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D. 시온신학과 시온종말론

1. 시온신학

시온전승으로도 불리는 시온신학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역사서와 시편과 예언서이다. 이들 세 영역은 각각 시온신학이 지니고 있는 특성들을 조명해 주고 있다. 역사서는 시온신학의 기원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에 초점을 둔 것이라면, 시편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신앙이라는 토양 속에서 어떻게 정착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예언서는 시온신학이 포로기를 거치면서 미래 지향의 종말사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시온신학은 이스라엘 내의 한 지역에 불과하였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주제로 자리를 잡으면서 어떻게 종말사상으로 발전하는 신학주제가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땅의 신학적 논의와 마찬가지로 시온신학 역시 최근에 와서 관심 받게 된 주제이다. 마틴 노트(Martin Noth)와 본 라드(Gerhard von Rad)에 의하여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본 라드의 제자였던 로란트(Edzard Rohland)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시온신학의 연구의 범위를 시편 중 시온의 노래와 제왕시로 국한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시온신학의 주제를 네 가지로 제안하였다. (1) 시온은 가장 높은 산인 북방(챠폰)의 정상이다(시48:3-4). (2) 낙원의 강이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온다(시46:5). (3) 하나님은 그곳에서 혼돈의 세력인 물을 격파하셨다(시46:3). (4) 하나님은 그곳에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열방을 대파하셨다(시46:7; 48:5-7; 48:5-7; 76:4, 6-7). 로란트는 네 가지 주제 중 마지막 내용인 열국의 대파를 다시 세 가지 로 세분하였다. 즉 (a) 하나님의 승리는 하나님 현현이나 책망을 통한 두려움의 결과로 주어진다(시48:6; 46:7; 76:7). (b) 하나님의 승리는 아침이 되기 전에 일어난다(시46:6). (c) 하나님께서는 적들의 무기들을 파괴함으로 전쟁 자체를 종식시키신다(시76:4).

빌드버저(Hans Wildberger)는 로란트의 네 가지 주제에 이은 다섯 번째 것으로 열국의 예루살렘 순례를 추가시켰다. 고완(Donal E. Gowan)은 다음 두 가지 내용을 더 추가하여 시온신학을 정리하였다. (1)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자신의 거처로 선택하셨다(시78:68; 132:13). (2) 시온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복을 누리게 된다(시48:12-14; 132:13-18; 133:1-3; 147:12-20).  

시온신학의 연구 범위를 시편에서 다른 시가서와 산문체로 확대시킨 로버츠(J. J. M. Roberts)는 시온신학의 내용을  다음 두 가지로 대별하였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온 우주의 큰 왕이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선택하여 그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두 번째인 하나님의 예루살렘 선택을 세 가지 내용으로 세분하였다. (1) 시온-예루살렘의 지형에 관련된 함축적인 의미: 시온의 위치는 높은 산위에 있으며 낙원의 강물로 둘러 쌓여있다. (2) 시온-예루살렘의 안전에 관련된 암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침입하는 혼돈의 세력과 외적 군대를 막아주신다. (3) 시온-예루살렘의 주민들과 관련된 암시: 하나님께서 시온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그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복의 근거가 되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런 복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로버츠의 시온신학 분석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개념과 하나님의 예루살렘 선택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온신학은 이미 오경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왕권사상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현실과 관련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시온신학의 이해와 분석은 메시아사상으로 이어지는 후대 종말론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관성을 갖는다.  

2. 시온종말론

시온신학은 한 시대의 요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천에 따른 상황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유연성의 신학'이었다. 시편의 시온신학은 당시대의 왕정 및 성전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에 중요성을 두었다. 그런 시온신학이 예언서에서는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본질을 바꾸지 않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신학적으로 적응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구약 예언자들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해결방안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죄악에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동안 누렸던 복과 함께 신앙의 중심축인 성전이 없어지면서 그 결과 성전도시인 예루살렘도 파괴된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그런 경고가 예루살렘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시온신학을 무력화시키거나 무효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래의 종말적인 시온이 현재의 모습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약속이 주어졌다. 시편에서 제시되었던 시온신학의 기본적인 주제들은 예언서를 통하여 미래지향적인 종말론으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도날드손(Terence l. Donaldson)은 예언자들이 종말론적으로 재해석한 시온신학을 '시온종말론'이라고 지칭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시온종말론의 중심 내용으로 시온의 종말론적인 회복과 미래 하나님나라의 중심지로서의 시온을 제시했다. 그는 예언서에 나오는 다양한 형태의 종말론 주제들은 모두 시온종말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주장하면서 성서적 증거로 다음 다섯 가지 내용을 제시했다. (1)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흩어진 이스라엘백성들을 다시 회복된 시온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2) 회복될 미래의 시온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의 중심지가 되며 열국은 그곳으로 종말론적 순례에 참여하게 된다. (3)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열방이 시온에서 종말적인 복을 나누게 되며, 그러한 복은 시온에서 벌어지는 메시아잔치로 표현된다. (4) 종말론적 시온은 시내산처럼 새 율법이 주어지는 장소이며, 그 율법을 배우기 위하여 열국은 예루살렘으로 몰려온다. (5) 시온은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는 이스라엘과 만국을 다스리시는 왕으로 선포하는 장소가 된다.

주전 587년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파괴된 것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뿌리 채 흔들어 놓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암울한 역사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켜준 것은 역설적으로 파괴당한 예루살렘에 근거를 둔 시온신학이었다. 시온신학은 급변하는 역사의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부닥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종말사상으로 발전하면서 그 의미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 이후에도 실망스러운 역사 경험이 거듭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은 시온종말론을 근거로 미래 회복에 대한 열망을 유지할 수 있었다.(계속)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