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 목사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 '하나님을 향한 갈망'(DesiringGod.org)에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기억해야 할 6가지와 관련된 칼럼을 소개했다.

칼럼에서 파이퍼 목사는 "개신교의 개혁은 강단의 회복이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지금도 설교자들이 의도치 않게 강단에서 말씀을 존중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한 평신도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목사님, 전 교회 스태프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목사님의 설교 흐름을 파악하게 되었는데요, 먼저 목사님 말씀은 잘못된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보통 설교를 하실 때 대단히 중요한 주제를 다루십니다. 마지막에는 진리를 전달하십니다. 그러나 초점이 설교의 처음 부분과 연관성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인가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일반적인 현상인가요, 특이한 경우인가요?'

이에 대해 파이퍼 목사는 "먼저 이것은 문제이다. 그리고 비극적이지만, 일반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적어도 최소한 6가지가 중요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첫째, 사람들에게 본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에 적용해볼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는 설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로서의 말씀의 속성을 존중하는데 실패한 설교이다. 우리는 이러한 계시가 어떤 내용인지, 우리 삶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설교자가 본문의 내용을 충실히 보여주는데 실패한다면, 그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교인들의 삶과 연관된 영광스러운 진리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3장 4절에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설교는 성경읽기를 통해 얻은 열매를 전하는 것이다.

둘째, 성경에서 본 바에 대한 설명을 기뻐하지 않는 설교자들은 △ 성경 볼 시간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게으르다는 점 △ 이를 볼 수 없을 만큼 영적으로 둔감하다는 점 △ 이를 보면서도 어떤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약점들은 수정되고 고쳐질 수 있다. 우리는 목회자들이 게으름과 둔감함과 무감각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는 교회를 위해 건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목회자 자신에게도 영적으로 매우 건강하지 못한 신호이다.

셋째, 본문의 내용과 동떨어진 초점을 갖고, 본문에 분명한 뿌리를 두지 않은 설교는 본문 내용과 설교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본문에 분명하고 확실히 뿌리를 내린 설교가 여기서 핵심이다. 설교자의 단 하나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달하는데서 나온다. 이는 스스로에게 나올 수 없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교인들이 설교의 초점을 본문에서 찾기 어려울수록, 설교자의 말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줄어든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이 최후의 결정적인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넷째, 확실하게 본문에 뿌리를 두지 않은 내용으로 설교하는 목사는 향후에 교인들이 성경적, 교리적인 결함을 갖게 한다.

교인들이 성경보다 사람의 말에 기초하여 선악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성경적, 교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익숙해진다면, 이들은 문화에 불어닥치는 다양한 교리의 바람에 의해 날아가 버릴 것이다.

다섯째, 본문의 말씀의 세부적인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본문과 동떨어진 초점으로 설교하는 목사는 성경 본문에 나타난 영적, 도덕적 권면의 특수성에 부주의하고 민감하지 않은 교인들을 길러낸다.

여섯째, 본문의 내용과 동떨어진 초점을 가진 이러한 종류의 설교는, 교인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기쁨을 빼앗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같은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 있는, 비교할 수 없고 거룩한 기쁨이 되게 하지 못한다. 세상의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갖는 목사의 발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