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 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을 21 세기의 시각으로 보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다.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록된 '당시의 상황'을 아는 것은 꼭 필요하다. 열왕기하 10 장에는 예후가 아합과 이세벨의 죄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바알 산당을 변소로 만들었던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증거가 라기스에서 발견되어 이를 소개한다.

아합과 이세벨은 약속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하였다. 그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통해 그들의 죄를 철저히 벌하셨다. 예후는 이스라엘 왕 요람, 유다 왕 아하시야, 아합의 아내 이세벨, 사마리아에 거하였던 아합의 70 명 아들들, 아하시야의 형제들, 바알을 섬겼던 북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처형하였다. 그리고 바알의 신당이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다 (왕하 10:26-27).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Photo : 기독일보)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Photo : 기독일보)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예후가 사마리아의 바알 산당을 변소로 만들었던 실제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을지라도 바알 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가 라기스에서 발견되었으니 그 증거를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성경의 라기스는 현재 텔 라기스 (Tel Lachish, 아랍어는 Tell ed-Duweir)로 불리는 이스라엘 국립 공원을 가리킨다. 이곳을 성경의 라기스로 처음 주장한 학자는 1927 년 W. F. 올브라이트 (Albright)이다. 이후 1932 년 영국 탐사대 (British Expedition)가 처음 발굴하였다.

31 에이커에 이르는 큰 도성 라기스는 블레셋 해안 평야에서 헤브론 산지로 올라가는 도로에 있으며, 주변으로 기름진 평야를 끼고 있다. 유적지에는 지하수를 개발한 우물이 몇 개 발견되었는데, 이런 여러 장점으로 인해 라기스는 신석기 시대부터 헬라시대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이 정착해 왔다.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Photo : 기독일보)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현재 라기스 발굴 책임자는 사아르 가노르 (Sa‟ar Ganor)이다. 라기스에서 발견된 성문은 1 차 성전 시대의 것으로는 이스라엘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성문은 약 10 년 전에 영국과 텔아비브 대학 공동으로 성문 북쪽 일부가 발굴되었지만 이번의 발굴을 통해 성문 전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라기스는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가장 견고한 성읍 중의 하나였다.

성경에서 성문은 성의 중요한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장소였다. 장로, 사사, 통치자, 왕, 관료들이 성문 의자에 앉아 성의 백성들을 다스렸고 그들의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상인들은 성문에서 매매했으며, 성문 곁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룻기서에 따르면, 보아스는 기업 무르는 자를 성문에서 기다렸듯이 성문은 단순한 출입 기능 이외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Photo : 기독일보)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발굴을 통해 완전히 드러난 라기스 성문은 길이 24.5 미터, 너비 24.5 미터, 높이 4 미터에 이른다. 그리고 한쪽으로 세 개의 방이 나란히 있고, 양쪽으로 모두 여섯 개의 방이 있는 성문 구조이다. 이같은 6 개의 방이 있는 성문 (six chambered gate)은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대표적인 성문이다. 성문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거의 모두 주전 8 세기 곧 히스기야 시대의 것들이다. 첫 번째 방에서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가 발견되었고, 그 발 아래에서는 항아리, 곡식을 뜨는데 사용했던 몇 개의 숟가락, 관료 또는 왕의 인장이 새겨진 토기 손잡이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토기 손잡이에 새겨진 많은 인장 가운데 헤브론 왕의 인장은 두 개 발견되었다 (lmlk hbrn). 괄호 안의 글자는 라 멜레흐 헤브론이라 읽는다. 곧 '헤브론 왕에게'를 의미한다. 이 문은 라기스 산당의 지성소로 향하는 문이었다. 그리고 네 개의 뿔이 있는 제단 두 개, 깨진 많은 질그릇 파편에서는 등잔, 그릇들도 발견되었다.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Photo : 기독일보) 바알산당이 변소가 된 증거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제단의 뿔이 잘린채 발견된 것이다. 발굴에 참여한 학자들은 제단 뿔이 잘린 이유에 대해서 '히스기야에 의해 단행된 종교개혁의 증거'로 이해한다. 히스기야에 의해 예루살렘의 성전을 제외한 지방의 모든 성소들은 다 파괴되었다: 열왕기하 18 장 4 절에 의하면, (히스기야가) 모든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는 이방 제단의 뿔을 자르는 것 외에 우상으로 섬겼던 성소를 훼손하기 위하여 바알 성소를 변소로 바꾸었다고 가노르 (Ganor)는 말한다. 그런데 성소 자리에서 중앙에 구멍이 있는 돌 의자가 발견되었다. 이런 모양의 돌은 다윗 성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스라엘 시대의 변기 모양이다. 예후가 사마리아의 바알 목상을 헐며 바알 신당을 헐어 변소로 만든 것처럼, 히스기야는 라기스의 바알 산당을 헐어 변소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라기스의 바알 변소는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는 바알 산당을 경멸히 여긴 상징적인 의미가 컸기 때문이라고 가노르는 말한다. 이 장소는 일반 백성들에게 폐쇄되었다가 후대에 파괴되었다. 라기스에서 발견된 이런 유물은 단순한 고고학적인 유산을 넘어 성경을 해석하는데 통찰력을 주는 숨기운 보물이다.

이스라엘의 문화 체육부 장관인 미리 레게브 (Miri Regev)는 "성경에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행적과 유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조상들은 한 때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출애굽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자손 대대로 살았다. 족장들, 선지자들, 왕, 사사, 선지자들을 기억하는데 학자들의 수고로 발견되는 이런 유물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과 과거 우리의 조상들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고리"라고 말한다.

2018 년 성경의 배경 학습을 통해서 라기스 성문과 뿔이 잘린 제단, 돌 변기가 발견된 바알 변소도 탐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성경을 단순히 글자로만 읽지 않고 살아있는 느낌으로 보고 읽게 될 것이다.

라기스와 관련된 성경의 기록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호수아 10:3, 5, 29-35 절, 가나안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여호수아는 라기스 왕 야비아를 포함하여 아모리 다섯 왕들을 처형하고 라기스 성을 이틀 만에 함락하였다.
여호수아 12:11 절,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당한 31 명의 왕들 중에는 라기스의 왕도 포함되었다. 이후 라기스는 유다 지파에 기업으로 주어졌다 (수 15:39).
역대하 11:9 절,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라기스를 요새로 건축하였다.
열왕기하 14:19 절, 아마샤는 반란군에 쫓겨 라기스까지 도주하다가 라기스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가서 1 장 13 절, 라기스 주민들에게 경고한 내용이다: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니라. 라기스는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앗수르에 의해 사마리아가 멸망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곧 재난이 임할 것이란 경고이다.
열왕기하 18:14 절, 앗수르에 의해 라기스가 포위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 지라.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대하 32:9, 사 36:2).
예레미야 34:7 절, 라기스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한 유다의 견고한 세 성읍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느헤미야 11:30 절, 유다 백성들이 라기스에 정착했다고 기록되었다.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