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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랑한 ‘영적 거성’ 빌리 그래함 목사의 별세를 애도하며

기독일보

입력 Feb 23, 2018 07:07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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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그와 같은 영적 지도자

1973년도에 열린 서울 크루세이드 집회의 전경. 여의도에서 총 3일 동안 열린 집회에 약 300만 명이 모였다. ⓒBGEA 제공

1973년도에 열린 서울 크루세이드 집회의 전경. 여의도에서 총 3일 동안 열린 집회에 약 300만 명이 모였다. ⓒBGEA 제공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 전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가 21일 몬트리트의 자택에서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그래함 목사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이제 주님의 품안에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돌이켜 보자. 1918년 11월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태어난 그래함 목사는 1940년 플로리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로스앤젤레스(LA) 전도대회를 인도하면서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를 설립해 전 세계 선교에 나서면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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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함 목사의 우리나라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한국을 방문해 미군들을 위로하고,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각종 집회를 통해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만났다. 성탄절에는 경무대(警珷臺)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만나 대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전도집회의 음반을 1953년 발매하였다. 그의 설교가 담긴 타이틀은 'Let Freedom Ring(자유가 울리게 하라)'이었다. 또 음반에는 이승만 대통령과의 대담을 함께 수록해 전쟁 중이던 한국에 대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지원과 반공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1956년 그는 한국을 다시 방문, 한경직 목사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며 한국교회의 부흥과 재건에 기여했다.

한국교회는 그래함 목사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것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영적 지원이었다. 한국교회의 급성장에는 1907년 평양대부흥 이후 1970년대 수많은 부흥성회와 대부흥운동이 있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 엑스플로 74 가 바로 그것이었다.

1950년대 이후 1973년 다시 한국을 방문한 그래함 목사는 집회를 시작하며 "한국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를 통하여, 필자는 한국과 한국민을 사랑하는 그의 심정을 느끼게 되었다.

1973년 여의도 5·16 광장 및 전국을 투어하며 열린 그래함 목사의 설교는 복음을 알기 쉽게 전해줬다. 집회는 연인원 50만명이 목표였으나 무려 100만명이 참여하면서, 한국교회가 하나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가능성과 함께, 한국교회가 폭발적 성장을 가져오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는 한국 개신교계의 역사적 명장면으로도 꼽힌다. 그래함 목사 자신도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크고 역사적인 전도의 날이며, 한국 어느 곳에서나 영적인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감격을 쏟아낸 바 있다.

ⓒBGEA 페이스북
 ⓒBGEA 페이스북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5천만 민족 복음화'라는 비전과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북한 동포 해방'을 위한 메시지를 통해 북한교회의 재건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 1974년 '엑스플로 74' 집회로 전도와 철야기도, 산기도의 열정이 일어나면서 한국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했다.

엑스플로 74 전도집회에는 334만 명 이상의 인파가 운집했고, 100만명의 결신자를 내었다. 권위주의 통치 시절 국민들의 영적 통로 역할을 했던 이런 영적 전도집회가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도 선하고 큰 영향을 미쳤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그 후에도 1980년 '나는 찾았네',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의 설교자로 꾸준히 방한해 한국교회 부흥의 불을 지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에는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당시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갖고 성경과 함께 복음을 전하였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 역시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며 구호활동을 펼치고 역시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하였다.

별세하기 얼마 전까지도 그래함 목사는 "내 남은 생애 가운데 한국의 남북이 통일된 모습을 보고 싶다"며 "통일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주님께 구하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면 통일은 꼭 이루어진다"고 당부했다.

그래함 목사는 60여 년간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설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2억여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로서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이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의 '영적 멘토'로도 활동했다.

이효상 원장이 지난해 11월 전시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연구원 제공
이효상 원장이 지난해 11월 전시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연구원 제공

불꽃같은 삶을 산 복음주의자 그래함 목사의 별세를 맞아, 한국교회도 영적 거성을 잃은 아픔으로 함께 애도하자. 그리고 한국교회에도 복음적 영성과 더불어 사회적 균형감각을 지닌, 복음 전파에 일생을 걸었던 전도자 빌리 그래함 같은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큰 영적 지도자가 나와야 할 때이다.

이효상 원장
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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