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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두 원로에게 듣는 한국교회의 어제와 미래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Apr 23, 2018 06:38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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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대담] 원로 역사신학자 이장식-이상규 박사

나이 70세에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가 됐다. 14년을 그곳에 있으며 주님의 복음을 전했다. 그런 뒤 귀국한 해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올해 만 97세인 혜암(惠岩) 이장식 박사다. 한신대학교 교수로 오래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이 학교 명예교수다. 역사신학자인 그는 「기독교 사상사 1·2권」(기독교서회)을 비롯해 「기독교신조사 상·하」(컨콜디아사), 「기독교사관의 역사」(기독교서회),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기독교서회) 등 수많은 책을 저술하며 기독교 역사에 천착해 왔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금은 혜암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좌우를 아우르며 한국교회 신학 발전에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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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사람의 역사신학자인 이상규 박사(66). 그는 지난 2월, 35년 동안 재직했던 고신대학교에서 은퇴했다. 그 역시 지금은 이 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한국교회사를 비롯해 초기 기독교와 16세기의 역사, 그리고 선교운동사 등 교회사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교회사에 관심이 많았다. 「초기기독교와 로마사회」, 「교회개혁사」, 「개혁주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생명의양식), 「해방 전후 한국장로교회 역사와 신학」(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등 25권의 단행본과 170여 편의 논문을 썼다.

이 두 원로 역사신학자가 최근 본지 대담을 통해 만났다.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1921년 태어난 이장식 박사는 그야말로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의 말에는 학자의 통찰과 목격자의 생생함이 모두 있었다. 그 다음 세대 학자인 이상규 박사도 '역사신학의 외길'을 걸어온 개혁주의 신학자다. 아래 그 대담을 요약했다. 이상규 박사가 묻고 이장식 박사가 답했다.

▲올해 만 97세인 원로 역사신학자 이장식 박사.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자가 내뿜는 그런 힘이. ⓒ송경호 기자
올해 만 97세인 원로 역사신학자 이장식 박사.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자가 내뿜는 그런 힘이. ⓒ송경호 기자

신학의 보수와 진보

(이상규) "이 박사님은 원로 학자이자 교회사학계의 대선배이신데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시게 되셨습니까?"

(이장식) "고향이 경남 진해입니다. 그곳에서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구 최익우와 홍반식은 고려신학교로 갔습니다. 저는 1940년 설립된 조선신학교(현 한신대)를 갔지요. 그런데 무슨 교리나 신학을 알아서 그곳에 갔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 때는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은 후여서 서울의 조선신학교가 유일한 총회 직영신학교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죠. 아는 사람을 따라 가거나 집에서 가까운 곳에 가거나, 그랬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1950년대 초 교단이 분열할 때, 저는 기장교단의 목사가 되었고, 친구인 최익우 목사와 홍반식 박사는 고신파가 된 것입니다. 나중에 홍반식 박사를 만났는데 내 책을 다 읽었다며 나더러 '어릴 때 가졌던 신앙 그대로'라고 하더군요. 이런 걸 보면, 교파가 다르다고 서로 싸울 게 없지요. 어차피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삶의 환경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상규) "그렇군요. 저는 고신에 속해 있습니다만 저도 처음부터 고신을 선택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기독교 사상」을 읽었는데 필자들 거의 전부가 한신대나 연세대 신학과 교수들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학교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산에 누님이 계셔서 그곳으로 가다보니 고신대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지금 고신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환경조차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비록 고신에서 자라고 공부했지만 저는 학생 때 이 박사님의 책도 읽고 배웠으니 정신적인 제자입니다. 저는 고신에서 공부하면서 진보적 신학이나 현대신학에 대해 관심을 가졌기에 진보신학에 대해서도 약간의 식견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장식) "네. 우리가 보수니 진보니 합니다만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듯이 보수가 없는 진보가 없고, 진보가 없는 보수가 없지요. 신학도 그렇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신학은 상호 관련성을 지니기 때문이죠. 보수주의 신학이라는 게 단순히 과거에 있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핸드 다운'(hand down)이 아니라, 계승해 발전시킨다는 뜻으로서 '핸드 오버'(hand over)야 말로 보수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교리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고 봐요. 또 진보신학도 복음을 훼손해선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신학이라고 볼 수 없지요. 복음의 굳건한 터 위에서 신학적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보수나 진보나 예수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 분은 온 인류를 품으시는 분 아닙니까? 기독교가 그렇게 편협하지 않습니다."

