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그 사회적 효용에 대한 의구심

불과 사흘 전인 27일,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남측 지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되었다. 언론사들은 한국 영내에서 개최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평화 정착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올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기 바쁜 상황이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 정상은 작년과 올 초 지속적으로 위기상황을 유발했던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일정 부분 해결책을 모색하기로 약속한 '판문점 선언'을 선포했다.

이번 회담은 그간 경색되어 왔던 남북한 관계에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독교인 입장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북한 선교에 소명을 갖고 헌신하는 사역자들을 알아왔고 또 옆에서 지켜봐 온 입장에서, 노파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로 이어지는 북한의 현 독재체제는 전 세계 여러 독재 체제들 가운데서 나름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북한의 독재 체제는 김일성 일가를 이상적 국가 건설을 위한 예언자적 사상가로 추대하며 영웅 혹은 신격화해 왔고, 또 지금도 여전히 이런 행태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그들의 삶의 지침이자 경전이다.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이런 통치 방식은 1940-80년대 냉전 시대만 해도 소련의 스탈린이나 중공의 모택동 등이 흔하게 활용했던 방법이다. 그러나 2018년 현재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미 구시대 유물처럼 취급되는 방식이다.

북한 지도부 및 군부는 남북의 통일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 주변 강대국들(특히 미, 중, 러, 일)의 이해관계를 이용해 폐쇄적 사회를 유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미 사장된 노골적 우상화, 신격화 방식을 그럭저럭 적절하게 활용해 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장면.

그렇다면 북한의 주민은 이런 우상화, 신격화 정책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북한의 독재체제를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탈북민들의 증언을 듣는 것이다.

1992년 한국이 대만과 일방적 단교를 선언하고 한중 수교를 맺으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수 있는 루트가 개방됐다. 그리고 1993-1998년 약 6년간, 북한에서는 1970년대부터 보급되어 온 주체농법의 문제점들로 인해 식량 생산량이 급감하며 대형 기근 사태를 맞이했다. 이 시기를 통상 '고난의 행군'이라 칭하는데, 이때부터 북한 독재 정권은 북한 주민들이 어느 정도 먹고는 살 수는 있게 해줬던 배급제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한중 수교 전보다 비교적 한국으로 탈출하기 쉬워진데다 북한에서 생명유지 자체가 어려워지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중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탈출하는 탈북민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 수는 '고난의 행군'이 종결된 후에도 계속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고난의 행군 시기 탈북 양태가 주로 '생계형'이었다면, 2000년대 초중반을 지나면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생계형' 탈북 외에 더 나은 정치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를 희망하며 감행하는 '이민형' 탈북이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시기는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주석 간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이 개최된 시점이었다. 남북 간에 어느 정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북한 주민 가운데 중국을 경유하는, 혹은 한국으로 '직행'하는 탈북민 수는 점차 늘어났다. 이는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현실적으로 북한 내부 김일성 일가의 신격화 통치방식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으며, 북한 주민들의 삶의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라 볼 수 있다.

◈북한 내의 한국: 한류 문화와 '한라 혈통'의 대두

현재 이런저런 방식으로 목숨을 걸고 탈북을 감행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수는 2018년 현재 3만명이 조금 넘는 정도다.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 숫자인데, 그만큼 무사히 한국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일단 북한-중국 국경을 넘는 일 자체가 사살 혹은 체포 위험을 각오하는 일이고, 중국에 들어가서도 북한 공작원 및 공안의 감시 및 추적을 피해야 하며, 브로커들의 배신과 인신매매 위험까지 극복해야 한다. 한국으로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 중 실제로 입국에 성공할 확률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이런 탈출 시도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신격화 통치 체제에 대한 환멸과 반감이다. 김일성 독재 가문 신격화의 주된 근거는 김일성 개인의 영웅적 항일운동 및 항미운동 기록(대부분 날조된 것이다)과 함께, 그가 독자적으로 정립한 것으로 알려진 (실상 1997년 한국으로 망명했던 황장엽 등 그의 최측근들이 주로 정립한 것이지만) 주체사상이다.

