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할머니의 뒷 모습. ⓒ예수병원 제공
윤 할머니의 뒷 모습. ⓒ예수병원 제공

한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이야기이다.

윤OO씨는 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모진 맘을 먹었다. 1981년 11월, 남편과 헤어져 홀로 살던 39세 윤씨는 열 살짜리 딸과 같이 죽어야지 생각하고 연탄불을 피웠다. 그리고 다음날 이웃에게 모녀가 발견되어 전주 예수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병원에서는 급하게 응급처치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어린 딸은 소행하지 못하고 윤씨 만 겨우 목숨을 건졌다. 당시는 연탄으로 취사와 난방을 했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 지역에 유일하게 연탄가스 중독을 치료하는 대형 산소치료 탱크가 있는 예수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윤씨는 2달 동안 간병해줄 사람도 없어 힘겹게 투병을 이어 나갔고 치료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전주교도소로 가서 죄 값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1년 반의 형을 살았다.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먼저 셋방을 사는 집의 전세금 30만원을 빼서 예수병원에 치료비를 내려 했지만 집 주인이 돈을 돌려주지를 않았다. 그 후로 윤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병원비를 낼 엄두를 낼 수가 없었고 죽지도 못하고 사는 삶이 이어졌다.

"그 동안 사는 게 너무너무 팍팍 했어요"

그녀는 연탄중독의 후유증으로 인해 성치 않은 몸으로 누구 한 명 도와주는 사람 없이 힘들게 농사로 품을 팔아 어렵게 생활을 했다. 재혼한 남편과는 10년 전에 사별을 했다. 그 후 정부의 영세민 지원으로 근근하게 생활하던 중 얼마 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이 사고로 또 다시 몸 여러 곳에 장애를 입었고 얼마 되지 않는 교통사고 보상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

몸과 맘이 지칠 대로 지친 윤 할머니(현재 75세, 익산시)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 생각났다. 그녀는 보상금 중에서 100만원을 들고 36년 만에 예수병원을 찾았다.

"요즈음 제 건강이 좋지 않아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고요"

그녀에게는 죽기 전에 꼭 갚아야만 하는 금액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빚이 있었다. 바로 36년 전 예수병원의 치료비다. 딱히 금액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목숨 값이었다.

"제게는 평생 동안 항상 맘에 걸긴 게 하나 있어요. 제가 죽기 전에 다문 얼마라도 갚아야지요. 그래야 맘에 덜 걸릴 것 같아서 얼마 되지는 않지만...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도 없이 살고 있지만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원래 없이 살아서요"

그녀는 꼬깃꼬깃한 편지봉투에 들어있는 100만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리고 36년 만에 마음에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병원 문을 나서는 윤 할머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한편 예수병원(권창영 병원장) 측은 윤 할머니에게 감사를 전하고 후원금 100만원은 어려운 환자 치료비로 소중하게 쓰기로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윤 할머니에게는 예수병원 무료 종합건강검진과 치료로 건강을 보살펴 드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