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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우상 제물 해석을 통해 본 바른 지식(고전 8:1-13)

헬라의 고린도지역은 우상과 잡신과 음란이 넘쳐나는 도시였다. 시장에 출하되는 육류들 대부분은 온갖 잡신들을 향한 음란한 제사 속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들이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들을 먹어도 되는 것인지 바울에게 질문하였다. 이 문제는 초대교회 심각한 문제이기도 했다(행 15장, 롬 14-15장). 이제 고린도전서 8장 본문을 통해 이 우상에 바쳐진 제사 음식과 먹거리 전반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자.

1. 첫째, 우상(idol)은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 8: 1-7절).

당시 고린도사람들은 우상에 대해 약간의 지식들이 있었다. 그걸 가지고 서로 고기를 먹어도 되느니 먹으면 안 되느니 투닥 거리며 논쟁을 벌였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다음의 5가지를 지적한다.

1) 지식(여기서 지식은 남보다 별난 신비적 지식 즉 영지주의적 지식을 말함)을 자랑하는 것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2) 지식보다 덕을 세우는 것이 사랑이다.
3) 지식이 있다고 생각(자랑)하는 자들은 실은 당연히 알만한 것도 잘 모르는 자들이다.
4) 참 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관련된다.
5) 따라서 하나님이 알아주는(인정하는) 사람이 참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인간의 길흉화복, 흥망성쇠, 생사를 주관하지 못한다. 따라서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대단하게 여길 필요도, 겁낼 필요도, 거리낄 필요도 없다. 제사 음식이든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이든 먹든 안 먹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는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아닌가(6절). 우상에 바쳐진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의 문제는 사실 믿는 이의 논쟁 거리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이방인들이나 따질 문제이다.

2. 둘째, 식물은 우리를 세우지 못 한다.-먹거리의 유익은 아주 작은 유익에 불과할 뿐이다(8절).

이것을 일반은총이라 한다. 즉 믿지 않는 이들도 누릴 수 있는 자연 은총이다. 물론 인간에게 바른 먹거리의 유익은 분명히 있다(단 10장). 평범하게 먹든 잘 먹든 작은 유익일 뿐이요 영생을 믿는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다만 약간의 유익(수명 연장, 육체적 건강)이 있을 뿐이다. 건강하게 살아도 결국 인간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시 90:10).

세우지 못 한다는 말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본질상, 잘 먹는 유럽 사람들이나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우상 식물을 먹는 자들이나 먹지 않는 자들이나 식물은 우리의 영적 삶을 세우는 일과 별 관련이 없다. 음식은 선하지만, 거룩과 무관하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경건해지는 것은 아니다. 바리새인들은 정결법과 안식일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정결하지도, 안식을 누리지도 못했다.

경건에 이르는 길을 사도 바울은 말씀과 기도,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그 자체로 속된 것은 없다. 다만, 부정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부정할 뿐이다(롬 14:14).

3. 하지만 자유함이 믿음 약한 자를 넘어지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9-12절).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요 우리를 세우는 것도 아니므로 먹든지 안 먹든지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자유하더라도 절제할 필요가 있다. 믿음 약한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믿음이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형제에게 죄를 지으면 안 되고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런 것들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약한 자를 실족케 함은 아주 큰 죄이다(마 18:6). 자유하다고 목사가 거리낌 없이 아무 것이나 함부로 먹는 것을 보고 초신자들이 멋대로 따라하면 교회는 질서가 무너지며 혼란이 발생한다. 사실 목사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무엇이든 먹어도 아무 문제 없다고 보양식조차 함부로 거리낌 없이 즐기는 경우가 있으나 때론 조심해야 한다. 필자는 애완 동물을 아주 사랑하는(?) 어느 기독언론 기자가 사철탕 등 보양식 즐기는 교회지도자들을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강하게 비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4. 사도 바울의 개인적 처방-신앙 지식보다 앞선 복음을 위한 배려와 사랑(13절)

먹어도 아무 상관 없는 이 우상 제물 문제에 대해 사도 바울은 어떤 개인적 처방을 하고 있을까? 바울은 무엇을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복음을 위해 기꺼이 절제한다. 복음만 전해진다면 고기 한점 덜 먹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랑으로 나아가는 복음의 대선배 사도 바울의 선한 마음과 결단을 배우자.

필자는 과거 부산 집회 가서 하루 세끼를 모두 회만 먹은 적이 있다. 집회 장소와 대접해주시는 분들이 모두 다르다보니 생긴 불상사(?)였다. 내륙 사람이라 회를 그다지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내게는 아주 큰 고역(苦役)이었다. 사도 바울이 볼 때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마음이다(1-3절). 대접해주시는 분들의 준비된 사랑을 생각해서 거부 하지 못하고 필자는 하루 종일 회를 꾸역꾸역 열심히 먹었다.

사도 바울의 개인적 처방은 신학적 지식과 처방보다 사랑이 먼저였다. 사도 바울은 먹어도 상관없는 우상에 바쳐진 제물을 형제들을 위한 배려로 평생 먹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과연 목사들이 강아지를 친자식처럼 여기는 형제들을 위해 사철탕 먹기를 금할 수 있을까? 이것이 범인(凡人)들은 흉내 내기 어려운 사도 바울의 결단이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