사상 정립을 바탕으로 한 신격화 정책은 삶의 양식 하나 하나를 통제하는 일을 정당화한다. 주체사상을 하나의 정치사상이 아닌 종교사상으로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성경 말씀에 감화됐을 때 생활 양식과 삶의 진로와 일상의 말과 생각 하나 하나를 주의하며 주의 말씀에 순복하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주체사상은 세뇌에 의해 강압적으로 생활과 생각을 통제하는 반면, 기독교 신앙은 자발적인 믿음에 의해 생활과 삶을 절제한다는 점이 차이가 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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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김일성은 단순한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위대한 사상의 창시자로 숭배를 받는다.

1990년대의 탈북민들은 대개 중국을 방문하고 온 친지 등을 통해 한국의 정치경제적 실상을 접했다. 이들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도록 강요해 온 북한 정권이 '강내밥(옥수수밥)'조차 주지 못해 주민들을 굶겨갈 때, '미제에 예속되어 식민지화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에서 '이밥(흰쌀밥)'을 먹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많은 이들이 김일성 일가 신격화에 대한 환상을 버리기 시작했다.

작품성과 대중성 양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의 2000년 개봉작 <공동경비구역 JSA>는 북한 내의 이런 실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반영했던 작품이다.

작중 조선인민군 중사 오경필(송강호 분)은 북한 군인들 가운데 엘리트로 인정받는 제3세계 해외 군사교관 출신이다. 그는 해외생활 경험을 통해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월등히 앞서 있으며, 생활환경 역시 북한에 비할 바 없이 좋다는 실상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북한 정권의 신격화 통치체제에 환멸감을 갖고는 있지만, 살아온 삶이 있어 북한 군인의 삶을 비교적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비무장지대 순찰 중 우연하게 만난 한국 군인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과 친분 관계를 맺게 된 그는 이 병장이 선물로 가져다 준 초코파이와 담배를 즐기고, 가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즐겨듣는 등 한국 문화에 금새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장면은 당시로서 불과 2-3년 내 북한에 불어닥칠 한국문화 열풍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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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한국의 문화 및 상품에 금세 친숙해지는 북한 군인의 모습을 표현한다.

1990년대 북한 내에서 한국의 실상을 전하는 경로가 주로 해외방문 경험이 있는 이들의 입소문이었다면, 2000년대 초반에는 그 경로가 한류 문화로 대체되었다.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를 기점으로 한류 드라마 및 문화가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영상 및 저장매체의 발전으로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는 밀수 등을 통해 중국산 'CD록화기' 및 'CD알(영화 등의 '알맹이', 즉 내용이 담긴 CD)'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중국의 영화 및 방송이 유행했으나, 2000년대 초 중국에도 한류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한국 드라마 및 영화가 대량으로 북한 국경지대에 유입되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말씨는 다르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동질감, 그리고 드라마 영화 속에 내보이는 경제적 여유와 삶의 자유를 동경하게 된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북한 정권은 이런 한국문화 유입에 위기감을 느껴 2004년부터 '109 상무'라고 하는 특별단속반을 설치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단속이 한창 시작되던 시기에는 발각되면 본보기로 사형에 처하는 경우도 많았다. 단속반에 뇌물을 주지 못하면, 주로 교화소나 정치범수용소에 가서 심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이런 사정은 현재도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단속이 한국의 현실에 대한 북한 주민의 자각을 근본적으로 가로막지는 못했다. 현재도 북한의 학교에서는 '남조선 인민들'이 북한에 비해 훨씬 가난하게 살고 있고, '미제 식민주의의 압제에 신음하고' 있다는 점을 세뇌시키고 있다. 이런 세뇌는 대개 10대 초반을 전후해 그 효력을 잃게 되는데, 한국 드라마, 영화, 방송 등이 녹화된 매체가 여기에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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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 한류문화 유행 모습.

