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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관람 전,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것

기독일보

입력 Dec 28, 2017 05:08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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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上)>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한국의 죽음관: 무속신앙과 불교가 합작해 낸 사후세계, 저승

현재 한국 미디어 업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무속신앙(巫俗信仰)의 문화 콘텐츠화는, 이전에 드라마 <도깨비> 분석 칼럼을 통해 밝힌 바 있듯 갈수록 더 세련되고 매력적인 결과물을 산출해 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무속신앙을 깊이 다루고 있는 영화∙드라마 작품들은 다시 두 가지 층위로 구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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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무속신앙 자체를 주제로 삼고 있는 작품들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찾아보면 멀리는 1977년부터 12년간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일부 에피소드를 들 수 있고, 가까이는 작년(2016년) 개봉한 <곡성>을 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별도로 존재하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무속신앙을 활용하는 작품들이다. 흡입력 있는 서사 전개를 위해 무속신앙을 활용하는 작품들의 수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를 찾아보면 2015년 개봉된 영화 <검은 사제들>이나 2016-2017년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를 들 수 있다.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 구마사제의 영적 전투와 희생이 주제를 이루고 있고, <도깨비>는 무속신앙에 등장하는 여러 신적 존재들에 의해 매개되는, 혹은 이 신적 존재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남녀간의 사랑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무속신앙 자체를 주제로 삼는 작품은, 아무래도 무속신앙을 부차적 요소로 활용하는 작품들보다 전반적으로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갖는다. 사실 영화 <곡성>은 미남∙미녀 유명배우가 주연을 맡은 것이 아닌데다, 비교적 대중성이 떨어지는 호러 장르임에도 상당한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 누적관객 수는 700만에 약간 못 미치는 기록을 남겼다.

물론 총 제작비 100억 예산으로 상당한 수익을 거두기는 했으나, 절대적 누적관객 수는 한국영화의 상업적 대성공 기준선인 1,000만에 크게 못 미치는 준작 수준을 기록했다. 여러 유명 평론가들의 호평이 쏟아진 점을 고려하면 완벽하게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곡성>의 준수하면서도 아쉬운 성적은 미디어 콘텐츠 내에서 무속신앙이 갖는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속신앙은 남녀간 사랑이나 가족애 등 비교적 거부감 없는 주제를 전달하는 보조적 도구로서는 상당한 매력을 갖지만, 그 자체로서만 두고 본다면 아직은 두렵고, 낯설고, 저급해 보이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신과 함께
▲무속신앙을 주제로 삼은 영화로서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영화 <곡성>.

금번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의 원작 각색 방향도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명 웹툰 작가인 주호민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 인기작 <신과 함께>를 영화화한 것이다.

웹툰 <신과 함께>는 무속신앙을 매력적인 미디어 콘텐츠로 재현하는 데 가장 성공한 사례 중 하나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온라인 상에서 대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작품은 그간 무속신앙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던 낯설음과 두려움, 그리고 경원시하는 시선을 크게 무마시킬 만한 재미, 유머,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반면,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은 가족애와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강화함으로써 웹툰 원작과는 다르게 실질적으로 무속신앙을 주제가 아닌 부차적 요소로 삼은 작품이다. 1,000만 관객 돌파를 위해 무속신앙을 서사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옮겨 놓고 대중성을 대폭 강화한 셈이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의 총 제작비는 42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1편과 2편을 동시에 제작하는 방식을 택했으므로, 편당 제작비는 단순 계산시 약 210억원 정도로 볼 수 있다. 이는 각 편당 7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출이 영화의 흥행에 결정적인 요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출중한 연출이 뒷받침되면 무속신앙이라는 주제가 유발하는 낯설음과 두려움은 흥행에 큰 장애요소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신과 함께: 죄와 벌>의 김용화 감독은 자신의 연출력에 큰 자신감을 갖지 못한 듯하다. 그는 흥행을 위해 가장 안전한 길, 즉 원작으로부터 주제가 아닌 설정들만 취합해 신화 판타지를 표방하는 가족드라마로 재구성하는 길을 택했다.

이로써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개연성이 극히 저하된 서사를 전개하는데다 웹툰 원작이 전달하고 있는 한국 무속신앙의 매력과 신비스러움을 그리 온전하게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

신과 함께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 <신과 함께>. 작화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뛰어난 서사와 현실풍자로 인해 무속신앙의 매력을 확대한 작품이다.

