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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직자의 가장 큰 수치는 재산을 축적하려는 것"

기독일보

입력 Jan 08, 2018 12:46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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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칼럼] 단순한 삶을 위하여!

스페인 ‘아빌라’의 테레사가 세운 산타테레사 수도원

스페인 ‘아빌라’의 테레사가 세운 산타테레사 수도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잠 27:17, 19)".

형! 이 겨울 북면 골짜기의 서늘한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교회하랴 북카페 운영하랴 이런저런 핑계로 수도원에 올라간 지가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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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우리가 수도원에 매료되었던 것은 하늘과 나무와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때론 궁벽한 변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도시를 정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도 수도의 길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지만요.

수도사들은 세상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을 불태우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장작처럼 자신을 바싹 말려 하나님의 작은 불꽃에도 온 몸을 사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용케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수도사들이 세상을 떠나 광야로 들어갔을 때, 세상은 광야까지 그들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사람을 떠나고 새로운 말을 만나기 위해 침묵했던 수도사를 찾아, 로마와 유대의 귀부인들조차 사막으로의 긴 여행에 동참하였습니다. 빛나는 영혼들이 숨 쉬는 곳에 세상은 발길을 멈추는 모양입니다.

요즘 세례 요한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5-7)."

형! 세례 요한의 삶과 언어가 정말 단순했잖아요. 요즘 교회는 단순하다는 것과 쉽다는 것을 종종 착각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삶은 모든 수도자들이 그렇게도 도달하고 싶어하던 '완덕'의 단계였습니다. 그들은 '이중의 시선(double vision)'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시선(single vision)'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34절의 '네 눈이 성하다'는 말은 그 원래의 의미가 분명 눈의 '단순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세례 요한이나 모든 구도자들은 주의 말씀처럼 자신의 눈이 성하길 바랐던 것이지요. 그 단순했던 요한의 삶이 사람들의 발길을 광야로 옮기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삶을 결단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머릿속의 가난'과 '실제적 가난'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가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 이전에, 이미 이 두 가난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삶의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수도원은 숙식이 보장되었다는 면에서 '은수사(隱修士)'들보다 부요한 환경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수도사들의 첫 출발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철저한 포기의 삶, 버리는 삶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이 실제적 가난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던 경험은 생각 속의 가난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실제로 가난한 삶을 살았고, 그곳에서 삶의 단순성을 확보했습니다. 그것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조차 광야의 요한을 찾게 만든 영적 힘이었고,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의 '일갈(一喝)', 거친 광야의 소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메시지는 있지만 그 메시지에 담긴 고뇌와 삶의 서성거림을 잃어버린 지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짧지만 둔중한 그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광야의 단순한 삶이 사람들의 마음을 쏘는 일침이 되었습니다.   

성인들처럼 우리도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광야로 향할 수는 없지만, 요즘처럼 배부른 목사로 사는 것이 당당한 일처럼 여기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교회의 세습은 다름 아닌 부의 세습입니다. 작은교회에서 하루 하루를 보듯 살아가는 대부분의 목사님들의 마음이 저만큼 헛헛하겠지요. 목사인 우리가 이정도면 세상은 교회에 대해 오만정이 다 떨어질 것 같습니다.

형! 우리가 검박한 성직의 삶과는 너무 멀리 왔나 봅니다. 칼빈은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주재한 아퀼레이아(Aquileia) 종교회의에서 가톨릭의 사제와 주교에 대적하면서 '주의 사제에게는 가난한 것이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제롬이 주장한 것처럼 주교의 영광은 빈민을 돌보는 것이며,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모든 사제의 수치는 재산을 축적하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주교와 사제들은 자기 교회에서 가까운 작은 집에서 살며, 값싼 음식을 먹고, 값싼 가구를 사용하라는 고대 종교회의들의 거듭된 발표문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조차도 조언을 구했다던 수도사의 아버지 안토니우스(Antonius), 스스로 자신을 거세했던 오리게네스, 가난을 성녀(Lady poverty)라 불렀던 프란치스코(Francisco), 모두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는 마태복음 19장 21절 말씀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형! '최소한의 것'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야겠지만 '최소한의 것'을 붙잡고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성직의 삶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단순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어렵겠지요. 이 단순함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더 많은 홀로 됨의 시간과 고독의 은혜가 필요하겠지요.

