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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construction of Religion: Lessing, Kierkegaard, and Nietzsche

 

우리는 유럽의 기독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럽은 신학과 기독교 문화의 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여러 기독교 지역들, 특히 미국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비해 유럽의 많은 시민이 제도화된 교회 소속을 떠나고 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 중 북유럽은 거의 무종교 국가에 가깝고, 다른 유럽 국가 역시 조금씩 다종교 혹은 탈종교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아마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시작된 크리스텐덤(Christendom) 이후 종교개혁, 계몽운동, 산업혁명, 제1·2차 세계대전 등을 유럽이 차례로 겪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여러 관점이 있지만, 그러한 사상적 변혁들을 겪은 유럽 세계에서 바로 지금을 살아가며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럽 신학자가 있다. 바로 노르웨이 오슬로 루터신학교(Norwegian Lutheran School of Theology) 조직신학 교수인 얀-올라브 헨릭슨(Jan-Olav Henriksen)이다. 헨릭슨은 신학과 철학, 두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종교철학적 주제에 몰두하는 학자로써, 이 책에서는 레싱, 키에르케고어, 니체의 종교관을 분석하고, 세 명의 사상가들이 말하는 계몽운동 시대(1750-1890년) 종교의 재구성을 보여준다.

당시 교회 외적으로는 역사비평, 내적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이 있었다. 이러한 도전은 시대의 사상가들로 하여금 종교를 재구성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재구성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종교의 주체성(主體性, religious subjectivity)'이다. 그리고 헨릭슨은 그 시기에 속한 인물들 중, 레싱, 키에르케고어, 니체가 이것을 잘 다루어주었다고 판단한다.

1. 레싱

레싱은 인간은 본래(natural) 종교적이며, 그러한 자연 종교(natural religion)가 모든 정립(定立) 종교(혹은 실정 종교(實定, positive religion))를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기독교의 주장과 달리, 여느 계몽사상가들처럼 레싱도 인간의 이성(ratio)은 죄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따라서 성서가 아니라 이성이 우위에 있다고 논한다.

그러나 레싱은 인간이 절대적 진리를 소유할 수 없고(그러한 소유는 신의 속성이다), 따라서 배타성을 주장하는 모든 교조주의를 배제한다. 물론 인간은 동물의 차원을 넘어서야 하는 존재이므로, 레싱은 이성과 신앙의 불건전한 혼합을 경계하며, 기독교가 단순히 이신론(deism)이나 신신학(新神學, neology)이라는 합리적 자연 종교와 동일시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레싱은 동시에 종교는 도덕적이어야 하며, 도덕적 가르침과 상관없는 역사적 교리는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비록 기독교가 역사에 기반했을지라도 예수 시대의 종교인과 오늘날의 종교인은 구별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적으로 여겨졌던 이야기와 사건들이 당대 종교인에겐 의미가 있었지만, 현대인은 경험할 수도 없는 내용이기에 현대인을 움직이는 '힘'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단 레싱이 볼 때, 모든 역사 속 종교는 인간 발달에 따라 그 모습을 갖는 정립 종교(혹은 실정 종교)이므로, 모든 역사 속 그러한 정립 종교(혹은 실정 종교)는 인간을 성숙시키는 길로써 상대적인 가치 내지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인식은 종교간 비교로 나아간다. 구체적으로 레싱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다루는 반지의 우화를 통해(살라딘 왕이 나탄이라는 현자에게 세 종교 중 어느 종교가 우월한가를 묻자, 나탄은 한 왕이 세 왕자에게 똑같은 반지를 만들어 주며 모두가 진짜라고 왕이 직접 말해주었다는 우화를 들려주었다는 내용), 모두가 진정한 절대적 진리를 알 수 없는 동등한 한계를 지님을 드러내며, 동시에 종교적 주체로써의 도덕적 중요성을 드러낸다.

