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취 박사(오른쪽)와 리노 박사 ⓒ김진영 기자
그루취 박사(오른쪽)와 리노 박사 ⓒ김진영 기자

국내 신학자들이 20~21일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 곤지암 소망수양관에서 개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공동학술대회' 첫날, 주제강연은 존 W. 드 그루취(스텔렌보쉬대학교 신학부 객원교수, 케이프타운대학교 그리스도교학과 명예교수)·말테 리노(루터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박사가 각각 맡았다.

"성령 제쳐놓고 성경의 문자 강조한 것은 실수"

먼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말씀과 성령의 변혁운동으로서의 종교개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그루취 박사는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은 특정한 시간에 고정된 교파적 신앙고백 사건도,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패권에 대항해 프로테스탄트 제도를 수립한 사건도 아니었다"며 "그 개혁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말씀과 성령의 변혁 운동이었고, 유럽의 역사 뿐만 아니라 이후 전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문제는 그 역사보다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이 물려준 유산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이제 프로테스탄트 개혁은 그 명을 다해 뒤에 남겨져야 하는가, 아니면 에큐메니칼 교회가 전진할 수 있도록 나침반을 제공할 수 있는가, 라는 중요한 질문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종교개혁의 중심에 '말씀' 뿐만 아니라 '성령' 또한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루취 박사는 "말씀은 결코 하나님의 성령과 분리될 수 없고, 성령은 말씀과 분리될 수 없다. 개혁가들에게 말씀과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안에 연합되어 있었다. 성령은 자유와 사랑과 능력 가운데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변혁적인 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신교회가 성령을 통한 변혁운동이었던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중심에 있었던 자유와 갱신과 예언적 증언을 고무하는 대신, 로마 가톨릭 교회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교파적 신앙고백의 권위와 제도상의 연속성을 확언하면서, 생명을 주는 성령은 제쳐놓고 성경의 문자를 강조한 것은 실수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16세기 개혁가들은 성경을 읽을 때나,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할 때나,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나 성령이 그리스도에 대한 주된 증인이기에, 성경은 성령의 변혁하는 사역 없이는 죽은 문자로 남아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며 "성경은 독자를 과거로 연결시켜 준 이야기를 제공하지만 성령만이 확신시키고, 개종시키고, 변화시키면서 그 과거를 현재로 만들었다"고 역설했다.

그루취 박사는 "그렇다면 특정한 시간과 역사적 정황 속에서 성경의 증언을 통해 성령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은 이를 위해 교회가 에큐메니칼적 합의를 보고, 그 합의를 신앙 고백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다"며 "성령의 증언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만들어 내고 통제하는 말(words)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말씀(Word)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이기에, 성령은 신조주의, 근본주의 또는 교황무오설이라는 상자에 갇힐 수 없고 그것들에 국한될 수도 없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변혁적 힘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에큐메니칼 전체와 힘을 합쳐야 한다. 루터와 동행하되 그를 넘어서고, 칼뱅과 동행하되 그를 넘어서고, 츠빙글리와 동행하되 그를 넘어서고, 제세례파와 웨슬리와 동행하되 그들을 넘어서면서 말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넘겨준 신앙고백들을 되새겨 보되, 오로지 오늘날 그리스도를 충실히 고백하고자 성령을 통해 말씀을 들으려는 목적에서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신학의 기초조차 일부 결여된 목사들"

이어 '한국 개신교회의 개혁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리노 박사는 "한국 개신교의 현재 위기는 아마도 그리스도교와 사회 간에 차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차이의 결핍 때문에 야기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개신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변혁하고 새롭게 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는 문화에 의해 너무 많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세상에 동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리노 박사는 한국 개신교의 개혁을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신학 교육의 개혁을 제안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손쉽게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좋은 지도자가 배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 개신교는 미래 목사들을 위해 교육을 개선하고, 동시에 안수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제한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함께 이행돼야 한다"면서 "안수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제한하는 일은 신학생 수를 감축하는 작업을 포함하기에 이 과제는 상호보완적"이라고 했다.

리노 박사는 "신학생 수를 줄이는 작업은 신학교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더 적어진 수의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는다면, 그들은 더 오랫동안 공부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줄어든 학생 수로 인한 손실을 보완해 줄 것이다. 여기서 해결해야 할 유일하게 심각한 문제는 더 연장된 학업 기간을 위한 자금 조달,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단 간의 협력과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신학교 간의 협력"이라고 했다.

그는 "3년 간의 목회학 석사 과정은 고전어들, 성경 해석, 교회사와 선교역사, 주요한 신학적 개념들, 다른 종교들에 대한 기본적 이해, 실천신학과 목회를 위해 필요한 다른 인문학과 분야들에 대해 꼭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 충분하지 않다"며 "한국 개신교에서 우리는 신학의 기초조차 일부 결여되어 있는 많은 목사를 보게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리노 박사는 "한국 개신교 목사 후보생들이 학사와 석사 과정 모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교육 제도를 제안한다"면서 "교회들은 목사 안수를 위한 전제 조건들을 바꿀 수 있다. 만약 교회들이 대학교 수준에서 5년이나 6년 과정의 신학 교육을 요구하기로 결정한다면 목사 후보생들은 학사와 석사 과정 모두에서 신학을 공부해야만 한다. 이것은 교수들과 신학교들이 학사와 석사 학위를 위한 통합 커리큘럼을 개발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 더 이상 참된 교회로 여기지 않았던 16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와 유사한 점을 많이 보이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 세속적 사고방식과 너무 밀착되어 있는 관계를 극복해야만 한다"며 "성장 제일 이데올리기는 그리스도교를 천박하게 만들었고, 세례를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싸구려 은혜로 만들었다. 이제 한국 개신교는 교회의 참된 의미를 재발견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개신교는 이기주의와 탐욕에 대한 대안이 돼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