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의 기독교인 수는 약 105만 명이다. 이는 일본의 총인구 약 1억2천만 명 가운데 대략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약 150년 동안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전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지금도 결정적으로 소수파다."

일본 도시샤대학교 신학부의 하라 마코토 교수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주최로 12일 오후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열린 '동북아 3국의 기독교 선교' 주제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의 일부다. 우리보다 앞서 기독교가 전래됐음에도 왜 일본에선 이토록 기독교 교세가 미약한 걸까? 마코토 교수는 이날 '동아시아에 있어 일본 기독교의 역사적 위치와 의의'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이를 고찰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 메이지 정부는 민족종교인 신도(神道)에 대해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며 그것을 국가의 제사로 규정했다. 이후 신도는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최상위에 위치했으며, 천황은 정치와 군사의 총괄자였을 뿐만 아니라 신도를 기반으로 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마코토 교수는 "그런 가운데 종교에 관해서는 1889년에 공포된 대일본제국 헌법 제28조에서 '일본 신민은 안녕질서를 방해하지 않고,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외면하지 않는 한 종교와 신앙이 자유를 갖는다'는 것으로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다"며 "그러나 이 판단과 해석의 권한은 국가에 있었다. 즉, 근대국가로서의 종교의 자유와 개인의 존엄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일본의 근대화는 정확하게 말하면 천황제에 근가한 종교국가, 신정정치의 형성이었다.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각 교파의 교회가 학교 등과 함께 각지에 설립됐지만, 이런 이유로 기독교는 일반 대중과 가까이 있지 못했다"고 했다.

주목할 것은 마코토 교수가 일본의 종교인 현황을 분석하며 '기독교인 1%'의 의미를 해석했다는 점이다. 마코토 교수가 인용한 일본 문부 과학성 문화청 종무과의 종교연감에 따르면 신도계가 약 9,126만 명, 불교계가 약 8,690만 명, 기독교계가 약 294만 명, 기타가 약 906만 명으로 총 종교인 수는 1억 9,017만 명이다. 그는 "이 같은 종교인의 숫자는 일본 전체 인구의 약 2배 정도"라며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이 일본인의 종교의식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마코토 교수는 "메이지 시대 이전 제정일치의 종교정책에 기반한 신도와 불교가 있었고, 민중은 신사 신도인 '타마코'이자 동시에 불교사원의 '단가'이기도 했다"며 "즉 집에 신단과 불단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메이지 이후 신도 국교화 정책으로 불교는 집의 무덤을 지키는 '집'의 종교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사일런스
▲영화 '사일런스'에서 일본인 신도 모키치(오른쪽)를 격려하는 로드리게스 신부.

그는 "따라서 이 약 2배라는 숫자는 신사와 불교, 또는 그 외에 다른 종교를 동시에 믿는 신도의 그것으로, 즉 '신앙고백' 없이 계산돼 보고된 결과"라며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종교 자체에 회의적·비판적인 사람들이 있고, 또 단순히 관혼상제의 종교의례로써만 종교를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개인의 종교심이 독실한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마코토 교수는 "이러한 일본인의 일반적인 종교의식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기독교가 1%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의 기독교는 전도를 하지 않았던 결과로써 1%가 아니라 기독교의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반한 개인으로서의 신앙이 일본의 일반적인 종교문화와는 융화력, 친화성을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