레싱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레싱은, 신은 특정 집단에만 속한 존재가 아니며, 모든 인간이 신에 은총에 의해 창조되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키에르케고어

덴마크 철학자 요한네스 슬록(Johannes Sløk)에 의하면, 키에르케고어의 모든 사상은 '참된 실존'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키에르케고어는 인류 일반보다 개인에게 관심을 두었다. 즉 그의 주체성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어떻게 자기 자신과 관계를 갖는가에 대한 것이지, 단순한 근대를 맞이한 일반 종교에 대한 이론적인 것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순간(øyeblikket)'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인간과 신의 틈새가 '성육신'으로 인해 메워진다고 보았다. 신이 시간과 역사 안에 성육신하는 순간 시간과 영원의 통합이 일어났고, 이를 맞이한 인간은 참된 실존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신의 현존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이러한 신의 현존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이것은 결코 이성만으로 형성할 수 없는 새로운 주체성이다. 주체는 이를 추구하기 위해 새로운 '열정(passion)'을 발전시키며, 키에르케고어는 이런 열정을 '신앙'이라고 칭한다.

이 신앙은 성육신과 같은 마주침의 순간(øyeblikket)에서 찾아온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도, 단순한 역사에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신앙을 일으키는 역설을 통해, 역사 속에서 무한자(즉 성육신한 그리스도)를 만날 때 발생한다.

이를 키에르케고어는 역사 대 형이상학,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 간의 신앙, 순간, 역설(irony) 등의 개념으로 극복한다. 이는 결코 다른 사람이나 인격에 의해 제공될 수 없고, 따라서 종교적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길로써 공유되는 합리성을 부정한다.

키에르케고어는 오히려 과학적 혹은 객관적 접근을 자기 반성적 주체성을 놓친 것으로 여긴다. 실상 과학적 접근 또는 과학적 증명은 기독교 신앙에 도움도, 반박도 하지 않는다. 키에르케고어는 주체가 절대자와 관계맺음의 출발을 '움직임(bevægelse)'이라 표현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키에르케고어에 의하면 인간의 실존 양식은 미적, 도덕적, 종교적, 세 단계를 거친다. 여기서 형이상학적 단계가 배제된다. 왜냐하면 키에르케고어가 볼 때 인간은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중 종교적 존재 양식의 특징은 신 앞에 선 존재자의 실존적 불안(Angst)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은 신앙에 의해 형성되는 자유의 가능성이다. 불안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겪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성숙과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역사와 시간 속에 계신 신, 즉 예수 그리스도를 전유(appropriation)함으로써 가능하다.

3. 니체

니체는 근대와 종교 그 자체를 모두 극복하려 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태도는, 그의 철학을 종합적 혹은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모든 사상과 철학은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겉보기(혹은 언어)와 심연(혹은 실재)을 구별한다. 다시 말해 그는 모든 참된 소통을 부정한다.

마르고트 플라이셔(Margot Fleischer)는 이러한 니체의 태도를 통해, 니체가 비판하려는 것은 단순한 종교를 넘어 서구의 사고 양태 전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니체는 모든 것이 우리의 열정이나 욕망에 의해 주어졌고, 이는 곧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니체는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거짓 실존(Scheinexistenz)'이라 부른다. 니체의 실재에 대한 접근 불가능성 혹은 언어의 표현 불가능성은 '허무주의'로 표현되곤 한다. 니체에 의하면 언어는 실재의 표현이 아닌, 그저 '세계지배(Weltbeherrschung)'일 뿐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전혀 그렇지 않은 세상을 고정적이고 안정적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환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 단어, 로고스에 대한 비판은 결국 그러한 것들을 신의 자기 표현으로 여기는 기독교(요 1:1)에 대한 비판과 같다. 니체에게 언어는 그저 환상을 만들어내는 '권력에의 의지'이며, 그에게 "모든 언어는 편견(Jedes Wort ist ein Vorurteil)"에 불과하다. 실재는 이성이나 언어 밖에 있다. 종교와 종교적 주체 모두 그저 역사의 과정에 의해 변할 뿐이다.

