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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목사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의 열심’이 일하신다"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an 16, 2018 10:03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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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희망은 여기에

(Photo : )

하나님의 열심

박영선 | 무근검 | 416쪽

책을 읽은 방법은 중요하다. 동일한 책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언제' 읽느냐이다. 언제 읽느냐의 문제는 어떤 책을 어느 시기에 읽어야 한다가 아니다. 동일한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읽히는 맛과 느낌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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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30년 전,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책을 읽었을 때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한 절 한 절 곱씹으며 읽었다. 성경을 몇독 한 후에야 성경의 역사와 배경을 희미하게 알았다.

신학을 하면서 다시 성경을 통독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성경이지만 새롭게 다가왔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해석된 성경을 전부라고 생각하다, 직접 읽었을 때 뜻밖의 사건과 의미들을 발견했다. 모세오경의 특징도 알게 되었고, 사사기에 나타나는 범죄의 순환 고리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교회 사역을 20년쯤 하고 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 전과 또 달랐다. 쉬워 보이던 성경 말씀들이 무겁게 다가왔고, 분명해 보이던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지식적이고 이성적인 해석이 아닌, 실존적 의미를 더 찾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묵상한다. 기고할 글도 많고, '생명의삶 플러스'를 집필하기 위해 매일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성경 속의 하나님을 찾는 수준이었다면, 지금 성경을 읽을 때는 무릎 꿇은 사무엘처럼 '하나님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심정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박한 것이다.

성경을 수십 번 통독했지만, 요즘에야 겨우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희미하게 감이 잡힌다. 예전으로 돌아가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지라도, 마침내 성경이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게 될 것을 고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 아니다. 어쩌면 성경은 우리의 삶이 궁해지고, 마음이 겸허해질 때 은혜의 물줄기가 흘러 들어온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이 있다. 그 책은 표지가 하얗고 모서리가 누렇게 변색된 책이다. 난 그 책을 사놓고 몇 장을 골라 읽었을 뿐, 제대로 읽은 적은 없다. 언젠가는 읽어야 한다는 '숙제'로 가슴 한편에 남겨진 책이다. 언젠가는.... 그렇다. '언젠가는'이지, '언제까지는' 아닌 것이다. 그렇게 난 이 책을 숙제로만 간직할 뻔했다. 그러나 최근에 성경 읽기의 관점들을 찾아가면서 오래된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나를 압도했다.

이제 성경을 그냥 읽는 시대를 지났다.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다르게 읽어야 한다. 최근 들어 그레고리 비일의 <성전 신학>과 존 월튼의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을 읽고 있다. 이 책들은 '성전'이란 주제로 성경을 깊게 읽어 나가는 것의 결과물들이다. 월튼이 고대 근동 신화와 비교하며 창조가 '성전'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고 말한 반면, 비일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환상과 '성전의 성경 신학'을 탐색한다.

두 책은 '성전의 관점으로 성경 읽기'인 것이다.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 나갈 때는 그 이전의 성경 읽기와 사뭇 다르게 성경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성경 읽기는 성경이 가지는 풍성함에 경이를 느낄 수 있다. 필자가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을 기필코 읽어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은 새로운 성경 읽기의 독보적인 책이다. 그 전에도 성경 읽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열심>의 양과 방법, 정경학적 풍성함과 목회적 깊이는 그 이전과 이후로도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앤서니 티슬턴은 <기독교 교리와 해석학>에서 1부 1장의 제목을 '부유하는 문제들에서 삶의 해석학적 물음으로'라고 정했다. 그는 이곳에서 해석학은 궁극적으로 갈등으로부터 시작하여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경 해석학은 의미의 단계, 독서 전략, 역사적 거리, 적용, 참여, 형성을 탐구하고, 종종 끈기 있고 주의 깊은 경청을 그 특징으로 한다. 텍스트, 공동체, 그리고 전통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이 시야 속에 들어 있다(28쪽)." 즉, 교리는 실존적 갈등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해석함으로 얻어낸 '답'의 일부분인 것이다.

