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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Q&A] 천년왕국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Oct 09, 2017 09:16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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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에스라하우스
(Photo : ) 출처:에스라하우스


Question. 

 

같은 종파이지만.. 재림 시에 주님께서 오실 때에 대해서 각각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맞다고 보아야 하나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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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wer. 
* 천년왕국 문제는 수많은 성경 학자들에 의해서 수많은 토론을 해온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복음적이라고 하는 학자들조차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견해를 모두 설명하려면 책을 한 권은 써야 할만큼 그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천년왕국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견해만을 요약하고, 이에 대한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경 본문: 사단의 결박과 천년 왕국(20:1-6)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 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 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1-6)


  요한은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요한이 보는 가운데 한 용을 사로 잡고 그 용을 쇠사슬로 결박한 후에 무저갱에 던지고 잠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그 무저갱 위에 인봉을 하고 그 용이 1,000년 동안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감금시켰습니다. 요한은 1000년 지난 후에 그 용이 잠깐 동안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그 후에 보좌들과 그 보좌 위에 사람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보좌 위에 앉은 사람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요한은 신실한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 동안 왕노릇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때에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1000년이 지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이 때에 살아난 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불렀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았고, 짐승의 표를 이마와 손에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심판에서 제외되었으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 1000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은 이 본문을 놓고 씨름해 왔습니다. (계 20:1-6)에는 "천년"이란 말이 4번(1,2,4,7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바로 이 말 때문에 유명한 "천년왕국"이란 말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천년 왕국"의 의미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로 인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2. 천년왕국의 시기 문제   첫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천년 왕국의 시기"에 대한 문제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천년왕국"이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앞으로 점점 더 발전될 것이며, 그 후에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고,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견해는 천년 왕국이 지난 후에 주님의 재림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것을 1)"후천년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천년왕국 후 재림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1-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서구에서 많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발달한 과학과 문화를 보고 이 땅에 천년왕국과 같은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1-2차 대전을 통해서 인간의 죄성을 목격한 후에,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들은 주님께서 먼저 재림하시고, 그 후에 "천년왕국"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천년왕국 전에 주님의 재림이 있다고 해서 학자들은 이 견해를 2)"전천년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천년왕국 전 재림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천년설은 다시 두 가지("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나뉘어집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3. 1000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둘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1000년이란 기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에 대한 문제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1000년을 문자 그대로 1000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후천년설"이나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000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1000년을 문자가 아닌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Ladd는 계시록에 언급된 1000년이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때 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천년 왕국은 역사의 마지막에 1000년 동안 있는 기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계시록에 언급된 천년왕국은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때 까이의 모든 기간이 라고 말합니다. 이 견해는 1000년 동안의 특별한 기간을 부정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견해를 가리켜서 3)"무천년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무천년설"이 천년왕국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때 까지의 전 기간을 "천년왕국" 으로 보고 있을 뿐입니다. 