따라서 니체는 신에 대한 어떤 관점이라도 타자의 다른 관점에 의해 비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모든 관점이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관점들 간의 공통의 토대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어느 더 우월한 외적 표준으로 자신 및 타인의 경험을 평가할 수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니체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권력에의 의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이란 개념은 주체의 고유한 자기 관계에 대한 표현이고, 종교는 권력욕과 권력감(Machtgefühl)의 투사이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포이어바흐와 동일하다.

하지만 니체는 보다 구체적으로 강한 인간의 신과 약한 인간의 신을 구별한다. 강한 (집단의) 인간의 신은 그 인간(집단)이 가진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며, 약한 (집단의) 인간의 신은 그 인간(집단)이 원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약자의 신은 강자의 신과 이렇게 기능적으로 구별된다.

니체에 의하면 (종교적) 도덕의 기초도 권력에의 의지이다. 강자의 신의 도덕은 그저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넘쳐나는 권력의 표현이며, 약자의 신의 도덕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힘의 표현이다. 니체는 자기 이전 세상에 대한 모든 해석을 불신한다. 니체는 그런 의미에서 이성을 낙관적으로 본 계몽 사상가가 아니다. 그는 그저 이전에는 신에게 속했던 자기기만(self-deception)이 이성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형이상학, 도덕, 종교에 놓일 어떤 토대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세상은 스스로 영원부터 존재한다. 형이상학적 신 개념은 아무 필요가 없다. 니체는 신 개념에 근거하여 실재의 의미를 창출해내는 종교를 비판한다.

니체는 '광인(Der toll Mensch)'의 입을 통해 현대의 가장 위대한 사건은 신이 죽었다는 것이고, 신에 대한 믿음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인간 성숙을 위해 종교가 도움이 된다는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다.

니체의 '초인' 주체성은 종교를 버리도록 강요한다. 폴크 바그너(Falk Wagner)는 니체가 "인간은 이제 신에게 의존하든지, 아니면 스스로를 통해 자유로워지든지(the human is either dependent on God, or is free by and through himself)" 둘 중 하나를 요구한다고 해설했다.

평가

헨릭슨은 세 명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주체성에 대한 강조라고 말한다. 이런 전환 이면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이 역사 비평이다. 라이마루스는 레싱과 직접적으로 관계 있었고, 니체는 슈트라우스의 기독교적 이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니체의 1873년 작품, 다비드 슈트라우스: 신앙고백인이자 저술가, David Strauss: der Bekenner und der Schriftsteller 참고).

한스 큉이나 파울 틸리히도 키에르케고어가 당대의 역사 비평과 씨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가 스스로 서두에 밝힌 것처럼, 그들의 이런 투쟁과 재구성의 원인이 된 '역사 비평'을 이 세 사상가들과 보다 더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인 헨릭슨은 덴마크어, 독일어로 된 세 사상가들의 글을 직접 읽고 영어로 자기 번역을 제시할 만큼 일차 저작에 충실할 뿐 아니라, 관련 연구자들도 적절히 인용한다는 점에서 전문 서적으로써 큰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전문 연구서지만, 분명 신앙적으로도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부분이 있다. 역사 비판을 통해 잘못된 전통에 저항하고, 도덕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여러 종교개혁자들은 이미 그렇게 했다. 근대 사상가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종교와 신앙을 두고 고민했다.

한국교회가 유럽의 기독교의 모습을 단순히 세속화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들의 진정성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국내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우리 신앙의 열매들도 여전히 설익었다. 결코 쉽지 않고 분량도 만만치 않으나(비록 200페이지일 뿐이지만 글꼴도 작고 페이지마다 줄 수도 38줄이나 된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책과 더불어 주체적 신앙에 대해 한 번 고민해 보면 어떨까?

도서정보

제목: The Reconstruction of Religion: Lessing, Kierkegaard, and Nietzsche
저자: Jan-Olav Henriksen
출판사: Wipf &Stock(2015)
가격: 29.00달러

진규선 목사(서평가, 독일 체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