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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 나라의 운명을 열기 위한 참모본부

기독일보

입력 Apr 08, 2018 05:58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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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 선생.
남강 이승훈 선생.

개교식은 청명한 하늘 아래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호흡하며 시작되었다. 최초의 신입생들은 앞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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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뫼의 솔 빛은 항상 푸르러

비에나 눈에나 변함없이
이는 우리 정신 우리 학교로다.

교가 합창이 끝난 후 이승훈은 그들을 향해 간곡히 당부하였다.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라는 말 그대로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조상님들이 오늘까지 피땀 흘려 지켜온 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찌 일본놈들에게 내어줄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 이런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총칼을 들고 나서서 싸우는 사람도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는 말할 것 없거니와 백성 모두가 정신적으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안일한 생활만 누린다면 그건 간접적으로 우리나라를 파는 행위와 같습니다. 나는 이 학교를 통해 인재들을 양성하고 그들을 위해 이 나라의 미래를 꿈꾸고 싶습니다."

그는 목이 메어 잠시 말을 끊더니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훔쳤다.

"내가 이 학교를 경영하는 것은 오직 우리 민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내가 학교를 경영하거나 그 외 사회의 모든 일을 할 때 신조로 삼고 나가는 것은 첫째 '민족을 본위로 하라'는 것과 둘째 '죽기까지 심력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어떠한 곤란과 핍박과 위험이 앞에 있더라도 싸워 이기고 또 위안을 얻습니다.

오늘 입학한 학생은 7명밖에 안 되지만 오래잖아 70명이 되고 700명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몇 사람부터라도 내부의 힘을 길러 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학문을 갈고 닦아 이 나라의 밝은 등불이 되어 주세요.

마지막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청춘 시절인 여러분에게 주는 말이 있으니 가슴 속에 새겨두고 음미해 보길 바랍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이승훈의 확신에 찬 연설은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가슴 뭉클한 감격을 주었고 새로운 각오를 지니게 했다.

오산학교가 문을 연 후 이승훈의 열정은 더욱 불타올랐다. 만족감을 넘어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는 학교를 운영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임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대항하는 한 방편으로서 추진했던 것이다. 그래서 외형상으로는 학교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오산은 나라의 운명을 열기 위한 참모본부였다.

'전쟁에 임한 자에게는 휴식시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는 학교 운영을 위하여 끼니를 잊다시피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루는 역사를 가르치는 여준 선생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 이제 새로 태어났으니 아호를 짓는 것이 어떨는지요?"

"호를?"

"전부터 생각해 봤는데, 남강(南崗)이 어떨지요?"

"남강? 그게 무슨 뜻이오?"

"선생님은 날마다 학교 앞 언덕을 넘어서 댁으로 가시잖아요? 그 언덕이 남쪽에 있으니 언덕 '강' 자와 합쳐 남강으루 지어 봤지요."

"남강이라! 따스한 남쪽 언덕.... 그래, 좋군요! 허허...."

하지만 추운 시절이었다. 그는 남강이란 새로운 이름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채, 한 많고 헐벗은 민족의 언덕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오산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구별 없이 함께 동고동락했다.

무명옷을 입고, 조밥에 된장을 먹으면서 지냈다. 그래도 모두 활기가 넘쳤다.

남강은 매사에 먼저 나서서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운동장 터를 닦을 때도 학생들과 함께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일했다.

하루는 저녁 때 기숙사로 찾아가 학생을 몇 명 불러내더니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이런 곳에서 정신이 청정할 수 있겠나?"

"죄송합니다."

"말은 필요 없고, 우선 청소하자!"

그러더니 자신도 학생들과 함께 도구를 들고 대소변을 치우기 시작했다.

"저희들이 치울 테니 돌아가시지요."

"그게 무슨 소리냐. 함께 끝을 보자."

교장 선생은 윗옷을 벗고 잠방이 차림으로 다 치워냈다. 그런 다음 학생들을 가까운 가게로 데려가 단팥빵을 사주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뜰을 쓰는 것, 자기 방을 깨끗이 치우는 것, 교실을 정돈하는 것,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는 것.... 이 모든 일은 곧 자기 자신의 성공을 위하는 길로 통하니 명심하게. 자신부터 청정한 사람이 되어야 나라를 구할 수가 있어."

이런 가르침은 곧 남강 자신의 삶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도중에 좌절하거나 지체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자는 다짐이었다. 오산학교 출신 중 평생을 올곧게 살아간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가르침 덕분이었으리라.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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