4. 천년왕국에 대한 대표적인 세 가지 견해들   그러면 이제부터 최근에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천년왕국"에 대한 세 가지 견해를 좀더 자세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   최근에 아주 유행하는 견해 중의 하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입니다. 이 이름은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몇 가지 시대(세대)로 구분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마지막 때에 7년 대환난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7년 대환난이 있기 전에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것이며, 그때에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휴거된 성도들은 7년 대환난 기간 동안에 공중에서 주님과 함께 있다가, 7년 대환난이 끝나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성도들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왕노릇을 하는 천년왕국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이 땅위에 내려와서 천년 동안 왕노릇을 하는 시대는 이스라엘 중심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때에 이스라엘이 세계 최대강국이 되고, 예루살렘이 세계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때가 되면 모슬렘에 속해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찾고, 그 성전에서 다시 제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의 보좌를 계승한 메시아께서 유대인 중심의 천년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를 구약의 예언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다윗왕조의 회복을 예고하는 예언과, 미래에 회복될 성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에스겔서에서 찾고 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러한 예언들이 모두 문자 대로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차 대환난 후에 다윗왕조와, 성전이 회복되고, 그 성전에서 다시 짐승의 제사가 드려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정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동물 제사가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모형이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짐승제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시대에는 1년에 한 번씩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더 이상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셨고, 그 곳에서 우리를 위한 제사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 성전이 회복되고, 그 곳에서 다시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는 세대주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세대주의적 천천년설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 복음을 다시 율법의 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2) 역사적 전 천년설   그 다음 현대 기독교인에게 익숙해 있는 견해는 "역사적 전천년설"입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계 20장)에 기록된 사건들이 마지막 때에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실제로 사단이 결박 당하고 1000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현재는 사단이 완전히 결박된 것이 아니라,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기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 후에 사단이 완전히 결박되어 1000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질 것이며, 그 때에 실제로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때에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 동안 왕노릇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천년이 지난 후에 다시 살아나서 마지막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둘째 사망에서 제외되고, 1000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계 20장)의 내용이 주님의 재림 후에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견해는 "역사적 전천년주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로 (계 20장)은 주님께서 사단을 결박하는 것은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 17-19장)에서 이미 짐승과 거짓선지자, 그리고 그를 따르는 모든자들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대로라면 이미 모든 심판이 끝났기 때문에, 사단이 미혹할 열방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상태에서 다시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려고 사단을 결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둘째로 성경에는 천년왕국이 역사적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언급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은 오직 (계 20장)에서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일어날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항상 여러 번 반복해서 예고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갈 것과, 그 후에 다시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또한 그 후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에 대해서도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고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실제로 재림 후에 1000년 동안 계속될 특별한 왕국에 대해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을 매우 어색해 보입니다. 1-2년도 아니고 1000년이나 계속될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상에서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다른 선지자나 사도들도 이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일에 대해서 다른 모든 성경이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은 천년왕국을 문자대로 해석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니엘이나 이사야, 그리고 요한과 같은 성인들도 주님 앞에 서게 되면 그 영광에 압도되어 죽은 사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순교자들 뿐 아니라, 믿지않는 열국백성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한 사람들이 천년 동안이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다는 점은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주님과 함께 1000년을 지낸 후에도 여전히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점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1000년이나 통치하시는 주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을 믿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3) 무 천년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무 천년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천년을 상징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계 20장)에 언급된 1000년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때 까지의 전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단이 결박 당한 사건을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과 약간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마 12:28)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무 천년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이미 사단이 결박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이미 사단이 결박되었으며, 귀신이 쫓겨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증거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부터 사단의 결박이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때까지의 전 기간이 바로 사단을 결박하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천년왕국 기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견해를 받아들일 때에도 역시 문제점은 있습니다. 첫째로 이 견해는 사단의 결박에 대한 해석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계 20장)을 보면 사단은 쇠사슬에 매여 무저갱에 던져졌고, 그 입구를 잠그고 인봉까지 쳤습니다. 이것은 사단이 완전히 갇힌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현재를 보면 사단이 완전히 갇혀 있기 보다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계 12-13장)에 언급된 것처럼 용은 여인이 낳은 아이인 그리스도를 삼키려고 했으며, 그 공격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여인으로 상징된 교회를 박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단의 사주를 받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 역시 현재에도 계속해서 활동하면서 교회와 세상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이 견해는 죽은자들의 부활에 대한 해석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들은 순교한 자들이 다시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 하는 것을, "죽은 영혼들이 하늘에 올라가서 지금 주님과 함께 통치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순교자들이 육체적으로는 죽임을 당했지만, 그 영혼은 지금도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 20장)에 언급된 "첫째 부활"을 "죽은 성도들의 영적인 부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본문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5. 