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준 목사
권 준 목사

네슈빌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의사를 찾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제 옆에 앉아 있던 여성 분이 의사였습니다. 그 방송이 나오자마자 주저 없이 바로 일어나서 저의 앞으로 지나 나갔습니다. 그 의사분은 거의 한 시간 넘게 그 환자분을 돌보다가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저에게 아까 좀 무례하게 나갔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의사의 모습을 보며 부르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다른 사람이 혹시 나가나 주위의 눈치를 보며 조금 기다리며 나간 것이 아니라 그 즉시 반응하여 일어나 나갔습니다. 이것이 그분에 대한 부르심(calling) 이라는 것을 알기에 주저함이 없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곳에 잘 쓰임 받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도 각자에 대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대한 부르심이 있고, 큰일에 대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여야 하는지 그 의사분이 잘 보여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일어나는가를 보며 기다리며 눈치 보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그 순간에 즉각 반응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의 반응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부르시는 것이라 알면서도 주저하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이 그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오히려 그렇게 한 것이 더 이득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제 옆의 의사분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면 한 시간 이상 아침도 먹지 못하며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수고를 안 하고 편안히 비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한 것이 편안한 것이었겠습니까? 저는 그 의사분이 하도 오래 안 돌아오셔서 혹시 목사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불러 주기를 바라기도 했었습니다. 그 순간에 쓰임 받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와 저의 삶이 부르심 앞에 다시 서게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부르실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그 앞으로 뛰어나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만하니까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저함 없이 그 자리로 나가는 형제와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귀한 일에 좀 자주 불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형제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