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신 호세아 13장 14절 말씀은 정말 참으로 어려운 구절로 보입니다. 본 구절에 대해서는 분명 다른 두 견해가 있습니다. 이 구절을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으로 보는 견해(칠십인역 성경, KJV, NASB, NIV, 개역한글, 개역개정, 현대어성경)가 있는 반면, 반대로 심판의 말씀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은 편입니다(CEV, GNB, RSV, NEB, JB, Ward, Walff, Jeremias, Jacob 등). 14절 후반의 "뉘우침이 내 눈앞에서 숨으리라"는 구절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 계획을 바꾸지 않고 반드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와 이스라엘의 회개가 하나님의 눈에 감추어져 있으므로 형벌이 확실히 임함을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칼빈)로 갈라집니다. 그런 가하면 NIV처럼 14절 전반부는 축복의 말씀으로 보는 반면 후반부는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로 다르게 번역하여 또 다른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구교(新舊敎)의 공동번역 성서는 아예 이 난해한 삽입절의 번역을 생략해버렸습니다.

호세아서의 난해함은 호세아서가 구약 가운데서도 스가랴서와 더불어 그 어느 책보다도 많은 메타포(은유)와 파라독스(역설)가 있다는 점과, 어리석은 우리 인간에게 다양한 은유와 역설과 수사적 표현들 속에서 독특한 시청각 교육을 시키시는 하나님의 계시 방식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13장 안에만 해도 심판 받아 마땅한 이스라엘을 아침 구름, 사라지는 이슬,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등으로 묘사하고(13: 3) 심판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자, 표범, 암곰, 암사자, 들짐승 등으로 비유하고(13: 7-8), 심판의 몽둥이(도구) 역할을 할 앗수르 군대를 동풍에 비유(13:15)하는 것을 봅니다. 14장에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이슬(14:5)과 푸른 잣나무(14:8)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이스라엘을 백합화, 백향목, 감람나무, 곡식, 포도나무, 포도주 등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14:5-7). 이와 같은 현란한 비유 가운데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유대의 수사학적 묘사에 익숙하지 않았던 번역자들이 난해한 번역에 이르게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훌륭한 성경 번역자들마저 유대적 문법과 사고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니 팔레스틴과 멀리 떨어진 동방의 작은 나라에 사는 우둔한 우리들이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호세아서 전체의 큰 그림에서 보면 역설과 은유적 표현 가운데, 고멜처럼 죄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애증을 볼 때 제 개인적으로는 결국 이 구절도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심판이 아닌 축복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는군요. 따라서 혹시 이 구절을 부정적 표현으로 보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수사적 반문으로 볼 수 있으므로(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를 책망할 때 가끔 너무 화가 나고 흥분하여 자녀를 저주하는 듯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으나 그 자체도 사실은 사랑의 애증의 표현인 것처럼) 결국 호세아서의 전반적인 그림에서는 심판 받아 마땅한, 또한 징계 받은 자들까지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즉 본 구절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으로 보든,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의 표현이라고 보든, 이느 쪽의 표현이든 간에 결국은 14장에 묘사된 데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된 은혜의 구절로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서의 마지막 14장 말씀이 마치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처럼 다가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 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
--- 중략--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호 14: 5-7, 9).

이 같이 귀한 구절을 꼼꼼하게 찾아 읽으시고 남들이 발견치 못하는 미묘한 문맥을 잡아내시는 00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평안하시고 건승하시기를 바랍니다.

조덕영 목사(조직신학, 창조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