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필리핀은 6·25 전쟁 때 우리나라에 군인들을 파견하여 도와주었습니다.

필리핀은 한반도의 약 1.3배 크기이며,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인구는 거의 1억 명에 가까울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아직도 필리핀 가정은 보통 4-5명의 자녀들을 낳아서 키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필리핀은 한국에서 남쪽으로 4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면 다다를 수 있으며, 적도 부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연중 무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으며, 다만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분될 뿐입니다.

즉 1년의 절반은 비가 많이 오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비가 거의 오지 않습니다. 필리핀은 섬나라이기에 자연이 아름답고, 관광할 만한 곳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 필리핀에 10년여 이상 사는 동안 여행을 그리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한국에서 여동생이 와서 함께 보라카이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수기였음에도, 그곳은 바닷물이 정말 맑은 청정구역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보라카이도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듣고 있지만, 필리핀에는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런 아름다운 해변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에 필리핀의 그것과 같은 관광지들이 있었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필리핀은 모든 지역이 관광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런 부분에서는 복을 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필리핀은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잦기로도 유명합니다. 매년 태풍만 수십 개가 지나가고, 이로 인해 수백 명이 죽고 상해를 입습니다. 특히, 우기에는 비가 많이 오다보니 산사태도 자주 일어나고, 전기가 끊어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또한, 필리핀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지진이 자주 일어납니다. 제가 살던 필리핀 북부 바기오에도 1990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당시 지진으로 무너진 하얏트 호텔 건물의 잔해 등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필리핀
▲필리핀 바기오의 축제 모습. ⓒ북뉴스 제공

한국의 경주와 포항에 진도 5점대의 지진이 발생해 국민들이 많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지만, 필리핀에서는 5점대 지진은 정말 수시로 발생합니다. 제가 바기오에 살 때, 5점대의 지진이 한 달에 세 번이나 지나간 적도 있습니다.

필리핀은 43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36년간 식민지로 있었는데, 필리핀은 그 열배가 넘는 세월을 스페인의 식민지로 살았던 것입니다. 마젤란이 이끄는 원정대가 필리핀에 상륙하면서, 스페인은 필리핀을 신식무기로 쉽게 제압하고 그곳을 식민지화하였습니다.

남쪽에는 이슬람 세력이 있었으나, 오랜 싸움을 통해 스페인은 필리핀 전 지역을 장악하였습니다. 스페인은 무기를 가지고 선교를 펼침으로써 필리핀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가톨릭 신자로 만들었습니다.

스페인이 통치하는 동안 크고 작은 저항운동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1800년대 말에 이르러 미국이 스페인을 몰아내면서 필리핀은 미국령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40여 년간 필리핀을 지배했으나, 그들은 무력통치보다는 교육과 정치를 활용한 통치를 펼쳤습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일본이 필리핀을 4년간 점령하면서, 광산을 채굴하여 많은 금들을 캐갔습니다.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필리핀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었고, 그 뒤부터 필리핀은 자국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라가 불안정하였고, 나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군부 출신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어 20년간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마르코스 통치 말기에 야당 지도자인 베그니노 아퀴노가 공항에서 내리다 암살당하자 국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마르코스를 축출했고, 아퀴노의 아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몇 대의 대통령이 이어지다 지금은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민다나오의 다바오 시장으로 오랜 세월 동안 재직한 사람으로, 아시다시피 철권 통치로 유명합니다. 두테르테는 다바오 시장으로 재직할 때도 자경단을 운영하여 범죄자를 즉결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포정치로 인해 혼란했던 다바오 시가 정연한 도시로 탈바꿈되기도 했지만, 그때도 인권문제는 끊임없이 대두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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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북부의 비간도시. ⓒ북뉴스 제공