온라인 상에서 웹툰 <신과 함께>가 거둔 성과, 영화계에서 <곡성>이 거둔 준수한 성적, 그리고 케이블 상에서 드라마 <도깨비>가 이룩한 흥행 성공을 바라보면, 무속신앙이 갈수록 미디어 콘텐츠의 대세로 편입되는 추세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금번 <신과 함께: 죄와 벌>이 1,000만 관객 몰이에 성공한다면, 이런 추세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제작되고 흥행하는 영화들 대부분은 남북관계, 정치부패, 조직폭력, 질곡의 한국 역사 등을 주제로 선정하고 있고, 이는 갈수록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전통 무속신앙에 결부된 초현실 세계가 영화의 서사에 참신한 바람을 몰고 온다면, 예상치 못한 호응을 얻어낼 수도 있다.

물론 금번 개봉한 결과물을 놓고 본다면,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다양한 영화 관련 언론 및 평론가들의 활약으로 국내 관객들의 눈높이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세계 영화계의 추세 역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점차 양질의 연출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규모 영화로 흥행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원작의 매력을 파괴하고, 그저 자본의 힘과 구태의연한 연출에 의존하는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국 대중문화의 전반적 추세가 점차 무속신앙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쩌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존 무속신앙보다 월등히 세련된, 그래서 출중한 상업성과 대중성을 갖춘 '무속문화의 르네상스'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은 비록 그 결과물이 초라하지만, 국내 대기업 영화 자본이 무속신앙과 무속문화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다.

◈무속의 재흥(再興): 원래의 문화적 위상을 회복해 가는 한국 무속

한국의 무속신앙은 기본적으로 생사화복, 그 가운데 특히 죽음을 다루는 데 특화된 원시종교(primitive religion)다. 통상 원시종교라 하면 선사시대 및 고대 종교들만 연상할 수 있으나, 보다 넓게 보면 이런 종교들 가운데 현재까지 고등종교의 범주에 편입되지 못한 채 기존 원시적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존속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원시종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신과 함께
▲한국의 무속신앙은 최소 2,0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존속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원시종교다.

원시종교의 특징은 체계화된 경전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교리가 그리 체계적이지 않아 전도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개 원시종교를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시종교는 그 나름의 강점이 있다. 원시종교는 신학이나 교의 등에 의해 이론화되지 않은, 직접적인 삶의 경험과 욕망을 수긍한다. 그래서 매우 유연한 태도로 민중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원시종교들은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교의를 갖춘 고등종교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국 무속신앙의 발전상을 보면 이런 원시종교 특유의 생존력이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한국 무속은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의 고등종교 유입과 함께 오랜 기간 고난의 역사를 겪어 왔다. 그나마 남북국 시대(신라-발해 시대)와 고려시대에 국교로 자리잡았던 불교는 시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민간의 무속신앙에 일정부분 관용적 자세를 유지했다. 특히 왕실 및 귀족 중심으로 성장한 교종(敎宗)과 달리 민간을 중심으로 성장한 선종(禪宗)은 무속신앙에 비교적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도교의 영향을 깊게 받았던 선종은 경전 교리의 해석보다 삶의 직접적 깨달음에 강조점을 두었다. 선종 덕분에 무속신앙은 불교와 도교 사상을 어렵지 않게 흡수할 수 있었다. 이로써 무속신앙은, 비록 경전 형식으로 집대성되지 못한 채 구전에 의지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여타의 원시종교에 비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사상적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 구전된 사상을 집대성한 무교경전도 존재한다.

신과 함께
▲<신과 함께>에 묘사된 지옥의 이미지는 불교의 내세관을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 이는 한국 무속신앙의 사상적 체계 정립에 불교가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학, 특히 성리학(性理學)이 국교로 자리잡으면서 무속신앙은 오랜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조선의 성리학은 유학의 테두리 안에서도 유별나게 배타적인 유파였고, 사문난적(斯文亂賊)을 가리는 데 열심을 냈다.

