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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직접 학교를 세워, 진정한 애국심 고취시켜…”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an 22, 2018 08:50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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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꽃불 영혼 (4)] 안명근의 방문

 

▲남강 이승훈 선생.
(Photo : ) ▲남강 이승훈 선생.

황해도는 이승훈이 열여섯 때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유기그릇을 지고 다니며 장사를 했던 곳이라 제2의 고향이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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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을 잠시 쉬며 망연히 바라보던 황해 바다는 그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던가. 어머니와도 같이 푸근히 감싸며 잔잔한 해조음으로 들려 주던 말씀.

'내 아가야, 가엾은 내 아기.... 엄마가 너를 낳아놓고 보호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녜요, 엄마. 저는 늘 그립고 보고 싶기만 해요.'

'세상을 살아내기가 힘겹겠지만, 악에 지지 말고 선하게 살아만 다오.'

'네, 어머니....'

눈물 방울이 돋아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연등사에 머물며 앞으로의 일을 모색하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덥수룩한 사내가 그를 찾아왔다. 창백한 안색이었지만 눈동자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괴청년은 자신이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명근이라고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뒷날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쏴 죽인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지요?"
이승훈이 애써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왜 이런 곳에 은둔해 계시지요? 세상의 현실 속에서 민족 사업을 도모해야 하잖습니까?"

이승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때 나는 우리나라 안에서 산업을 일으켜 우리 손으로 공장을 세워 물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철도를 가설하고, 항만을 만들고, 나아가 우리 손으로 총과 대포를 만들고, 군함도 만들어내면 그것이 외세를 막아내는 힘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오."

안명근이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이젠 그 생각이 바뀌었단 말입니까?"

"네, 바뀌었소이다."

"어떻게요?"

"사람은 체력과 정신력이 동시에 중요합니다. 체력이 부실하면 헛소리를 하고, 정신력이 약하면 엉뚱한 짓을 하다가 결국엔 스스로를 망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두 가지가 다 약합니다. 나는 모색 중입니다. 이제는 정신적인 힘, 다시 말해 교육의 힘으로 스스로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어요."

"그럼 구체적인 방법도 세우고 계십니까?"

"이제 세워야지요. 우리 손으로 직접 학교를 세워 사람들에게 진정한 애국심을 고취시켜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좀 생각을 달리 하는데요."

"어떻게요?"

"지금 온 백성이 앞날을 모른 채 허덕거리고 있습니다. 일본 놈들은 당장 총칼을 겨누고 덤벼드는데 우리가 책만 펴들고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먼 장래를 내다본다면...."

"무슨 뜻이죠?"

"지금 상황에 우리가 일본과 무력으로 대결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교육의 힘은 한계가 없지요."

"미래를 바라보자구요?"

"내 말은 지금 현실적인 애국운동이 필요없다는 게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인 힘은 정신적인 데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 각자가 사리사욕 없이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안명근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역시 속이 깊으시군요. 우리의 뜻이 꼭 이루어지길 빌며...."

연등사를 떠나는 안명근과 작별한 이승훈은 자신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바람결 따라 간간이 들려오는 청아한 풍경소리뿐, 세상모르게 고요한 절간에서 이승훈은 오히려 세상 현실에 대해 걱정과 고민을 했다.

푸른 하늘에 떠 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이 세상은 왜 이리도 악독할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리고 싶기도 했다. 스님이 치는 목탁 소리는 머릿속을 텅 비게 하면서 동시에 맑게 하기도 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느니라.

현상이 진리와 다르지 않고

진리가 현상과 다르지 않으며

현상이 곧 진리요 진리가 곧 현상이니

느낌과 생각과 언행과 의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공즉시색, 색즉시공....

뻐꾸기 소리에 섞인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듣고 따라 중얼거려 보기도 했으나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하여 빙긋 웃고 말았다.

어느 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 보았다.
"대웅전(大雄殿)은 어떤 뜻인지요? 어쩐지 좀 이상스런 느낌이 듭니다. 대웅전은 절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 아닙니까. 불교는 무심과 무아를 중시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굳이 대웅이나 대영웅으로 부르지 않아도 될텐데...."

"그래요. 이건 우리가 모두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지요.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 민족은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 고유의 선도(仙道)를 지침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각 나라마다 꿈과 뿌리가 있지요.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 모든 민족은 자기네들의 선조를 알려 주는 역사와 철학사상과 종교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많은 외침을 겪는 동안 꿈뿌리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지요.

대웅은 즉 한웅입니다. 불교는 이 땅에 들어오면서 우리 민족의 거부감을 줄이고 토착화를 하기 위하여 절의 중심인 법당을 대웅전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한웅님은 우리 한민족의 마음 속에 홍익인간의 큰 뜻을 심어 주기 위하여 성스러운 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지어 내리셨다죠. 불교는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를 받아들여 그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얼마 후 연등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 이승훈은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꼬박 사흘 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그는 서당을 세우고 어린 학동들과 함께 공부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배달돼 온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 등을 꼼꼼히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가끔 평양으로 나가 쓸쓸히 대동강변을 거닐면서 나라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기도 하고 고서점에도 들르곤 했다.

이승훈은 보던 책을 덮고 마당으로 나갔다. 흙담 밑의 화단에 민들레꽃이 함초롬히 피어나 있었다. 노란 꽃송이가 예뻤다. 여린 향기를 풍기는 꽃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파르르 떨었다.

"부벽루 밑의 돌 틈에 힘겹게 피어난 꽃보다 결코 더 행복할 수가 없겠구나. 나라가 풍전등화 꼴이니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조차 어이 안녕하리...."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계속>

 

▲김영권 작가(점묘화).
(Photo : )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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