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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보수가 나가야 할 길: 성공적 계승

기독일보

입력 Nov 08, 2017 09:04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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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예언의 발단, 발견, 전파, 전개, 계승

경문(phylactery)을 찬 모습.

경문(phylactery)을 찬 모습.

성공적 계승(successful succession)

1. 예언의 발단

하나님이 만약 "네 후손은 장차 중국(혹은 일본)에 종속되어 괴롭힘당할 것이다. 하지만 사백 년 후에 큰 재물을 끌고 나올 것이다"라고 하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나님을 선한 분으로 알고 있던 사람은 '기분 나쁘다'며 나가버릴 것이고,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돈이 좀 있는 사람은 이민을 가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별다른 감흥이 없을 것이다. '바로 너에게' 혹은 '네 아들에게' 벌어질 일도 아니고, 무려 400년 뒤에 벌어질 일인 것을. 게다가 지금은 불임·단산의 시절이 아니던가. 유대인들의 단군 할아버지,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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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언의 발견

현대인은 자신의 은밀한 과거를 알아맞혔을 때 비로소 그 점쟁이가 수여한 미래에 반응을 일으키지만, 정통한 예언은 자기 삶에 자각을 일으키는 자에게만 임한다. 그 예언의 권역 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400년에서 무려 30년이 더 흘러가도록 오로지 모세에게 그 예언이 임한 것은 그가 많이 배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씩이나. 드디어 그분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3. 예언의 전파

하지만 예언의 성취는 그 조상신과 대면했을 때 성취된 게 아니라, 위기 속에 성취되었다. 모세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다시 돌아갔을 때, 여전히 아무도 반기는 사람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40년 전과 똑같았다. 서로 비난하고, 물고, 뜯고, 싸우고..., 기적을 보고서야 모세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 기적은 쇼가 아니라 사실은 진노였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낼 때 애굽에는 10가지 재앙 프로그램을, 유대인에게는 3가지 표적을 쥐어서 보낸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유대인에게 보이기로 준비된 3개의 표적 중 마지막 표적이 애굽에게 내릴 10재앙 중 1번 재앙과 일치한다.

"나일 강 물을 떠다가 땅에 부으라 그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즉 유대인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10재앙은 유대인에게서부터 시작되었을 뻔 했다. (쏟은 강물이 땅에서 피가 된다는 것은 훗날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게 없다'는 경구가 되었다).

율법을 이마에 찬 모습.
율법을 이마에 찬 모습.

4. 예언의 전개

언제나 서로 비난하고, 물고 뜯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민족을 끌고 나왔을 때, 막상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장애였다. 홍해가 가로놓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신속히 도하시킬 수 없다. 뒤에서는 반인반신(半人半神)의 군대가 쫓아오고.

그러나 예언을 버리지 않고 보전하고 있는 이상, 위기는 필연적인 것이다. 예언은 위기 속에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예언이 갖는 지속성 내지는 복원력 탓이다.

이때 믿을 건 지팡이밖에 없다.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은 지혜의 지팡이. 손에서 놓으면 뱀이 되는 지팡이, 세속의 현자가 부리는 뱀(지식) 지팡이를 통째로 집어 삼키는 하나님의 지혜의 지팡이. 그 지팡이로 바다가 갈라졌다.

5. 예언의 계승

예언의 궁극적 성취가 위기 속에 도래하는 것이었다면, 그 예언에 대한 계승은 위기의 반복과 궁극적 복고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모세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지 40년 만에 마치 홍해와 같은 장애물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홍해 같이 크지는 않지만 분명 폭 20-30m에 최저 수심 3-4m(최고 20m) 짜리 요단강 앞에 직면한 것이다.

모세의 때처럼 파라오가 추격해오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모세가 곁에 없다는 사실 자체에 있었다. 모세가 없다는 건, 그의 지팡이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어찌해야 2백만명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까. 그 도강(渡江)의 방도는 여호수아를 위시한 신세대 집단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에서 발견됐다.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널 때는 법(法)이 없었지만 지금은 법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 속에서 그 자각이 발현됐다.

그러한 인식은 홍해가 구시대에서 밖으로 '나가는' 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요단강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물이라는 자각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법'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사장으로 하여금 법이 담긴 언약궤를 짊어지고서 요단강에 발을 담그게 하자, 강물의 흐름이 끊어졌다. 모세의 뱀 지팡이가 마술이 아니라 세속 지혜를 압도하는 믿음(의 지혜)이었듯, 법은 마술이 아니라 모든 장애를 가져오는 흐름을 정지시키는 권능이었던 것이다. 여호수아 부대는 실제로 오로지 법의 힘으로 가나안을 부술 수 있었다.

6. 나쁜 계승의 예시

예언과 언약을 계승함에 있어 아주 나쁜 예시가 신약성서에 소개돼 있다. 법궤는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것인데, 아무도 짊어지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즉 진정한 사제 집단이 없어진 것이다. 있긴 있지만 이들은 그 무거운 법을 손가락으로 들었다 놨다 하려하고 있다. 아니 손도 하나 까딱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무거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3-5)". 특히 이들이 어깨에 메야 할 법을 이마에 차는 경문으로 바꾸었다고 개탄하신다.

율법을 왜 이마에 차는가? 모세의 뿔처럼 보여 과시하려는 것이다. 행동으론 지키지도 않으면서. 이를테면 최고 갑부 교회의 사제가 아들에게 불법적으로 세습함으로써, 적법한 사제세습법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예시이다. 세습은 불법이 아니다.

Benjamin West, ‘Joshua Passing the Jordan’.
Benjamin West, ‘Joshua Passing the Jordan’.

7. 우리가 나아갈 길

거듭 말하거니와, 강물은 법을 어깨에 멜 때에만 건너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저 가나안 야만들은 법을 법으로 유린함으로써 모든 법 시스템을 찬탈해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법을 빼앗긴 것은 저 가나안 야만의 법이 탁월한 까닭이 아니라, 우리가 법을 지키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법이 무겁지만 우리 스스로 법을 짊어지는 것이다. 법에는 정지를 정지시키는(to stop the stop/ remove the stop) 권능이 있다. 법에는 장애가 가져오는 모든 정지의 흐름을 정지시키는 권능이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이를테면 소크라테스의 순교요 그리스도의 순교였던 셈이다.

법으로 법을(through law for the law) 이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를 권도하고 있다. 첫째 랍비(ῥαββί)라 칭함을 받지 말라. 둘째 땅에서 난 존재를 아버지(πατήρ)라 부르지 말라. 셋째 지도자(καθηγητής)라 칭함을 받지 말라. 여기서 두 번째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데, '아버지'라 함은 아브라함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로 치자면 이승만 박정희 또는 김대중 노무현 정도일 것이다.

▲이영진 교수
▲이영진 교수

[cf. 마 23:1-12; 수 3:7-17]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이다.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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