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딸 정유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온갖 불법과 탈법을 동원해서라도 딸을 대학에 진학시키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만들고자 했던 빗나간 모정(母情)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고 글로벌 기업의 총수가 구속되었다. 사실 자식에 대한 끔찍한 애정은 모든 부모들에게 어쩌면 본능과도 같은 것일 게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까워할 부모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보니 어떻게든 자식들이 고생하지 않고 조금 더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나쳐 자신이 가진 재물이나 지위를 이용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군대를 가지 않게 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시키거나, 분에 넘치는 재산을 넘겨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이 결코 자식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자식들을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임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최근에 시청한 일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아버지의 이야기 역시 빗나간 부정(父情)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형사인 아버지에게 골칫덩이 아들이 있었다. 어려서는 착했던 아들이 폭주족이 되었다. 하루는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던 폭주족 아들이 검거되었다는 것이다. 조서를 받던 경찰이 마침 형사인 아버지를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온 것이다. 아버지는 한 번만 눈감아달라고 부탁했고, 경찰은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들을 훈방 조치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때 아들을 법에 따라 조치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고 오열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아들의 사고가 사실은 자살이었음이 밝혀졌다. 전말은 이랬다. 아들이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운전했음에도 형사인 아버지 덕분에 훈방 조치되었다는 사실을 아들의 폭주족 친구들이 알고는, 자신들이 일으킨 문제를 아버지를 통해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그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아들은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고민하다가 일부러 사고를 내고 자살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통곡했다.

이 드라마에서 또 한 아버지는 회사의 경리과 직원이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그는 아이가 원하는 비싼 장난감도 주저하지 않고 척척 사주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공금에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횡령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직면하자 세무사인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세무사인 아버지는 아들이 횡령한 금액을 보충해주기 위해 자신의 고객 기업의 돈을 횡령하고 그 사실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끝내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아버지의 추억』에서 만화가 이현세 씨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는 경북 영일만의 흥해에서 태어났다. 내 고향은 넓은 모래사장을 따라 해당화 숲이 길게 이어져 해변이 아름다운 곳이다. 철부지 여섯 살이었지만, 나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나는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 뛰어놀았고, 동네 꼬마놈들은 모이기만 하면 얼음을 지친 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놓았다. 겨울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그날, 새로 사 온 성냥통이 보물단지처럼 보이던 그날, 나는 한 통을 숨겨서 동네 미나리 밭으로 달려갔다. 정신없이 얼음 위에서 뒹군 뒤 아이들은 미나리 밭 옆에 있는 낟가리에서 짚단을 빼서 쌓았고, 나는 자랑스럽게 성냥통을 꺼내 들었다. 불은 신나게도 타올랐고, 바람에 불티가 날려 낟가리에 옮아 붙었다. 그리고 급기야 초가로 번져, 집 한 채를 깡그리 태워버렸다. 우리는 놀라서 모두 달아났다. 나는 무를 묻어 두는 낟가리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춥고 배가 고파 도저히 못 견딜 정도가 되어서야 비실비실 대문으로 들어섰는데, 아버지가 한겨울 삭풍 속에서도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그 무서운 얼굴. 그리고 처음 맞아본 소름끼치는 회초리. 달아난 아이들이 모두 잡혀서 내가 불을 놓았다고 말을 맞췄고, 죄는 몽땅 내가 덮어쓴 상황이었다. 억울한 생각에 펑펑 울었지만, 아무리 변명해도 아버지 이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다음 날 심한 매질에 고열로 누워 있는 내게 아버지가 약을 발라 주시면서 하신 말씀은 딱 한 마디. "내가 진짜 화가 난 것은 불을 지른 잘못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고 달아난 비겁한 행동 때문이었던 기라." 담담하게 말을 마친 아버지는 그나마 남아 있던 우리 집과 낟가리를 보란 듯이 넘겨주시고 가족들을 이끌고 경주로 길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뒤, 경주 역사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누전사고로 돌아가셨다. 내 나이 겨우 아홉 살.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헤어졌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살아 있다. 어쩌면 내 삶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낸 날들이 너무나 짧았고, 그래서 찾아낼 기억이 너무도 변변찮았기 때문일까. 한 조각 편린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의 그 말씀이 더욱 나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추억』 중에서 (정운찬 외 지음 / 따뜻한손 / 248쪽 / 11,000원)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하다. 자식들은 부모를 통해 배우고, 부모와의 아스라한 추억들 하나하나가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곤 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저지른 불법이나 편법은 자식들의 가슴속에 오롯이 남아 있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으로, 그리고 다시 내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것은 앞의 사례들에서 보듯이 결코 자식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다면 비록 그 순간은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 것이다. 우리 모두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자.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