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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다니던 여성잡지사 기자였던 여자 동료 하나가 남자들의 착각과 오버에 대해 '밥맛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했던 말이 있다.

"하여튼 남자들은 3초만 쳐다보면 자기 좋아하는 줄 안다니까...!!"

남자들은 여자가 딴 생각하느라고 어쩌다 시선이 자기한테 잠시 머무르게 되면, 그 뒤로 눈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남자인 내가 생각해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많이 비슷하고 조금 다른지도 모르지만, 남자들이 여자보다 자기애적인 성향이 조금 더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흔히 여자를 꾈 때 '칭찬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거야말로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이고, 내가 볼 때는 남자에게 더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고전적 수법이 여자 낚시용(?)으로 인식된 이유는 간단하다.

오래 전에는 얼굴이나 옷 등에 신경을 많이 쓰는 쪽이 단연 여자였다. 그리고 그런 간지러운 소리는 여자들에게나 할 만한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여자 뺨치게 예쁜 남자들이 상당히 많은 세상이다.

예전에 다른 칼럼 중에서 '플레이보이'에 관한 것이 있고, '연애를 잘하는 여자'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 두 개의 글을 읽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재미있는 현상이 엿보였다.

남자들은 플레이보이의 특성들을 보고는 '거의 내 얘기'라면서 대체적으로 동조를 표시한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도 않는데, 자기 얘기라는 것이다. 최소한 몇 가지는 자기도 해당된다고 속으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연애를 잘하는 여자'를 읽은 여자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런 여자가 어디 있느냐, 너무 이상주의적 이야기가 아니냐..., 하면서 자기 이야기로 오해하거나 비약시키지는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남자들에게 자기도취적 성향이 더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물가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넋을 잃고 들여다보다 빠져 죽은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나르키소스, 즉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그도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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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남자는 이런 측면들을 가졌다. 그러므로 남자에게는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 여학교 주변을 배회하는 속칭 '버버리맨'의 심리도 그런 것과 약간 연관이 있다. 그들은 여학생들이 소리를 빽빽 지르고 하는 것이 '괜히 좋으면서 오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내숭 떠는 것일 뿐, 속으로는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기 기분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변태적 오산이다. 버버리맨이 바라는 그런 여학생은 내가 알기론 거의 없다.

만일 남학교 주변에 버버리우먼(?)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남학생들은 십중팔구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은 물론,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면서 침낭을 펴고 그 길목을 지킬 만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를 보았는가? 이렇게 간단한 것을 문제의 변태남들은 그리도 착각하는 것이다.

남자가 누군가한테 사랑이나 호감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약간은 차이가 있다. 남자는 자기에게 호감을 느끼는 상대가 누구인가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일단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즉 내가 남자로서 얼마만큼의 매력을 지녔는지 검증받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더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명예욕 같은 것이다. 남자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누구나 알아주는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나, 그곳에서 여자들의 호감을 끌어서 인기맨이 되는 것은 남자로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자들은 자기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가 사랑하지 않으면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남자는 자기 좋다고 하는 여자를, 그게 몇이든 잘 외면하지 못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100명보다 자기가 원하는 단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여성이 남자들의 공세가 귀찮다고 하면, 남자들은 그 감정을 잘 이해하기 힘들다. 행복한 비명에 잘난 척이라도 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부자가 가난뱅이에게 "에이, 집에 수영장 있어봐야 관리만 어렵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은 정서로 삐딱하게 들린다는 말이다. 물론 여자도 자기한테 오는 구애를 필요 이상으로 즐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남자의 경우는 예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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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자가 자아도취적인 사고방식으로 뭔가 착각을 하거나 자기에게 오는 호감에 오버로 의미 부여를 한다면, 그냥 단순히 이해해 줄 필요도 있다. 남자들은 관심 없는 상대가 자신에게 구애를 하면 그녀의 마음 자체보다는 친구들에게 떠벌이며 과시할 생각에 속으로 즐거운 것일 수도 있다.

강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남자이지만, 그들은 사실 여자보다 연약한 존재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더 오래 살아남는 것도 여자이고, 평균수명이 10년 가까이 긴 것도 여자라니까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이런 남자의 심리, 의외로 단순하고 허세도 많은 마음을 알면 의외로 그들의 마음을 열기 쉬울 것이고, 마음이 없을 때는 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남자들에게 시선이 오래 머물면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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