작년 12월 개봉된 양우석 감독의 영화 <강철비>에는 이런 현실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작중 북한 보위부 최정예요원 출신으로 등장하는 엄철우(정우성 분)는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 분)와의 대화에서 평소 아내와 한국 코미디 프로를 즐겨보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곽철우는 "지는 한국방송 즐겨 보면서 딸은 못 보게 하는" 행태를 비꼬듯 질타한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가동된 개성공단도 북한 내에 한국의 정치경제적 실상을 알리는 데 이바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북측 노동자들,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흘러나온 각종 식료품 및 공산품은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한라 혈통'이 대두되며 북한 내 한국의 현실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라 혈통'이란 '백두혈통(김일성 가문)'에 대비되는 말로, 한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가족을 가진 집안을 의미한다. 이들은 탈북한 가족이 중국을 통해 보내 준 달러와 물품으로 북한 내에서 상당히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여차 하면 금전적 지원을 받아 비교적 안정적으로 탈북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 신흥 특권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민 간 서로 감시하는 체제가 확고하게 갖춰져 있고, 고발을 통해 얻는 이익 때문에 주민 간 이전투구 양상이 심화되고 있어 드러내 말은 못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이 북한 주민들의 삶에 비해 풍족하고 여유로우며 자유롭다는 사실은 이미 북한 전역에 퍼진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정치, 문화, 그리고 선교: 북한 내 지하교회와 선교 전망

정상회담, 경제협력, 군사회담 등 정치적 방편에 기댄 남북대화 및 화해정착 노력은 이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부터 지속적으로 시도돼 왔으나, 북한 측의 불성실한 태도와 국내 집권정당의 변화 등에 의해 이벤트성 볼거리 외에는 별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전적으로 과거 사례에만 기대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현재까지 북한 독재 정권의 통치 방식을 되돌아 본다면,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 주민들의 삶의 현실에, 그리고 한국 사역자들의 북한 선교에 도움이 되는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에는 탈북민들이 웹툰이나 유투브 개인방송 등을 통해 북한에서의 경험담 및 실상 등을 생동감 있게 전하는 경우가 많아, 북한 주민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북한에서 미술을 전공한 탈북민으로서 북한 주민의 삶과 새터민들의 정착에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최성국 작가의 웹툰 <로동심문> 등이 대표적인 예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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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국 작가의 <로동심문> 중 북한 내 종교에 관한 에피소드의 한 장면.

최성국 작가는 최근 두 주간 북한의 종교 및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에피소드를 연재했다. 그는 북한의 종교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전혀 없으며 특별히 기독교가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에피소드에서는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 주민들에게 홍보될 내용에 대해 소개하는데, 그 내용이 실제 정상회담의 실체와는 전혀 무관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자신의 실제 경험을 사례로 드는데, 지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한국 대통령이 심각한 정치적·경제적 난관 때문에 북한 지도자 김정일에게 '통치를 배우기 위해', '쌀을 바치러' 온 것으로 홍보했다고 증언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역시 북한 주민에게 이런 방식으로 홍보될 가능성이 높고, 대외적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적어도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사회적 효용도 제공하지 못할 공산이 높다. 아울러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의 개방이 가속화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이며, 무엇보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진다 해서 북한 선교에 어떤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역시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래 북한, 특히 평양은 분단 이전까지 국내 기독교(특히 장로교)의 본산이었다. 그러나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1970년대까지는 한국으로 탈출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비밀스럽게 신앙을 유지하는 지하교회가 고난스럽게 존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지하교회들마저 1970-80년대 북한정권의 회유와 탄압이 병행되는 가운데 대부분 체제 유지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변질된 것으로 알려졌고, 1980년대에는 대외적으로 북한이 종교의 자유를 갖고 있음을 선전하기 위해 봉수교회를 건립하면서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교회는 북한 내에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 다녀온 이들 가운데 일부가 기독교인이 되어 북한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늘어났고, 이들이 비밀스럽게 소규모 기도모임 등을 인도하며 새로운 지하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선교단체 등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북한 내에는 최대 15-3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지하교회 기독교인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성경이 부족해 대부분 샤머니즘적 기복신앙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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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기독교인들이 필사해서 사용하는 찬송가.