기도를 연구하는 것보다 한 순간이라도 진실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소중하듯이, 단순함을 정의하기보다 단순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비춰주는 맑은 거울과 같은 고요한 물(明鏡止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얼굴은 남의 얼굴에, 내 마음도 남의 마음에, 물에 비치듯 비친다"는 말씀처럼 서로에게 그렇게 비쳐지기를 바랍니다.

그 청결한 마음 간직한다면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은들 어떻습니까. 성공하지 못한들 어떻습니까. 누군가 나를 잊어버린들 또 어떻습니까.

언젠가 함께 이야기 나누었듯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참된 회심은 그와 그의 친구 알리피우스(Alipius)가 아프리카 출신 폰티키아누스(Ponticianus)를 통해 사막의 수도사 안토니우스(Antonius)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였습니다.

배운 것도 없는 무명의 한 그리스도인이 이집트 사막에서 그토록 하나님을 갈망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친구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 그의 영적 선생이었던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있었지만, 눈물의 회심으로 그를 직접 이끈 것은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사막 수도사 '안토니우스의 생애'였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무명의 수도사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참된 회심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들고, 읽어라(Tolle lege, Tolle lege!)"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로마서 말씀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는 말씀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날을 곤두세웠으면 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갈아주고, 닦아주다 퍽퍽해질 때쯤 한 웅큼의 물을 뿌려 더 큰 예지(銳智)의 날을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요.

돌아보면 스무 살의 질문만큼 서른이 왔고, 서른의 질문만큼 마흔이 왔습니다. 마흔의 질문만큼 쉰의 삶을 지나갑니다. 메마른 광야 길을 걷는 우리는 또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야 할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에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야 하고, 저녁에 잘 때는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숨은 단지 주님의 안배(按配)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던 안토니우스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저 한 발자국씩만 걸읍시다. 뛰려고도 말고 날려고도 말고, 그날 닥쳐오는 일을 한 발자국 씩 만 다지면서 가면 갈 수 있겠지요" 라며 발맘발맘 걸었던 주기철 목사를 기억합니다. 자신의 일기(日記)를 일기라 하지 않고 일보(日步)라 하며 정릉계곡에서 청결한 새벽 물로 날마다 몸을 씻었던 김교신을 기억합니다.

"나는 성령이 불길처럼 가슴속에 역사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건강이나 힘을 내일이나 내년을 위해 아끼지 마십시오. 매일 매일 죽을 만큼 애써 일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내일이나 내년에 필요한 힘을 내일이나 내년에 다시 주실 것입니다" 라던 폐병 3기의 이용도 목사를 기억합니다. 우리에게도 매일 한걸음씩 소중한 일보(日步)가 있기를 바랍니다.   

형! 어릴 적 함께 살던 수원의 작은 집 기억나지요? 한 지붕 세 가족이었던 집이었지요. 가난과 갖가지 고통이 집구석의 거미줄처럼 질기게 이어진 낡고 오래된 집이었습니다. 힘든 어린 시절은 왜 그리 더디게 흘러 가든지요.

하지만 그곳이 목회자로서 우리의 출발점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짊어진 '가난'이었지만, 이제는 크리소스톰(Chrisostom)의 말처럼 '자발적 가난'을 간직하며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일들로 내 자신이 참 혼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다시 그리운 것들을 가슴에 품고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나무 아래 수도원'이 궁벽한 변방에 이는 맑은 바람이길 바랍니다. 그 바람이 도시 골목을 돌다 어느 가슴에 여린 봄꽃을 피우리라 믿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찾아가겠습니다. 황지우의 시처럼 눈발 때문에 휘어지더라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기품 있는 소나무 아래에서 새해 벽두에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겠습니다.

서중한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다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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