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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스라엘의 판타지 소설’? 기독교 소설의 매력과 어려움

기독일보

입력 May 22, 2018 08:15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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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학을 만나다 22] 신학자가 쓴 판타지

에이딘 연대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 최종훈 역 | 포이에마 | 560쪽 | 14,800원

시인 김지하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죄수들이 성경을 어떻게 부르는지 아나?"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하자, "이스라엘의 판타지 소설이라고 부르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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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이라 알고 있던 저로서는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주된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소설)인데, 홍해가 갈라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순간이동도 있고 수명이 연장되는 등의 기적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여 판타지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에이딘 연대기>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제목에 낯익음이 드는 건 유명한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인함입니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나니아 연대기>와 닮아 있습니다. 저자가 기독교 관련 학자입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 S. 루이스는 기독교 신학을 기반으로 하는 영문학자이고, <에이딘 연대기>는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입니다.

또 영국 출신입니다. (<반지의 제왕>의 톨킨도,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도 영국 출신입니다. 영국엔 상상력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나 봅니다.) 두 책 다 판타지 소설이면서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을 그리고 있고,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분명 <나니아 연대기>를 참고했을 겁니다.

이야기를 잠깐 알려드릴까요. 주인공 줄리아와 피터는 사춘기 소녀와 소년으로, 남매 지간입니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급하게 재혼합니다. 재혼한 아내의 딸인 루이자는 주인공 남매와 비슷한 또래이면서 주인공들을 괴롭힙니다. 할아버지 댁에 갔다 우연히 정원의 연못에서 에이딘이라는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서, 에이딘을 구한다는 것이 얼개입니다.

이 책은 3부작이지만 책 한 권이 묶여 있고, 분량도 <나니아 연대기>처럼 두껍지 않아(하지만 560쪽입니다) 완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판타지 소설이 주는 재미가 있어 책장을 넘기는 맛도 있습니다.

알면서도 역경과 위험을 극복해가는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되고, 끝이 해피엔딩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끝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읽게 되는 맛도 좋지만, 알면서도 읽게 하는 맛은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힘입니다.

장(章)의 길이가 길지 않게 적당한 지점에서 끝을 맺고, 판타지 소설답게 중간에 삽입된 그림도 에이딘이라는 가상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판타지 소설에서 하나님을 악의적으로 묘사하거나 잘못 그려진 것을 수정하고 기독교적인 정신을 바로 알려주기 위해 집필했다는 저자의 뜻처럼,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적인 메시지가 관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메시지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과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하다는데 있습니다. 기독교 소설의 강점은 성경 메시지를 사람들이 흥미있어 하는, 이야기라는 그릇에 담겨서 전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진짜인데, 소설은 가짜입니다. 가짜를 가지고 진짜를 전하기 위해 기승전결, 사건과 배경의 변주, 대사와 심리 등 다양한 기법을 메시지에 녹여내 독자와 수싸움을 벌여 끝까지 읽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메시지가 너무 강합니다.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정확히 알겠습니다. 어떤 길을 통해 어떤 경로로 갈 지가 분명합니다. 작가에게 수싸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에둘러 가는 게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곧바로 직진합니다. 마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안달이 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온 부분도 기존의 판타지와 너무나 같습니다. 주인공은 언제나 결손 가정이고, 새 가족은 주인공을 싫어하고 괴롭힙니다. 이유도 없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에서 이복동생 루이자의 정체에 반전이 있으나 그 전 루이자의 행동에서는 어떠한 복선이나 암시도 없다는 점에서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걸 극복하고 읽는다 해도, 마지막 부분에서 세 남매가 현실로 돌아와 가족과 대면하는 상황에서의 설정과 대사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보통 어떤 소설이든, 어떤 영화든 특히, 판타지 분야에어서 마지막에 가면 그간의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희망을 갖게 하는데, 이 소설은 쌓였던 문제가 오히려 증폭되고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비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에서 전개까지 온통 클리셰(진부함)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대목에 가서든 전의 다른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 소설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쉽습니다. 이 '쉽다'는 것을 제가 '유치하다'고 표현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구성, 사건, 메시지 전달까지 다 쉽습니다.

쉽다는 건 장점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유치하다'는 표현을 바꾸고 싶지 않은 건, 기존의 잘 만든 판타지 소설로 독자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문학성에 대한 아쉬움이 짙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명한 복음주의 학자가 왜 이렇게 글을 썼나?' 궁금했습니다. 소설이라는 분야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게 아닐까 합니다. 일반 시장에 비해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독교 도서 시장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장르가 기독교 문학입니다.

'왜 그럴까?'에 대한 이유로 '독자가 좋아하지 않는다', '독자가 잘 모르고 있다' 등 출판사나 저자보다는 독자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작품성 있고 문장력 있는 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소설 쓰기도 어렵지만, 기독교 소설 쓰기는 더 어렵습니다. 소설이 줘야 할 읽는 재미에, 기독교에서 줘야 하는 메시지까지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쓴 기독교 소설 찾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저는 이 책의 내용과 별개로 '우리에겐 모두 판타지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린 모두 판타지를 꿈꿉니다. 우리가 허구의 끝인 SF 영화나 히어로물 영화에 열광하여 천 만이 넘는 사람들이 극장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만큼 이 현실에 대한 고단함 때문일 겁니다.

이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고, 가지고 있는 내 떡보단 가지고 있지 않은 남의 떡을 더 먹고 싶은 욕망이 있으며, 내가 가진 재능보다 남이 가진 재능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의 발로가 판타지를 꿈꾸고 판타지물에 환호하는 것일 겁니다.

진짜가 좋다는 걸 알지만, 가짜에 대한 열망은 표현법에 있어 늘 탈선을 일으킵니다. 어긋나고 싶고, 다른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을 일반인들은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이나 연극 등의 문화상품으로 해소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소설의 매력은 이런 '가짜를 꿈꾸고 가짜를 실현시키고 싶은 이들'에게 가짜라는 소설의 그릇을 통해 진짜라는 기독교를 보여줌으로써, 가짜를 체험하지만 진짜에 이르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르라는 데 있습니다.

저자가 만든 에이딘이라는 세계가 어찌 보면 우리가 꿈꾸고 갈망하는 세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에이딘을 만들며, 머릿속에선 자주 '우리의 에이딘'에 살고 있습니다. 저자의 에이딘 세계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에이딘에서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올바르고 정직한 통치를 통해 주님의 사랑과 공의가 가득찬 세상이 되고 그것이 우리가 땅을 딛고 사는 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일 겁니다.

저자는 '에이딘'이라는 가짜를 통해 진짜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했을 겁니다. 표현 방식에서 과하고 부족하며 관습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공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꿈꿨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품었다는 것만이라도 어디냐!' 한다면 분명 이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읽을(지도 모를)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성구(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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