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칼럼니스트 마크 우즈 목사가 유아 세례와 관련된 칼럼을 게재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이다.

몇 년 전 우리 집 고양이는 벼룩 때문에 정기적인 치료를 받았다. 고양이 꼬리를 잡고 들어서 2~3초 동안 스프레이를 뿌리면 끝난다. 이는 다소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고양이의 체면 외에는 아무것도 헤로운 것이 없었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좋았고, 몇 분 후에는 모든 것이 용서됐다.

지금 많은 이들에게 돌고 있는 정교회 세례 동영상도 약간 그러하다. 영상 속에서 한 사제가 어린 아이를 잡고 물 속에 세 번 밀어넣은 뒤 놀란 부모에게 돌려준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신부의 세례를 '아동 학대'에 비유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아마 비정교회인들에게 분명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물 속에 담그는 것은 정교회 전통에서 일반적인 기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교회 세례는 성공회 세례보다 훨씬 격정적으로 진행될 때가 있다. 몇 년 전부터 성직자가 아이를 한바퀴 돌려서 세례를 주는 창의적인 '탑-앤드-테일'(머리와 발끝) 세례가 널리 존경 받아왔다.

침례교인으로서 나는 침례에 찬성한다. 그러나 나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세례를 받으려는 자는 스스로를 위해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어야한다는 가정을 한다. 솔직히 모든 아이들을 그렇게 거칠게 다뤄야 한다면, 난 예외로 하고 싶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단지 상징적으로 씻겨진 것이 아니다. 단지 상징적으로 무덤에 묻힌 것이 아니다. 상징적으로 다시 무덤 속에서 빠져나와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새로 태어난 것이다. 세례의 물은 자궁 속의 양수가 된다.

출산은 엄마와 아이의 몸에 커다란 고통을 가하는 투쟁이다. 대단한 고통을 수반한다. 이는 아마 부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올 때, 그의 손과 발은 아직도 그의 옷으로 싸여있었고, 얼굴에는 천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문자 그래도 묶여있었다. 즉 눈이 가리워진 그는 길 위에 있는 돌에 의해 멍이 들고 찢긴 채, 기어서 뛰면서 삶을 향해 나아갔다.

그래서 우리 정교회 신부님은 무엇인가를 하고 계신 것 같다. 출생은 어렵고 부활도 어렵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은 어렵다. 만약 여러분이 제대로 살고 있다면, 부활한 삶도 어렵다. 아마도 세례는 위험의 묘미와 함께, 그것이 거부하고 있는 어둠에 대한 시인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