(이상규) "신학이란 결국 성경을 보는 관점인데, 어떤 신학 전통에서 성경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학적 차이가 나타나겠지요. 저는 비록 보수적 신학교에서 교육받았지만 보수와 진보 양 세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단,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기에 신학적 추구가 교회건설이라는 거룩한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박사님도 지적하셨듯이 십자가와 부활의 선포라는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신학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학의 '철학화'는 '교회를 위한 학문'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위험이 있기에 신학의 주관주의나 신비주의와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코넬리우스 반틸의 「신앙의 변호」(The Defence of Faith)를 읽고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장식) "보수와 진보가 비록 성경해석을 달리할 수 있어도 선교와 사회참여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선교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각자의 분깃, 즉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고신의 역할이 있는가 하면 기장의 역할 또한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서로 배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같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니까요."

▲ 대담 중인 이장식-이상규 박사. 이상규 박사는 스스로를 이장식 박사의
대담 중인 이장식-이상규 박사. 이상규 박사는 스스로를 이장식 박사의 "정신적 제자"라고 했다. 비록 신학적 색깔은 조금 다르지만, 두 역사신학자는 이를 뛰어넘는 사제(師弟)였다. ⓒ송경호 기자

기독교의 역사관

(이상규) "이 박사님은 일생 동안 역사를 가르치셨는데 박사님의 역사관이랄까요, 역사를 어떻게 보시는 지가 궁금합니다."

(이장식) "기독교의 역사관은 직선적입니다. 창조에서 시작해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르는 그런 직선적 역사관입니다.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오신 후, 즉 구약과 신약입니다. 신약은 하나님의 새로운 선교, 바로 하나님 나라의 운동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역사죠. 그러므로 결코 유대나라의 운동, 다시 말해 '시온주의'(Zionism)는 올바른 역사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을 또 다르게 보면, 구약은 인류 범죄의 역사이고 신약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화해와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런 뒤 결국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크게 보면 기독교의 역사관이자 제가 이해하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흔히 역사를 말할 때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그러나 뜻과 섭리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게 되지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상규) "박사님 말씀처럼, 기독교 역사관은 3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그리스인들의 회기사관(回歸史觀)과는 다른,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 사관. 둘째는 인간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달렸다는 섭리사관. 그리고 역사는 정해진 목표, 곧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는 목적론적 사관입니다. 역사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 책임의 문제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인데, 그래서 어거스틴이나 콜링우드, 허버트 버터필드 등과 같은 학자들이 각자 해결을 시도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인간의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있지만, 인간은 결코 꼭두각시가 아닌 자유의지가 있는 책임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점에서 역사에는 100% 하나님의 섭리와 100% 인간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다른 주제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요즘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컸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해방 전후 기독교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했었나요?"

선교 초기 기독교의 역할과 공헌

(이장식)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우리나라는 선교사들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특히 중국 선교사 네비우스에 의해 고안된 '네비우스 정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그런 점에서 선교사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간혹 당시 독립운동과 관련해 선교사들의 정교분리 노선을 비판하곤 하는데, 일면 불가피했던 점이 있었음을 이해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 미국은 일본의 조선 점령을 지지하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선교사들이 전면에 나서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3.1 만세운동을 외국에 소개하고 민족적 수난을 국제사회에 알리면서 도움을 요청했던 이들은 거의 전부가 선교사들입니다.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기에 우리가 그것을 직접 외국에 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선교사들이 이 땅에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이런 것들은 무엇보다 선교의 도구였습니다. 교육과 치료만이 아니라 선교사업을 위해 학교와 병원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초기 선교에서 선교사들의 역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조선의 개화사상가들도 기독교를 적극 수용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조선이 근대화 하려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양과 기독교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요. 그러므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면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던 거죠. 이런 점들이 우리나라 근대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장식 박사. 최근엔 자서전 「창파에 배 띄우고」(한들)를 펴냈다. ⓒ송경호 기자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장식 박사. 최근엔 자서전 「창파에 배 띄우고」(한들)를 펴냈다. ⓒ송경호 기자