이런 태도는 유교 외 종교들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에 불교 승려와 무속인은 제대로 된 종교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 승려들의 경우 학문이 깊고 도량이 넓은 소수의 상층 승려들은 왠만한 중인(中人) 신분 수준의 대접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하층 승려들은 양인(良人)보다 못한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무속인에 대한 처우는 더 박했다. 무속인은 원칙적으로 천민 취급을 당했다. 물론 양인과 천민을 아우르는 일반 민중 사이에서 영험한 무속인은 상당한 종교적 권위를 행사하기도 했지만, 국가로부터는 공식적으로 억압과 제약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무속신앙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비교적 조직적인 탄압을 받았는데, 이는 한국 고유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려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었다.

신과 함께
▲일제강점기 강원도 고성. 일본의 학자와 경찰이 한국 무속인의 굿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문화의 미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무속신앙을 미신으로 규정했다.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 집권기에도 무속신앙은 실질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단속 및 억제 대상으로 규정됐다. 미국 유학파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눈에 무속신앙은 소멸돼야 하는 구습이자 이교 전통으로 비쳐졌다.

그는 집권 이후 수시로 무당과 박수들을 단속했고, 1958년 사이비 종교 단속을 위해 각 종교 교리를 심사하는 교리심사위원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당연히 무속신앙은 이 교리심사에 통과하지 못하고 사이비 종교로 규정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도 국가적 차원의 무속신앙 억제책은 지속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달리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무속신앙이 국가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진행한 국가개조 프로젝트인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상당한 수의 신당, 점집, 성황당 등이 파괴되었고, 이로 인해 무속인들은 활동 범위가 극히 제한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한국의 무속신앙이 회복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부터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군사 쿠데타'라는 적법치 않은 방식으로 정권을 획득한 전두환 정권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비록 광주민주화운동 자체는 학살에 의해 강제적으로 진압되기는 했으나, 전두환 정권은 이 일을 계기로 민심을 폭넓게 달래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야 했다. 소위 3S 정책(Sports, Sex, Screen)이라 하는, 대중문화를 이용한 우민화 정책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시행된 때가 바로 이 시기다.

3S 정책의 대표적 결과물로는 프로야구 리그 출범, B급 성인영화의 범람, 그리고 '국풍(國風) 81' 같은 민족문화 부흥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무속신앙은 이 민족문화 부흥 프로젝트에 힘입어 그간 위축됐던 기세를 되살릴 기회를 얻었다.

무속인들은 점차 공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점술이나 굿 등을 시행했다. 여기에 더해 그간 주류 방송사와 영화계에서 각광받지 못하던 무속신앙이라는 소재가 점차 영상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전환의 대표적인 사례가 KBS 2TV 인기 시리즈였던 <전설의 고향>이다. <전설의 고향>은 아직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기 전인 1977년도부터 방영돼 이미 큰 인기를 얻고 있었으나, 전두환 정권 출범 후 민족문화 부흥 프로젝트가 개시되면서 이전보다 적극 무속인과 무속신앙에 친화적인 에피소드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신과 함께
▲1977년부터 인기리에 방영된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

이 시기 이후, 무속신앙과 무속문화는 급격하게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무속신앙의 외연 확장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었다. 이로써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 속에는 이전보다 더 대중친화적이고 스마트한 무속문화가 침투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웹툰,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 형태를 가리지 않고 그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의 정치 역사는 오랜 시간 무속신앙을 탄압하고 억제했다. 그렇지만 무속신앙은 삶의 직접적 경험과 욕망에 호소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한국 민중의 정신세계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오늘날 목격되는 무속신앙과 무속문화의 재흥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된다.

◈무속과 죽음: 무속신앙이 가르치는 한국인의 사후세계, 저승

무속신앙의 기본 구도는 죽음을 가운데 두고 이승과 저승이 포진해 있는 이원적 세계관이다. 이승은 산 사람들의 세계, 저승은 죽은 이들이 가는 곳으로 규정된다. 한국의 원(原) 무속신앙이 가르치는 이승과 저승의 관계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현세, 지옥,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간의 수직적 위상 구도와 다르게, 수평적 위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신과 함께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에 등장하는 저승의 한 장면.

바리데기(바리공주) 신화(오구풀이), 강림도령 신화(차사본풀이), 자청비와 문도령 신화(세경본풀이) 등에서 확인되는 저승, 즉 서천(西天, 서역에 있는 인도를 이상향이라고 믿는 불교 사상을 반영)은 비록 훗날 불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새롭게 명명된 내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 원 무속신앙의 저승 사상을 반영하는 공간이다.

