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하나님의 내어주심입니다. 믿음은 독자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어진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믿음은 아주 희미하게나마 뭔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자처하는 이유는 살아오면서 어디서 어떻게든 본향을 엿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것 또한 은혜로 보는 것입니다. ⓒPatrick Fore on Unsplash
(Photo : ) ▲은혜는 하나님의 내어주심입니다. 믿음은 독자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어진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믿음은 아주 희미하게나마 뭔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자처하는 이유는 살아오면서 어디서 어떻게든 본향을 엿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것 또한 은혜로 보는 것입니다. ⓒPatrick Fore on Unsplash

 

 

온갖 다양한 회중들을 상대로 다양한 강단에서 전했던 설교를 돌이켜 보면, 저는 지금부터 40년쯤 전에 제가 상대해야 했던 첫 번째 회중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기독교라는 종교가 통째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저 역시 가끔 더 어두운 시기를 겪을 때는 정말 그런 것이 아닐까 믿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심지어 우리 중에서 가장 교회에 충실하고 겉으로 그 가르침에 가장 순응적인 이들 내면에도, '그것이 정말 사실일 수 있을까?'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춘기 녀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마다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영광스럽게 그렇다고 선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닐 가능성도 이런저런 식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정당하게 다루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50년이 넘도록 제가 했던 일의 본질은 제 삶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어떤 면에선 다시는 그분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마구간에서 보았으니, 앞으로 그분이 인류를 거침없이 추적해 어디에 나타나시고 어떤 일까지 해내시며 터무니없이 자기를 낮추는 자기비하를 얼마나 감수하실지 결코 확신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엄청난 능력과 위엄이 전혀 상서롭지 못한 이 사건, 예수가 짐승의 똥이 뒹구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현장에 함께했다면, 너무나 천박하고 세속적이라 거룩함이 자리하지 못할 장소나 시간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피해 숨을 곳은 없다는 뜻이며, 인간의 마음을 둘로 쪼개고 재창조하는 그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곳 역시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무력해 보이는 곳에서 가장 강하시고,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곳에 가장 온전하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 자주 들어서 더 이상 듣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너무 커서 들리지 않고 너무 커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외워버렸기 때문에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에서 흘러나와 마음에 전해지는 말로 더 이상 받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나머지 이 말씀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인지 묻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말씀은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두 번째 계명입니다. 우리가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전 존재로,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수고가 따를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 말씀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선포하고 명령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혼자 힘만으로 애써서 나아가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믿고 있을 때조차도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신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최후의 비밀은 이것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결국에는 명령이라기보다 약속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지친 다리와 소망의 가냘픈 날개로 우리가 마침내 그분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약속입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이 은혜는 하나님의 내어주심입니다. 믿음은 독자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어진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믿음은 아주 희미하게나마 뭔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자처하는 이유는 살아오면서 어디서 어떻게든 본향을 엿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것 또한 은혜로 보는 것이지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것에 반응하여 남은 평생 그것을 갈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온갖 멋진 일들과 끔찍한 일들을 겪으며 그것에 부응해서 살아가고 그것을 향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공기처럼 들이쉬고 그것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들여다보고 더 잘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잃는 것은 바라보기를 멈추는 것입니다.<북코스모스>

- 『어둠 속의 비밀』 중에서
(프레드릭 비크너 지음 / 포이에마 / 520쪽 /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