또 사경회 또한 교회성장의 배경이었습니다. 지금의 부흥회라고 보면 됩니다. 이 부흥운동은 무디의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무디의 부흥운동은 본래 '라바이벌 무브먼트'(Revival Movement)라기보다 '바이블 콘퍼런스'(Bible Conference)였습니다. 성경을 깊이 공부했다는 뜻입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감성적 측면이 강조되었습니다만, 어쨌든 이것이 초기 선교 확장에 주효했습니다. 사경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바로 나가서 전도를 했지요.

한글의 보급도 기독교의 기여라고 봅니다. 한글로 된 출판물들이 거의 다 기독교 관련 서적이었으니 더 말할 게 없지요. 기독교서회가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이처럼 한글의 보급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근대화에 공헌했습니다. 그 외에도 금주, 도박 금지 등 절제운동을 통해 사회 정화와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상규) "연세대학교에 계셨던 홍이섭 박사가 '기독교의 한국 전래와 전파는 한국사회의 혁명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동감했습니다. 박사님이 잘 분석하신 것처럼 기독교는 한국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지요. 근대적 의미의 교육기관을 설립해 인재를 양성하고, 서양의학과 의술의 보급, 민주·민권의식의 함양, 여권의 신장, 구습의 타파 등을 생각해 보면 기독교는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존 스토트가 '기독교는 그가 속한 사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회를 추구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최근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는데, 물론 한국교회가 윤리적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부 지도자들의 일탈이나 의롭지 못한 행위가 노출된 일이 있지만 그것으로 한국교회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한국교회가 사회복지, 사회봉사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특히 북한 인권운동을 하거나 탈북자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는 90% 이상이 기독교인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1960년대 이후 크게 성장했던 한국교회가 1980년대를 지나면서 주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독교의 쇠퇴와 분열

(이장식) "해방 후 기독교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그리고 경제 성장과 함께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민주화 되고 소위 잘 살게 되면서 권위와 간섭, 압박과 견제는 사라지고 자율과 관용의 시대가 왔습니다. 기독교도 물질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덩달아 교파도 분열을 거듭하며 많아졌지요. 그러면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의 흐려진 정체성입니다. '내가 목사다' 혹은 '장로다'하는 권위의식은 높아갔는데, '기독교인'이라는 자의식이 희미해진 것입니다. 요즘 보십시오. 밖에 나가서 '내가 기독교인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자연히 신분도 사명도 망각하게 되지요. 세속화 된 것입니다. 시간을 거의 대부분 직장에서 보내니까 교회에 갈 시간도 없습니다. 주변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많습니다.

갈수록 사회의 도전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이 그렇습니다. 신앙과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합니다. 학교에선 진화론을 가르칩니다. 무신론과 물신이 풍미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적 세계관과 점점 멀어집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의 교육 수준은 높아져서 일반 사회·과학·인문 지식은 많지만,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많이 떠났습니다."