어느 것이 맞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견해를 따라야 합니까? 전천년설입니까? 후천년설입니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입니까? 역사적 전천년설입니까? 아니면 무천년설입니까?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짐승 제사가 다시 드려진다는 주장이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가 완성되었다는 히브리서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 속죄의 제사가, 또 다시 짐승의 피를 통해서 드려져야 한다는 모순을 안게 됩니다. 이러한 주장은 복음을 율법으로 되돌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나름대로 수용할 점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천년설의 주장은 (계 20장)의 본문을 자연스럽게 해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천년설을 따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계 20장)의 사건들이 주님의 재림 후에 실제로 일어날 것으로 믿고, 그 날을 사모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천년설 역시 장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미 사단을 결박하셨고,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살아서 주님과 함께 통치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천년설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보다는 현실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점을 강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6. 다양한 견해가 나오는 이유들   그러면 왜 이렇게 똑같은 본문을 놓고 다양한 견해들이 나올 수 있습니까? 저는 이러한 다양한 견해가 나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째는 성경이 이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제시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의 시기나, 그 기간에 대해서 어느 한쪽의 주장을 확정할만큼 충분히 계시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천년왕국의 시기나 기간에 대한 문제가 구원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주님께서 재림의 시기와 때에 대해서 우리에게 정확히 계시해주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말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잘못하면 본문이 말하려는 요점을 놓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문에서 말하려는 것은 천년왕국의 시기나 기간이 아닙니다.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단이 결박될 것이며, 그 때에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년왕국의 시기나 기간에 대해서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단의 결박이 있을 것이며,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둘째는 각자가 자신이 생활해 온 입장에서 본문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회자나 신학자에게 의해 강한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일단 한 견해에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목회자나 신학자의 견해는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극한 박해나 고난 속에서 자란 성도들은 전천년설에 익숙해 있습니다. 악이 득세하는 현실을 보면서 현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성도들이 세상을 통치하는 천년왕국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성도들은 "전천년설" 입장에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한국성도들은 일제 치하와 민족동란을 거치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이 기독교인을 결박하고 고문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왔습니다. 이러한 그들이 현재를 그리스도와 함께 성도들이 통치하는 천년왕국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 장차 주님과 함께 세상을 통치할 미래의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자라왔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교회 서옫들은 역사적 전천년설이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 문화와 사상이 발달한 나라에서 자라난 성도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러한 나라에서 자라난 성도들은 후천년설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들은 끝없이 발전해 가는 과학이나 교육을 보면서 이 땅에도 얼마든지 천년왕국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그들은 역사가 점점 발전해 가다가 이 세상에 천년왕국과 같은 유토피아를 이루고, 그 후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보다 인간의 일반 은총에 의한 유토피아 건설이 관심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크게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가 발달한 기독교 국가에서는 무천년설에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문화가 이루어진 세상을 보면서, 지금 사단이 결박되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통치하는 천년왕국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러한 견해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의 학자들로부터 제기되어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신학자들이 이러한 견해를 한국 교회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고난이 많은 나라에서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그리고 인본주의 문화가 꽃피는 곳에서는 후천년설이, 그리고 기독교문화가 발달한 세계에서 무천년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7. 결론: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러한 다양한 견해의 차이가 본문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해석할 때에 견해 차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본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견해를 따라 해석하든지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공통적인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이 우리들에게 강조해주는 이야기의 공통적인 초점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본문은 우리들에게 사단이 굉장한 세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 당시에 로마 황제의 위력은 대단해 보였을 것입니다. 아마 로마 황제 앞에 박해를 받는 성도들은 바람 앞에 낙엽과 같은 아무 힘없는 존재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세상에서 짐승이나 새끼양같은 정치세력과 거짓선지자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성도들에게 용과 짐승과 새끼양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잠시 세력을 얻었을 뿐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악한 세력들은 천사에 의해 영원히 결박되고 멸망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천년왕국의 기간이나 시기 문제를 놓고 토론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은 로마 황제가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칼을 휘두르던 때에 살던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본문은 당시에 대단해 보이는 황제와 거짓종교 주동자들이 멸망하고 교회가 승리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세상권력과 거짓종교들이 아무리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영적 싸움을 할 힘을 얻어야 합니다. 


  둘째로 본문은 주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사람들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일차적으로 로마의 박해 앞에서 순교의 위협을 당하고 있던 성도들을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본문은 교회를 박해하는 세력과 거짓 종교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성도들에게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정치세력과 거짓종교의 위협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쓰여졌습다. 본문은 순교의 위협을 받던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정치세력과 거짓종교의 위협 앞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굶주림과 가난속에 살아야 했던 성도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가지고 천년왕국의 기간이나 시기 문제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본문이 성도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의 배후에 사단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다. 우리는 본무을 통해서 세상의 정치 세력과 거짓 종교가 대단해 보여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그들이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순교자들과, 끝까지 충성한 성도들이 얻을 영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인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본문은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차 얻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biblenar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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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배우 최수종, 장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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