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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했던 목사와 자유민주주의

기독일보 김진영 기자

입력 Mar 22, 2018 06:52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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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주한미군 철수’ 반대 외쳤던 박조준 목사

박조준 목사. 그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그나마 역사적으로 증명된, 최선은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보완해 가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라고 했다. ⓒ박조준 목사

박조준 목사. 그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그나마 역사적으로 증명된, 최선은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보완해 가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라고 했다. ⓒ박조준 목사

"어느 정치적 입장이나 정당을 두둔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로 굳건히 서 나가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그 기초가 흔들리면 안 되니까요."

84세의 노(老) 목회자. 두 눈의 초점은 또렷했고, 비록 쇠약했으나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무언가를 머리로만이 아닌 가슴과 삶으로 경험했을 때 뿜어져 나오는 그런 힘이 그에겐 있었다. 박조준 목사다. 22일 후배 목회자들과의 '목회 나눔' 자리를 막 끝낸 그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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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6.25 한국전쟁 당시 월남했다. 그가 북한을 떠났던 건, 오직 신앙의 자유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 남한에 올 이유가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랬다. 그의 말처럼 그 때의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나을 게 없었다. 단 하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 그 아래서 허용된 신앙의 자유만이 북한보다 빛났다.

박 목사는 그와 같은 북한 출신으로 영락교회를 개척해 대형교회로 일군 故 한경직 목사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반공'이라는 점에서 그와 故 한경직 목사는 통하는 데가 있었다. 박 목사는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영락교회의 담임목사가 됐다.

그가 영락교회 담임목사로 있던 1977년 초. 박 목사의 마음을 뒤흔드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돌연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나온 것. 공산주의를 피해 가까스로 월남한 박 목사, 그리고 그처럼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이들에게 이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박 목사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1천여 명의 목사들, 그리고 성도와 함께 거리로 뛰쳐나갔다. 미국대사관저 앞에서 '주한미군 철수 반대' 성명을 낭독했다. 난생 처음 해 본 시위였다. 이 때가 어떤 시대였나? 유신체제의 서슬이 퍼렇던, 엄혹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이 때 만큼은 정부도 교회에 어느 정도 기대는 눈치였다고 한다. 마침내 박 목사는 카터 대통령의 특사를 만날 수 있었다.

"목회만 하셨던 분이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박 목사를 만난 특사의 첫 마디였다. 박 목사가 대답했다. "공산주의를 피해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에 왔는데, 미군이 철수해 버리면 어떡합니까? 기회를 엿보던 북한이 우릴 공격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럼 그 피해를 다 어찌합니까?"

그러자 특사가 다시 맞받았다. "걱정마세요. 목사님. 주한미군을 철수하더라도, 점차적으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군의 군사력이 북한 인민군보다 훨씬 강합니다." 하지만 박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제 체구가 특사님보다 작지만, 제가 선공을 하면 우선 특사님이 맞겠지요.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한 뒤 북한이 남침하면 우리가 많은 피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강할지라도 지금은 미군이 있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겁니다."  

박 목사에 따르면 당시 카터 대통령은 인권을 중요시 했다. 주한미군 철수도 인권을 억압했던 박정희 정권에 대한 일종의 압박 수단이었다. 그러나 박 목사는 "쥐를 잡겠다고 독을 깨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미국 측 특사에게 카터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했다. 돌아보면 참 무모했던 행동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박조준 한경직
▲한경직 목사와 함께 사진을 찍은 박조준 목사 ⓒ박조준 목사

박 목사는 비록 카터 대통령은 만나지 못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주한미군 철수를 옹호했던 PCUSA(미국장로교)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주한미군 철수를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결국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 않았다.

현재 한반도는 남북·미북 정삼회담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평화 분위기로 고조돼 있다. 박 목사 역시 대화에 거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우의를 양보해 가면서까지 북한에 다가가는 것 만큼은 우려했다.

"나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봤습니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 맛을 본 사람이지요. 이런 말을 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그런 체제를 고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뭐가 그렇게 나쁘냐?'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을 한 번 보세요. 거기에 정말 계급이 없습니까?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나요? 아니지요.

시장경제를 우선하는 자유민주주의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나마 역사적으로 증명된, 최선은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보완해 가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입니다. 특히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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