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의 탈북자’ 지성호 씨. 그는 현재 자신의 삶에서 기독교 신앙이 ‘백프로’를 차지한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목발의 탈북자’ 지성호 씨. 그는 현재 자신의 삶에서 기독교 신앙이 ‘100%’를 차지한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지난 1월 30일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연두교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소개했던 탈북자 지성호 씨. 그가 힘차게 들어보였던 목발은 자유를 찾아 사선(死線)을 넘은 불굴의 의지, 그 자체였다. 북한에서 고통받는 자신의 형제 자매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하던 지성호 씨... 북한인권을 외면치 말라던 외침은 마침내 전 세계로 전해졌다. 그의 자세한 탈북 과정은 본지 기사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은 '목발의 탈북자' 지성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 지성호 씨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그에게 있어 기독교 신앙은 삶의 "100%"다. 기독교를 빼놓고 그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동료 탈북자들과 함께 만든 북한인권 단체 '나우'(NAUH)의 대표를 맡고 있는 지성호 씨를 12일, 서울 인사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김일성이 신이 되어야 하니까"

-기독교를 언제 처음 접하셨나요?

"한국에 오기 전인 지난 2000년, 굶주림 때문에 잠시 탈북해 중국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교회라는 곳을 처음 가보았습니다."

-교회를 찾아가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호기심에 '교회가 정말 나쁜 곳인가'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북한에서 교회가 나쁘다고 배웠나 보죠?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걸요. 교회는 나쁜 곳이며 나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배웠어요. 사람들을 착취하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하게 만든다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선교사고 목사라고 말이죠.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과도 같다고."

-북한이 기독교에 대해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그야 김일성이 신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보다 더 위대한 신이 있어선 안 되는 거죠."

-북한에도 봉수·칠골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그냥 보여주기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에서 기독교가 나쁘다고 가르칠 리가 없겠지요. 북한은 그런 식으로 외부에 자기들이 정상적인 나라라고 보이고 싶은 겁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걸. 일종의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코스 정도 되겠지요."

◈"한때 하나님 원망... 지금은 내 삶의 '100%' "

-중국에서 가본 교회의 모습은 어땠나요?

"따뜻했습니다. 남의 나라 땅이고, 탈북자들을 북송하는 그런 곳인데,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제 편이 되어 주고 제 마음을 이해해 준다는 걸 느꼈어요. 왜 제가 탈북해 중국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러면서 '교회라는 게 나쁜 곳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절 위해 기도도 해주었어요. 그곳에서 비록 잠시지만 성경도 배웠죠."

-그런 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셨지요?

"네."

(지성호 씨는 과거 한 강연에서 "북한 경찰은 '너 같은 병신-지 씨는 어릴 때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었다-이 중국 땅으로 넘어가서 구걸한 건 공화국의 수치'라고 했다. 다리가 없는 제가 중국에 가서 구걸한 것이 나라와 수령의 이미지를 망쳤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구해온) 쌀을 압수당했고 고문을 받았다. 저와 같이 잡힌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것이 마음에 큰 상처"라고 했었다.)

-당시 심정이 어떠셨나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 저를 이렇게 내버려 두시느냐'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러면서도 몰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도 의지할 분이 그 분밖에 없었던 까닭에 탈북할 때도 하나님께 기도했었습니다. 정말 간절히요. 성경에 대한 지식은 얼마 없었지만, 어쩌면 그 때가 지금보다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올초 미국 연두교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목발을 들어 보이고 있는 지성호 씨 ⓒ백악관 유튜브 영상 캡쳐
올초 미국 연두교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목발을 들어 보이고 있는 지성호 씨 ⓒ백악관 유튜브 영상 캡쳐

-현재 지 대표님의 삶에서 기독교 신앙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되나요?

"100%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게 다 하나님 안에서 이뤄진다는 걸 알았거든요. 돌아보면 북한에서 겪었던 고통들이 지금 제가 긍휼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화해·협력 좋지만 북한인권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현장에는 어떻게 참석하게 된 건가요?

"미국 측에서 먼저 참석해 달라는 제안이 왔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도 하셨는데,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셨나요?

"북한의 실상을 알려드렸습니다. 탈북자들이 북송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그야말로 북한인권 문제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했던 여러 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죠. 북한인권이 그토록 심각하다는 걸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였으니까요."

-북한에도 당국의 눈을 피해 기독교를 믿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 수야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도 성경책이 없고, 그래서 제대로 양육이 어렵다는 겁니다. 잘못해서 잡히기라도 하면 수용소로 가야 하니까요."

-앞서서도 잠시 언급하셨습니다만, 북한이 이렇게 기독교인을 혹독하게 다루는 이유는 뭘까요?

"(기독교가) 전파될까봐 두려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체제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북한 주민들이 기독교를 접하는 주된 통로는 무엇입니까?

"주로 라디오를 통해서 듣습니다. 그러니 방송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화해도 협력도 좋습니다. 다만 북한인권도 함께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요."

지성호 씨는
지성호 씨는"북한이 기독교인을 혹독하게 다루는 이유에 대해 "(기독교가) 전파될까봐 두려운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체제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진영 기자

◈"변하는 북한 주민들... 그들 위해 기도하길"

-혹시 북한에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북한 주민들이 과거보다 많이 깨어났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당국에 대한 실망 때문입니다. 한때는 굶주리면서도 그 장밋빛 약속을 믿고 충성을 다했는데, 현실이 그렇게 되지 않으니 점점 불신하게 된 겁니다. 모두가 충성했던 옛날과는 분명 다릅니다. 북한 주민들이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내 살점 건드리지 말라'고. 한 마디로, 해주는 것 없이 내 삶에 참견 말라는 겁니다. 내 살 길은 내가 찾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북한은 지금 겉으로는 사회주의 시스템이지만 그 안에는 자본주의가 조금씩 돌아가고 있어요. 장마당도 그런 차원이고."

-그럼 북한 체제가 더는 버티기 힘들까요?

"불안한 조짐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독재국가들은 한 사람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이 물질적으로도 북한을 도와야겠지요?

"그렇긴 하지만, 그냥 보내면 대부분이 주민에게 가지 않습니다. 일부 특권 계층에만 흘러갈 뿐이죠. 그런 점에서 인도적 지원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혹시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을 향한 사랑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통일도 그런 마음가짐에서 접근했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이서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선물처럼 통일을 주지 않을까요? 또 대한민국에 온 탈북자들의 정착에도 신경을 써주었으면 해요.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수가 약 3만1천명 정도인데, 그들과 하나될 수 있으면 그 안에서 작은 통일을 미리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지성호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의 휴대폰에 찍힌 발신자는 '말을 안 듣는 놈.' 전화를 받자마자 익살스러운 소년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지 씨는 "삼촌" 하며 재잘거리는 소년과 한동안 웃으며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 흔한 삼촌과 조카 사이의 살가움이다. 하지만 지성호 씨는 그 소년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지난해 지성호 씨의 도움으로 탈북한 소년. 지금은 먼저 탈북한 어머니와 한국에서 산다.

당연히 진짜 가족일 거라 생각했다. 그 소년과 통화하던 지성호 씨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