▲이상규 박사는 얼마 전 35년간 교수로 몸담았던 고신대에서 은퇴했다. 인생의 또 한마디를 지나온 그에게서 은은한 여유가 풍긴다. ⓒ송경호 기자
이상규 박사는 얼마 전 35년간 교수로 몸담았던 고신대에서 은퇴했다. 인생의 또 한마디를 지나온 그에게서 은은한 여유가 풍긴다. ⓒ송경호 기자

(이상규) "저는 박사님 말씀에 덧붙여, 삶의 환경의 변화가 기독교세의 쇠퇴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GNP)이 1만불 이상이 되면 종교적 각성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어려운 삶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삶이 나아지고 안정되면서부터 더 이상 예전만큼 주님을 찾지 않게 된 것이지요. 특히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은 여가문화 자체를 변화시켰고, 예배 출석률을 감소시켰다고 봅니다. 출산을 억제하는 인구정책도 1980년대 후반 이후 교회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이 되었지요. 또 이 박사님 말씀처럼 기독교인의 정체성 상실도 교회의 쇠퇴에 양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폴란드의 사회철학자 콜라콥스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너무 쉽게 신앙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 교회의 속화를 촉진했다.' 공감합니다.

이 박사님, 앞에서 한국교회의 문제로 교파 혹은 교단 분열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뒤돌아보면 한국교회는 성장하면서 분열했고, 분열하면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사님은 한국교회 분열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장식) "교파분열에는 크게 신학적 요인과 비신학적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기장과 예장은 신학적 문제로 분열된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장 안에서 가령 합동과 통합의 분열이나 고신의 분열은 신학적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지연이나 인맥 같은 외적인 요인들이 분열에 영향을 끼친 것도 분명합니다. 그리고 평신도는 사실상 이런 문제와 무관합니다. 분열은 전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지요. 일반 신자들을 보세요. 신학 때문에 교회를 선택합니까? 그냥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교파 때문에 교회를 선택했다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어요. 따지고 보면 기장과 예장의 분열도 신학 싸움이라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이런 교파 분열이 낳은 폐단이 많습니다. 교파의식은 뚜렷하지 않으면서도 '저 교파에는 구원이 없다'는 식의 잘못된 행태를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여야 할 교인들이 서로 벽을 쌓고 있습니다. 비극이 아닐 수 없어요. 안타깝습니다. 교계 연합기관들도 난립해 있는데, 개인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양대 연합기관 하나씩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두 연합기관이 서로 협력도 하고 연대도 하면서 각자의 가치를 실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규) "박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반성할 점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 분열에는 신학적 요인보다는 비신학적 요인들이 더 많았고, 특히 지도자 중심으로 엮인 학연이나 지연의 영향이 컸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장로교의 경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생하신 박형룡 박사(1897년 생)를 중심으로 합동이, 한경직 목사(1902년 생)를 중심으로 통합이, 김재준 박사(1901년 생)를 중심으로 기장이, 한상동 박사(1901년 생)를 중심으로 고신이 형성되지 않았습니까? 그 후의 분열도 심각했지요. 교회 지도자들에게 연합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신이 능동적이고 자의적으로 교회를 분열했다고 말하는 분이 많습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고신은 분열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1951년 5월 부산 중앙교회에서 모였던 제36회 속회 총회에서 축출을 당합니다. 그 후에도 일 년간 총회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나 그것마저도 받아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별도의 교회조직을 갖추게 된 것이지요. 이 점을 헤아려 주었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세속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박사님은 그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세속화된 기독교... 성경을 교육하자

(이장식) "한 마디로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닮아간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 목사나 신자나 많이 세속화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만 해도 목사는 한 고을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람들이 목사를 많이 존경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렇습니까? 신자도 마찬가지구요. 세상 사람들과 별로 구분이 안 되니까요."

(이상규) "원로답게 박사님께는 한국교회를 성찰하시는 안목이 참 깊은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한 세기를 살아오시면서 한국교회에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으십니까?"

(이장식) "저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재교육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평신도, 곧 장로와 집사들에 대한 교육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질(質)의 문제는 아는 것, 즉 지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교리도 가르치고 제자훈련도 시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질적 성숙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평신도의 교육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신학적 지식을 함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상규) "네, 공감합니다. 기독교신학 전반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일반교양이 부족할 때 천박하게 되고 그런 기독교는 사회에서 무시당하게 되겠지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배우고 자기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박사님이야 말로 일생동안 공부하고 배우며 쉼 없는 수학의 날들을 보내오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고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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