무속신앙이 가르치는 저승은 죽음 이후 모든 영혼이 새로운 삶(환생)을 얻기 위해 당연하게 거쳐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비록 그 가는 길이 험난하고 멀기는 하지만, 산 자의 접근이 완전하게 차단된 곳은 아니다.

아울러 원래 한국 무속신앙이 소개하는 저승은 사후심판이나 인과응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일단 육체가 죽은 후에는 생전의 행위가 죽은 자의 영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생과 내생은 지극히 자연적인 존재 과정으로 인식되고, 저승은 이승과 수평적 위치에 놓인 세계 내의 한 다른 공간 정도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상은 주로 불교나 유교 사상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한반도 서남부(호남)와 제주도 지역 신화들에서 자주 확인된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한반도 서북부(평안도), 국가종교의 지배력이 강했던 서울과 경기 지역, 화양서원(華陽書院)의 존재로 성리학의 영향력이 유별나게 강했던 한반도 중부(충북), 그리고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의 존재로 인해 유별나게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한반도 동남부(영남) 지역과 달리, 호남과 제주 지역은 비교적 한국의 원 무속문화가 온전히 보전된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의 신화를 보면 한국 무속신앙의 원형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가 있다.

웹툰이나 영화 <신과 함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속신앙의 확고한 사후심판 사상은 훗날 불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생겨난 것이다.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49일 간 거치게 되는 일곱 지옥의 명칭과 심판 풍경은 무속신앙에 유입된 불교의 지옥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재해석된 저승은, 이승과 수평적 위치에 놓인 공간이라는 사상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수직적 위치에 놓인, 즉 이승과 질적 차이를 갖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해석된다.

신과 함께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에 등장하는 심판 장면.

이처럼 한국 무속신앙은 일부 지역에서는 원 무속신앙을 보존하는 형태로, 그 외 다른 지역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무속신앙의 형태로 전수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무속신앙이 가르치는 내세관은 최소 2,000년 이상 한반도 민중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반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는 불과 130여년에 불과하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양육받기 전에, 무속신앙의 잔재들에 영향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문화적 환경에 처해 있다. 이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도 회피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웹툰 <신과 함께>에 대한 온라인상의 열렬한 반응, 그리고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기독교인들이 눈여겨 보아야 할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의식의 차원에서는 분명히 성경에서 가르치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만, 의식 이전의 선이해(preapprehension) 차원에서는 한국적인 세계 이해를 향유하고 있다. 그래서 전도와 교육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신화가 가르치는 저승이라는 내세관, 혹은 불교적 지옥심판 개념 등에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전생에 공덕을 쌓았다/죄를 지었다"라는 표현이나, "인연이 깊다"와 같은 표현에 대해서도, 신앙의 입장에서 의식적인 판단을 내리기 전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 정도로 무속문화가 한국인의 생활환경에 깊숙이 배어있다는 뜻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은 조악한 연출, 그리고 중국의 MMORPG 게임이나 대만 TV 시리즈 <선검기협전>(仙剑奇侠传) 등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중국풍의 원색적 CG 때문에, 한국의 무속신앙이 갖는 깊은 문화적 매력과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무속신앙은 한국인들의 실존이해 근저에 자리잡아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계속해서 대중문화에 그 저변을 확장하려 할 것이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은 대규모 자본이 이런 시도에 힘을 실어주는 출발점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거듭될수록, 한국 기독교인들이 직면하는 문화적 도전의 압박감은 더 강해질 것이다.

신과 함께
▲무속신앙이 불교의 가르침을 흡수해서 묘사하는 지옥의 하나, 발설지옥(拔舌地獄).

한국 기독교인들은 선이해 차원에서 무의식적으로 무속신앙과 무속문화를 형성하는 이교적 세계 이해를 향유한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어쩌면 우리 마음 속 내세의 이미지는, 성경이 가르치는 천국과 지옥 심판의 계시, 그리고 무속신앙과 불교가 가르치는 저승의 묘사가 뒤섞인 채로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성경적 내세관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박욱주
▲박욱주 박사.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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