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은 고전 명작 <벤허(BEN-HUR)>가 창작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탄생해 로마 제국이 번영을 누리던 당시의 파란만장한 벤허의 삶과 그리스도의 생애를 스펙터클하게 풀어낸다.

뮤지컬에 앞서 적잖은 걱정이 있었다. 이따금씩 기독교에서 소재를 가져와 만든 여러 콘텐츠들이 있었지만, 소재만 가져왔을 뿐 이야기를 왜곡시키거나 있어야 할 것을 삭제해 실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에겐 영화 <노아>가 특히 그러했다. 1억3천만 달러(한화 약 1,400억 원)라는 제작비를 들여 눈길을 끌었지만, 당대 의인 노아는 영화 안에서 인류 멸망을 꿈꾸는 인물로 바뀌었고, 영화는 전반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 반신론적인 입장을 가득 담아 자극적인 판타지 소설을 만들어 놨다. 물론 <벤허>라면 그런 실망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지만, 원작의 내용이 방대한 만큼 중요한 것들이 빠질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다른 한 가지 걱정은 완성도 문제였다. 한국 내 자체적으로 만든 문화 콘텐츠 중에서 기독교를 소재로 내용뿐 아니라 예술적인 면까지 높은 완성도를 낸 작품들은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뮤지컬 <벤허>는 이미 여러 호평들이 있어왔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서 장소와 시간의 제한을 두고 바다에서의 노예 생활과 구출 장면, 로마의 거대한 원형경기장과 전차 경주의 장면을 비롯한 방대한 스케일을 어떻게 담아낼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신이시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소서... 고통 받는 백성에게 보이소서. 당신의 희망은 어디에"

걱정은 기우였다. 먼저 뮤지컬 <벤허>는 로마의 식민지 하에 고통 받는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음성으로 시작한다. 영화 이집트 왕자 모세의 오프닝 'Deliver Us'와 영화 레미제라블의 오프닝 'Look Down'의 한 장면을 보듯 백성들의 고통, 간절함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뮤지컬 <벤허>의 원작은 1880년 발표한 루 윌리스(Lew. Wallace)의 동명 소설이다. 본래 저자가 <벤허>를 쓰기 전에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무지했던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야기가 과장돼 '무신론'이나 '반신론'이었단 이야기도 떠돌았었지만, 어찌됐든 저자는 부제를 <그리스도의 생애>로 정했다.

그래서였을까, 사실 원작은 '검투 대결', '전차 경주'보다는 이야기의 첫 부분에 위치한 동방박사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쉽게도 이 장면은 영화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모두 빠지게 됐지만, 뮤지컬 <벤허>는 인간의 방식과 생각, 예수 그리스도가 걸었던 길을 성공적으로 대비시키며, 카타콤 안에서의 신앙 또한 부각시켰다. 그뿐 아니라 종교를 막론하고 보이지 않는 신념과 가치, 인간의 연약함과 사랑, 긍휼, 용서, 가족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져낸다.

창작 뮤지컬 <벤허>. 카타콤에서의 박은태(유다벤허 역)와 아이비(에스더 역). ⓒ㈜뉴컨텐츠컴퍼니, 쇼온컴퍼니 제공
창작 뮤지컬 <벤허>. 카타콤에서의 박은태(유다벤허 역)와 아이비(에스더 역). ⓒ㈜뉴컨텐츠컴퍼니, 쇼온컴퍼니 제공

특히 뮤지컬 <벤허>는 '예수 그리스도'와 '신앙'이란 초점을 놓치지 않는다. 내면보다는 외면을 중시하고,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살신(殺神) 모티브가 팽배한 이 시대에 이 같은 도전은 과감하다 못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더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을 누가 맡았는지 밝히지도 않았고 극 중에서는 얼굴도, 심지어 목소리도 나오진 않지만 보이는 것을 뛰어넘는 중후한 무게와 숭고미, 그와 얽힌 벤허의 마음 속 변화를 자연스럽고도 성공적으로 담아낸다. 무엇보다 뮤지컬 막바지에 나타나는 벤허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과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은 크리스천들의 마음을 크게 울리리라.

<벤허> 하면 떠오르는 두 경쟁자, 벤허(유준상·박은태·카이)와 메셀라(박민성·민우혁·최우혁)의 관계 또한 눈길을 끈다. 우리가 아는 단편적인 사실은 메셀라는 벤허 가문에 입양돼 형제와 같이 자란 친구였지만, 이후 원수가 된단 것이다. 원작에서도 벤허와 메셀라의 어린 시절은 비밀리에 부쳐져 독자의 상상에 의지하는 부분이 크다. 대신 원작은 유대인인 벤허와 로마인이 된 메셀라, 유대인과 로마인 민족의 문화와 특성을 상세하게 언급해낸다. 뮤지컬 <벤허>의 배우들은 각각의 깊은 인물의 해석을 반석으로 두고 자신만의 색을 더한 '유대인 벤허'와 '로마인 메셀라'와 일치된 연기를 선보인다.

창작 뮤지컬 <벤허>. 전차경주 장면. ⓒ㈜뉴컨텐츠컴퍼니, 쇼온컴퍼니 제공
창작 뮤지컬 <벤허>. 전차경주 장면. ⓒ㈜뉴컨텐츠컴퍼니, 쇼온컴퍼니 제공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여러 리메이크 작품에서 삭제된 원작의 장면 중 '다프네 숲'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행복한 곳을 지배하는 법은 사랑'이라는 이 장소는 벤허가 화려함과 세상의 향락, 관능주의 등으로부터 시선을 빼앗겨 유혹을 당하는 장소다. 원작 속의 벤허는 이곳의 매력이 '평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무질서한 사랑'이자 '허상'임 깨닫고 빠져 나온다. 뮤지컬 <벤허>에서도 이 같은 장소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성경과 달리 새롭게 창작된 빌라도(이정수)가 남자를 희롱하고 남자로 이루어진 수많은 노예들을 데려와 춤을 선보이며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전체적인 연출에 있어서는 감탄사를 연발시켰다. 앞서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로 크게 호평을 받았던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의 협업은 이번에도 관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홀로그램과 영상, 특수효과, 시시각각 변화는 화려한 장면과 다채로운 선율을 선보였다. 하이라이트 2분간의 장면을 위해서만 6억원을 투자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한편 <벤허>는 지난 해에도 리메이크 영화가 나왔다. '용서'와 '사랑', '형제애'에 대해서는 이전 영화보다 더 다루어졌지만, 인간 본성의 악함과 문화적 배경, 유대인과 로마인의 다른 가치관, 그리고 명예와 야망에 눈먼 인물은 사라지거나 달라지고, 대신 자유를 위해 폭력을 일삼는 '광신도'와 '용서'의 대비를 두었다. 원작과 영화, 그리고 뮤지컬, 각기 다른 색색의 작품들을 비교해보는 것 또한 한 가지 재미일 것이다. 뮤지컬 <벤허> 공연은 오는 10월 29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