북한 선교에 매진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은 이런 지하교회 신자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일이나 탈북을 돕는 일에 힘써왔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나마 북한에 선교가 가능해지게 된 데는, 사실 정치환경의 변화보다는 경제나 문화환경의 변화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앞서 살펴보았듯, 한국의 생활환경과 문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 북한 내 기독교인들을 지원하거나 탈북을 돕는 활동을 수행할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로동심문>의 최성국 작가는 UN의 북한 인권 실태 관련 행사 발표 중 북한으로 유입되는 문화가 갖는 파급력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그는 북한에 유입된 한국의 미디어 콘텐츠가 갖는 힘은 바로 북한 주민들이 체감하는 '문화 공감'이라고 밝혔다.

돌이켜 본다면,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의해 한국에 최초로 기독교 선교가 개시될 당시 선교사들의 선교전략 역시 문화 공감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다. 그들이 복음의 내용을 직접 전하기 위해 힘쓴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당시 한국인 대상 선교를 위해 의료, 교육, 구제 등에도 상당한 힘을 들였고, 이런 활동들이 많은 한국인들의 관심을 기독교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에 대한 선교 역시 유사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서는 기독교 신앙과 무관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이 콘텐츠들이 유발하는 문화 공감이 북한 선교 및 탈북민 대상 선교 활동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는 한국 문화에 대한 공감과 경제적 지원에 대한 기대감은, 지금은 미약하지만, 앞으로 지속해서 북한의 통치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남북한 교류 가능성 확대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상회담 자체가 남북의 화해 및 교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북한 주민들이 내부적으로 느끼고 있는 한국과의 교류에 대한 바램이 정상회담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평화 정착과 공동번영,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전면적이고 자유로운 선교를 바라 마지 않는 입장에서 보다 전략적인 관점으로 고찰해 본다면, 한국 기독교계가 향후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해야 할 핵심 사안은 정치가 아닌 문화와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한국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신앙과 기독교 문화를 종교적으로 철저하게 억압당해 온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공감시킬 것인가를 앞서 연구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필요는 복음과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는 콘텐츠 제작과 같은 지엽적 과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보다 포괄적으로는 한국 기독교가 한국사회 전체의 삶의 방식(특히 인권과 윤리) 개선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에까지 이른다.

현재 한국사회 내에 확산되어 있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참된 신앙의 실천과 삶의 변화를 통해 극복하지 않는다면, 북한 선교를 위한 문화적-정치적 여건이 아무리 양호하게 개선된다 해도 북한 주민에 대한 선교 전망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 위로가 되는 점은 탈북민들이나 북한에 남아 있는 그들의 가족들에게 한국 기독교 사역자들이 비교적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북한 선교 및 탈북민 지원을 위해 힘쓴 사역자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중국 공안들의 감시와 중국 내 북한 공작원들의 납치 및 살해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지원하고 탈북을 도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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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북한 선교에 매진하던 이들 가운데는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 이들도 존재한다.

앞으로는 이런 활동과 더불어 한국 기독교인들이 지키고 일궈 온 성경적 신앙과 기독교 문화를 북한 주민들에게 소개하고 공감시키는 노력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북한 주민들에게 세속적 유흥만을 제공하고 문화적 격차를 느끼게 하는 문화 콘텐츠가 아닌, 북한 내 신자들의 신앙을 세우고 한국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콘텐츠의 개발 및 전파 전략 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남북정상회담 자체에 큰 기대감을 갖기는 시기상조인 듯 하나, 적어도 북한 내부에서 개혁개방에 대한 요구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증거라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특정 시점에는 1980년대 덩샤오핑 당시의 중국과 같이 경제, 문화 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개혁개방을 향한 변화의 원동력이 북한 외부의 실상, 특히 한국의 실상을 전해 준 문화콘텐츠와 상품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 한국 기독교계가 북한 선교를 준비하려 한다면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소개하고 변증할 수 있는 문화적-윤리적 역량과 이 역량을 구체화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는 한국 초기 기독교 선교로부터, 그리고 북한 내 한국 문화의 유행이라는 작금의 상황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끝>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