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장기간 납치돼 있다가 풀려난 미국의 그라시아 번햄 선교사가 약 15년 전인 당시의 경험을 나누었다.

최근 미국 워싱턴 D.C. 외곽에 소재한 맥린바이블처치에서 진행된 순교자의 소리 어드밴스드 콘퍼런스에 참석한 그녀는 "납치된 기간에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보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믿음이 없었는지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선교단체 '뉴 트라이브스 미션'(News Tribes Mission, 현 에스노스360·Ethnos360)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그녀와 작고한 남편 마틴은 지난 2001년 5월 27일 아부 사야프 대원들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

두 사람을 비롯한 20명은 팔라완의 도스 팔마스 리조트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붙잡혔다.

번햄 선교사는 필리핀 군인들과 대원들간의 교전 끝에, 붙잡힌 지 376일 만인 2002년 6월 풀려났다. 이 과정 중 남편은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여러분들의 기도에 감사드린다. 난 우리의 시련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시련은 그렇지 않은가? 모두 우리를 잊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고, 내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인질로 잡혔을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양말도 없이 장기간 도보로 걸으며 발에 피가 난 것도 아니고,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정글 바닥에 더럽고 오래된 쌀푸대를 깔고 잠을 청해야 했던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존재한다고 믿고 싶지 않았던 내 실체가 떠올랐다. 난 증오에 찬 나 자신을 보았고, 믿음이 없는 나 자신을 보았다.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라시아 번햄 선교사
ⓒ그라시아 번햄

절망과 자포자기 속에서 그녀는 하나님께 변화를 위해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 시련이 언제 끝나게 될 지를 물었다.

"하나님께서 날 정말로 변화시켜 주실 지에 대한 확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난 엉망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그분은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변화시키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게 하시는 분이다. 이는 바로 우리는 이렇게 살길 원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하나님께서는 화가 난 인질을 붙들어 그녀의 마음에 사랑을 넣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깨어진 내 마음에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은 고통 밖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주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은헤의 날을 주시고 다시 그분을 위해 살게 하신다"고 고백했다.

특히 인질들의 몸값이 지불되고 석방이 결정됐으나 아부 사야프 지도자들은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며 석방을 거부했던 2002년 부활절 당시가 가장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내가 잠이 막 들려고 할 때, 마틴(남편)은 내게 '그라시아, 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해주셨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이는 충분하다'라고 말했주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불하신 대가는 충분하다. 이는 하나님을 만족시켰고, 더 이상 죄를 위한 희생은 필요없게 되었다'고 말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번햄의 시련은 1년 이상 계속되었고, 결국 사랑하는 남편까지 잃게 되었지만, 그녀는 인질로 억류되었던 사실 뿐 아니라 남편의 죽음까지 하나님의 뜻안에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 "하나님은 필리핀에서 사역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군인 부부를 키우셨다. 시간이 있다면, 그들이 우리를 붙잡았던 대원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 가운데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나누고 싶다. 좋은 소식은 아부 사야프 대원 4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 씨뿌림이 없이는 거둘 수 없다는 사실에 도전을 받았다. 씨를 뿌리는 일이 항상 즐겁진 않다. 오늘 우리는 단단한 씨앗을 뿌린 이야기를 들었다. 씨를 뿌리는 일은 불편하고 당신은 열매를 얻지 못할 지 모른다. 게다가 씨를 잘 뿌리지 못해서 왜 이 일에 부름을 받았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