사실, 필리핀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라입니다. 자주 쿠데타가 일어나고, 국민들은 여차하면 시민혁명을 일으키려 노리고 있습니다. 남쪽 지역에는 이슬람 세력이 포진해 있어 각종 테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실은 스페인이 필리핀에 가톨릭을 전파하기 전에 남부지역, 즉 지금의 민다나오는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곳에서는 이슬람과 가톨릭 간에 반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하지 않았다면, 필리핀은 인도네시아처럼 강력한 회교국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필리핀은 미국처럼 자위적 차원에서 총기소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총기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범죄자들도 총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백화점이나 은행, 공공기관 등에서는 건물을 출입하는 이들에 대해 매번 몸수색을 합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필리핀의 실업률은 20%를 넘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설사 직업을 가지게 되더라도 안정된 직장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필리핀은 상위 5%가 토지와 부의 9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매우 심합니다. 필리핀의 진짜 부자들은 웬만한 한국 부자들을 능가한다고 합니다. 독과점을 규제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은 정말 엄청난 부자입니다.

필리핀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어도 그에 따른 세금이 과중되지 않습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등록비만 내면 세금 부담 없이 몇 대를 굴릴 수 있습니다. 부자들이 살기 좋은 곳이 필리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종부세 같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중산층이 거의 없고 간신히 끼니를 잇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대체로 여가생활은 꿈도 꿔보지 못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가족 제도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보통 삼대가 같이 모여 살고 있으며, 사위도 그 가정에 함께 모여 삽니다. 한 집안에 보통 10여 명 이상이 같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계 사회라 여성의 파워가 센 편입니다. 아키노 여사와 아로요 여사와 같은 여성 대통령이 두 명이나 배출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더 대접을 받는 경향이 있고, 여성들이 더 직장을 많이 다닙니다.

남자들이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남자가 집안 살림을 하고, 여자가 직장에서 돈을 버는 경우가 흔합니다. 남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란 택시기사, 가드 등의 일이고, 여자들은 백화점 점원, 은행원, 영어 튜터 등을 많이 합니다.

필리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4년제로 통합되어 있었고, 또 초등학교를 한국보다 1년 더 일찍 들어감으로써 보통 20세쯤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체로 일찍 결혼해서 여성들이 보통 22-23살에 아이를 갖습니다.

이렇게 매우 이른 나이에 결혼하기 때문에 별거율도 높아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 이혼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역설적이지만 그 때문에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남편과 아내가 아닌 다른 남자나 여자와 함께 사는 가정도 많습니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필리핀은 사회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인정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보통 두 사람 이상의 아내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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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최북단 파곳붓. ⓒ북뉴스 제공

아내가 여러 명인 것이 자신의 부와 권세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현상은 특히 이슬람 세력의 영향이 큰 남부지역에서 강한 편입니다. 하지만 성실한 신앙인들은 성경적 원리를 따라 일부일처제를 고수합니다.  

또한, 필리핀 사람들은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신분상승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 사람과 결혼해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자기 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위기입니다. 어찌 보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로망'인 셈이지요.

필리핀의 정치, 경제, 사회를 볼 때, 평균적으로 우리나라보다 30-40년가량 뒤쳐져서 따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1970-1980년대의 삶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필리핀 모습과 비슷합니다.

필리핀은 비교적 부정적 측면이 많이 있는 나라이지만, 좋은 점도 많이 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관계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가족의 일은 곧 내 일이어서, 만사를 제쳐놓고 협력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규율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가족을 넘어 친족 간에 협력도 잘 이루어집니다.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간에 질서가 잘 잡혀 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은 교사의 권위를 인정해줍니다. 학교폭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매달 학생의 성적 순위가 발표될 정도로 학업경쟁이 치열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의 모습이 필리핀 학교에서는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낙천적인 필리핀 사람들의 성격은 우리가 본받을 만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웃과 서로 잘 소통하고 지냅니다. 주말이면 이웃 사람들과 함께 담소하며 음식을 나누고 노래와 춤을 즐깁니다. 생일이면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까지 함께 초대해서 축제를 즐깁니다.

그래서인지 행복지수가 우리나라보다 더 높고, 그에 반해 자살률은 매우 낮습니다. 확실히 행복은 부와 비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해맑은 이들의 미소는 오히려 정감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다음 번에는 필리핀의 종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채천석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대표, 필리핀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