이 상할 것입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늘 쓰레기가 찾아듭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몰려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집안 어디서나 깨끗하게 청결이 유지 된다면, 아마 쓰레기나 지저분한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청결한 곳을 만나면, 왠지 마음도 깨끗해짐을 느낍니다.

깨끗한 곳에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검은 비닐봉지나 어떤 물건들이 버려져 있으면, 금세 쓰레기들이 모여 쓰레기장으로 변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미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순한 생각과 옳지 않은 마음을 갖는다면, 그 마음이 쓰레기장으로 가득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 쓰레기 속에는 교만의 쓰레기, 탐욕의 쓰레기, 고집과 아집의 쓰레기, 이생의 자랑과 명예의 쓰레기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인간인지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마음이 되기란 참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대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그 마음이 곧 청결한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산상수훈'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상수훈'이라는 이름을 참으로 보배롭고 주옥같은 최고의 가르침이고 말씀이라고 합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법과 가치관을 우리에게 소개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이 하나님 나라의 법과 가치관이라면, 그 나라에 대해 먼저 알 수 있어야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란 인간들이 찾는 '파라다이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나라가 구성되려면 먼저 주권, 영토, 국민이 있어야 하는데,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성은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여야 했고,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12지파)이라야 했고, 영토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내용을 상세히 보면, 그 나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타락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배신한 크나큰 사건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약속하셨습니다. 후손과 땅을, 그리고 그 후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창세기는 민족을 이루는 시작이고,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는 민족이 형성되고 나라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땅에 대한 약속을 이루는 과정이고, 그 이후에는 불행하게도 그 백성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권은 하나님께, 영토는 이 땅에, 그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로 구성된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떤 나라이든 그 나라를 추구하는 가치나 정신이나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가치와 질서는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거기에ㅐ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새 나라의 이상과 가치와 질서를 담고 있으며, 예수님은 그것을 공포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는 마태의 기록 의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출애굽 과정을 염두에 두고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으며, 모세의 탄생과 영아 학살, 광야, 율법 선포 등의 구도를 그의 복음서에 오버랩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끌었던 것처럼, 가나안에 살던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로 불러냅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품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쳐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넌 것처럼, 그 강에서 사람들을 물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이후 마태는 광야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당한 세 가지 시험은 구약,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었던 시험이었습니다. 먹는 문제와 하나님을 불신하고 시험하는 일은 세상의 부귀영화(애굽)를 부러워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시고, 그들을 불러 모으신 후 산에 올라가 앉으십니다. 그리고 선포하신 내용이 바로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당시로서 이 땅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선포하고,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그 나라 백성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산상수훈'이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대헌장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은 가난한 자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율법입니다. '팔복'의 완성 역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입니다.

'산상수훈'의 전체 말씀은 큰 그림을 가지고 보아야 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사는 백성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하나님 나라에 사는 백성들은 이런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복은 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많이 가진 것이 복이고, 웃을 수 있는 것이 복이고, 오래 장수하는 것이 복이고, 권력이나 명예를 얻는 것이 복이고, 항상 배부른 것이 복이고, 남들보다 더 높임과 추앙을 받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것이 복이 되고, 애통하는 것이 복이고, 온유한 것이 복이고, 서로 화평하게 하는 것이 복임을 알려 주십니다. 환난이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갖은 고초와 핍박을 받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선포하신 그 '팔복'이 진정한 복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 백성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계명으로 정해놓고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더러운 것이 가득 있으면서 겉으로는 거룩하고 선한 척 하는 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 안에서 행하는 그 자체를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모습, 티나 흠이 없는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된 모습,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라고, '산상수훈'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나라의 왕이요,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그렇게 살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달려가야 할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그 그림을 보고 그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 삶을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일러주시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사는 자가 결국 마지막 심판에서 '완전한 의인'으로 선포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이 말씀을 늘 묵상합시다. 비록 지킬 수 없는 말씀이지만, 지금 당장 청결하게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청결할 수 있도록 늘 내 안을 비우고,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위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뵐 수 없지만, 청결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훗날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여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청결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잠시 동안입니다.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자신에게서 만들어지는 가장 나쁜 것은 고집과 아집입니다. 그리고 탐욕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상 사는 동안 늘 분쟁과 아픔이 계속될 것입니다. 분쟁과 아픔의 최후는 곧 아간의 최후가 되지 않을까요?

한국교회의 문제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마음이 청결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옛 구습에서 허우적거리며, 새로운 주님의 나라를 보지 못한 채 육적 욕망의 세계에서 영혼 없는 삶을 누리며 살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삯군 목사와 거짓 장로들의 불의로 신음하는 한국교회의 앞날을 위해, 하루 속히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변화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지금이라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처음 신앙생활 할 때, 약속했던 그 약속을 지켜 나가는 지도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