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본능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동물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에 의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님에도 잔인함을 행하기도 한다. ⓒoliver.dodd
(Photo : ) ▲배고픔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본능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동물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에 의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님에도 잔인함을 행하기도 한다. ⓒoliver.dodd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원칙이다. 강하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육식동물이 연약한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광경이 가끔 카메라에 잡힐 때면, 사람들은 육식동물의 무자비함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배고픔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본능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동물들과 본능에 의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님에도 동족을 '사냥'하는 인간들 중, 과연 어떤 쪽이 더 잔인할까.

인간이 만들어온 왕따의 역사는 아주 길다. 처음엔 그저 무리에서 능력이 뒤처지는 사람을 조금 무시한다거나, 심할 경우엔 식량 할당량에 차이를 두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그 정도까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수준의 따돌림이다. 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생존 사회에서 남들보다 현저히 뒤떨어지는 능력치를 가진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는다는 건 어찌 보면 불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동족 사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따돌림의 수법은 점차 교묘해지고, 영악해졌으며 가해자들의 연령층은 자꾸만 낮아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왕따를 당하는 사람도, 왕따를 시키는 사람들도 자신들조차 이유를 모르고 왕따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었다. 강북의 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다희(가명) 양은 본인의 학급에서 '진행 중'인 왕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학기 첫 달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기간이에요. 자칫하면 첫 목표물로 정해질 수 있거든요. 4학년 때는 그걸 모르고 연예인 얘기하고 다녔다가 잠깐 왕따 당한 적도 있었어요." 다희 양의 나이는 고작 12살.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5학년은 왕따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관심사조차 마음대로 얘기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왕따를 주제로 한 연령별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놀랍게도 요즘 학생들은 왕따에 굉장히 무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딜 가도 있는 게 왕따, 굳이 잘못을 하지 않아도 생겨나야하는 왕따. 학급의 밸런스를 위해 왕따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왕따는 이제 청소년 문화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처럼 아이들 위를 군림하고 있었다.

물론 왕따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도 분명히 존재한다. 스쿨 폴리스(school police)제, 혹은 또래 상담센터가 없는 학교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로 많은 학교가 위의 두 시스템 중 하나를 선택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들이 딱히 커다란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스쿨 폴리스는 학급 내부의 속사정을 모두 알지 못한다. 그저 약한 학생들을 때리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누가 봐도 불량배인 학생들을 검거하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 또래 상담센터 역시 가해자가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이상, 피해자의 억울함을 효과적으로 풀어주지 못한다. 게다가 보통 10대 왕따 피해자들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상담센터로 걸어 들어가는 것부터가 피해자들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왕따는 어떻게 해야만 사라질 수 있을까. 아니, 왕따 없는 세상은 과연 만들어질 수나 있는 것일까. 왕따 없는 세상은 유토피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건 간에 왕따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정도를 줄이는 것이 현세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따 체험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김유진
▲김유진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이는 일본에서 이지매가 한창 유행했던 2000년도 초기에 일본 교육부가 제안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동심을 깨뜨리는 방법이라며 비난이 일기도 했지만, 사실 왕따는 지금도 그 범위를 계속해서 넓혀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모두 자각해야 한다. 유치원에서까지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와중에 동심을 깨고 말고를 따질 겨를이 없다.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외로움을,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서러움을 다소 낮은 강도로, 하지만 직접적으로 느껴본다면 잠재적 가해자들의 수 역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해 볼 수 있다.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인간들은 그에 발맞춰 점점 더 영악해진다. 때로는 문제와의 강한 대면만이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유진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왕따없는세상운동본부 학생총회장(http://outca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