▲저자 박영선 목사.
(Photo : ) ▲저자 박영선 목사.

박영선 목사님이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은 '갈등' 때문이다. 갈등은 교회를 교회답게, 믿음을 믿음답게 세우고 싶은 목회적 갈등이다. 이 책은 이미 명료한 결론을 내리고 시작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좀 더 풀어내자면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역사를 운행하시며,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지금 이후로 영원히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사 9:7)."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정확하지 않다. '여호와의 열심'이 정확하다. 하나님은 권능과 능력자로서의 보편적 하나님을 뜻하지만, '여호와'는 친밀성과 구원의 의미를 부여할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의 열심은 이스라엘 백성 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열심이다.

박영선 목사는 서문에서 책 속에 소개된 성경 인물들은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은 누구시며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드러내 주는 역사 속 증인(6쪽)"이라고 말한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욥, 다윗, 엘리야, 베드로, 바울.... 이들은 믿음의 후배들에게 '좋은 모델'이 아니다. 그들은 '증인'이다.

모델이 아니라 '증인'이라면, 우리는 성경을 다르게 읽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설교를 통해 성경의 인물들'처럼' 살아야 할 것을 제시받았다. 박영선 목사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19쪽)"고 주의를 준다.

단지 좋은 모델이 된다면, 여전히 부족하고 현저히 나약한 우리들에게 절망을 줄 것이다. 영웅시된 성경 인물들에 대한 설교는 자칫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한다.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창세기는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려고 하는가?

"구원 얻을 만한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조건이 우리에게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신자가 된 것입니다. ... 구원의 조건을 인간에게서도 찾으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를 얼마나 좌절하게 하는지 모릅니다(29쪽)."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언하는가? 아브라함은 스스로 가나안에 가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그를 이끄신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 또는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열심(36쪽)"인 것이다.

야곱은 어떤가? 야곱은 "하나님이 포기하시지 않는 인생(167쪽)"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덮친다. 모든 상황이 야곱에게 불리하고 좌절할 이유밖에 없다. 야곱은 스스로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했다면 왜 "장자로 태어나게 하시지 않았을까(172쪽)?"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면, 왜 우리를 여전히 실패와 고난 가운데 던지실까? 이 땅(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면서 왜 에서는 기세등등하고, 라반은 20년 동안 야곱을 속이도록 내버려 두실까?

고달픈 인생, "이것이 야곱의 인생(174쪽)"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는 만사가 형통한가? 자녀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가? 야곱의 생애 중에서 고달프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간교한 야곱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이런 뜻으로 주십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자식에게 기꺼이 져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 고집 센 야곱의 허벅지를 치시는 아버지의 사랑,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에는 이런 하나님의 열심과 성의가 새겨 있습니다(231쪽)."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싸움을 거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싸움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패하심으로 이기시고, 물러남으로 성취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아브라함에게, 야곱에게, 욥에게,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에게 하나님의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은 하나님과의 싸움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흔적'이다.

사랑하면 약자가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이시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이기신 적이 없다. 죄인들이 회개하면 모두 용서하셨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찾아가신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이기신다.

책을 읽고 마지막 나에게 남겨진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발견이다. 그러나 결코 식상하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수많은 책 중에서 유독 이 책이 마음을 짓누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도가 마지막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드려야 할 면류관이기 때문이 아닐까? 바울의 고백처럼 더 수고하고, 헐벗고, 굶고, 죽음의 지경까지 다다르는 고난을 겪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께 열심'을 외치던 1990년대 초반이나, 한국 기독교가 위기라는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성경 읽기의 관점은 '하나님의 열심'이다. 폭발적 성장의 후유증으로 자만의 몸살을 앓을 때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을 강조해야 했다. 기독교가 서서히 몰락해 가는 듯한 침체기에 접어든 지금 이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열심'은 희망이자 도전이다.

나는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희망을 본다. 그것은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 즉 하나님의 질투 때문이다.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에레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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