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서평은 페이스북 페이지 '신학서적중고장터'의 독서 지원 프로그램에 의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인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관한 학제간 대화

윤철호 | 새물결플러스 | 648쪽 | 33,000원

컴컴한 밤하늘에 수놓아져 있는 별들을 볼 때면 알퐁스 도데의 멋진 소설 『별』이 종종 생각난다. 그리고 주인집 아가씨를 기다리면서 별을 바라보던 목동의 마음에 접속되는 듯하다. 그 목동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참 아름답고, 참 신비하다.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별들, 초롱초롱 빛나는 빼곡한 별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신비감은 참으로 놀랍다.

이제 그런 눈으로 주변 세계를 바라보니, 문득 자연 만물 자체가 모두 신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주가 움직이는 것, 해가 뜨고 지는 것, 어제 있던 것이 사그라지고, 오늘은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는 것 등은 참 신비하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별만큼이나, 우주와 자연만큼이나 신비하다.

그렇기 때문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온전한 이해는 아직도 요원한 일인 듯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 안에 있는 인간을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2017.8.22) 출간된 『인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관한 학제 간 대화(윤철호 저, 새물결플러스)』는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다.

1. 본서 『인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관한 학제간 대화』 는 어떤 책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의 영화와 존귀함, 신비로움을 주목하면서 시작하는 본서는, 기독교 신학이 인간에 대해 논의해 왔던 주요 쟁점들을 다루는 동시에,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떠오르는 다양한 쟁점들과 그에 대한 대안적 통찰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점은 곧 본서의 대표적인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다음의 특징과 맞물려 있기에 더욱 그렇다.

즉 인간론이 다른 주제 아래 포섭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그리고 폭넓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적 인간 이해가 '신학적 인간론' 또는 '기독교 인간론'이라는 명칭으로, 신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 구원론 등 다른 신학적 주제들과 동등한 위상을 가지게 된 것, 그리고 체계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인간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 하에 기독교 인간론에 관련된 여러 쟁점들을 폭넓게 다룬 책, 특별히 국내 학자에 의해 저술된 책이 출간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기독교 인간론이 독립적인 주제로 다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과의 관계성 아래서, 또 창조, 죄와 타락, 구원, 종말 등 다양한 신학 주제들에 대한 논의와 맞물려 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기독교 인간론의 여러 쟁점들이, 보다 넓은 신학적 장(場) 또는 망(網)에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기독교적 인간 이해는 다른 신학 주제들에 대한 해석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렇기에 많은 신학자들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논의해 온 것, 또 서로 논박해 왔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기독교 인간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여타 신학적 주제들과 그 쟁점들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피며 책을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더욱이 본서는 기독교 인간론을, 신학만의 영역이 아닌 학제 간 대화의 장(場) 속에서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현대적 쟁점들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서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본서는 여러 편의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니만큼 논쟁적이다. 배경적 이해를 요구하는 다양한 개념들과 결합되어 있는 논쟁적인 책이다.

2. 본서의 제목, 그리고 본서에서 다루어지는 쟁점들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쟁점들은 무엇인가? 다소 투박하게 구분하자면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전통적인 쟁점과 현대적인 쟁점이 그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두 부류의 쟁점들은 서로 전혀 다른 쟁점들이 아니고, 오히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자의 공통분모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운명(destiny)'은 저자가 밝히는 바와 같이, 미리 정해져 있어 피할 수 없는 숙명(fate)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종착점과 같은 의미이다.(8쪽) 그러면 이쯤에서 본서의 제목을 한 번 살펴보자.

본서의 제목은 『인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관한 학제 간 대화』 이다. 우선,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관한 문제는 전통적으로는 철학이나 신학의 주제였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다양한 학문 분야들의 공통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인간론'이 또 다른 전쟁터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쟁점들, 가령 '하나님의 형상', '육체와 영혼의 관계' 등의 문제는 인간의 본성 또는 인간의 본질적·존재론적 구성 요소에 대한 관심과 함께 논의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자신의,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독특하고 고유한 능력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 연결성의 상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파괴되었는가, 아직도 유효한가 등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진 바 있다.

한편, 인간은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가지 실체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인가? 육체는 영혼에 비해 단지 부수적이고 이차적인 요소일 뿐인가? 죽음 이후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문제의식들은 대략 '실체론적 관점'에서, 또 '본성과 운명에 대한 탐구'에 따라 논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의 학제 간 대화를 통해 대두되는 쟁점들도 어느 정도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문제 등,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운명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전통적인 쟁점들과 현대적인 쟁점들은 중대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놓쳐선 안 된다.

"고대 이래 서구 교회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영혼, 정신, 이성과 같이 인간 인격의 내면을 구성하는 존재론적 요소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독특성이 인간의 내적인 인격 구조에 있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관계성,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있다고 이해한다(436쪽)."

"오늘의 과학 시대에는 전통적인 '본성(nature)'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 되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본성' 개념에 의해 인간을 설명하는 대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 또는 정신의학, 사회학, 생태학 등 다원적 차원에서 수행되는 자연 및 사회과학적 탐구와의 대화를 통해 신학적 인간론을 수립하려는 시도가 점차 신학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8쪽)."

그러면 이제 본서의 부제의 또 다른 표현, '~에 관한 학제 간 대화'를 주목해보자. 본서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인간 이해를 고찰하면서 그것을 단지 신학의 영역 안에서만 전개하지 않고, 진화론, 생물학, 신경과학, 심리학 등 다른 학문들과의 대화 속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위해 다른 학문들과 대화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현대의 해석학적 통찰에 따르면, 모든 신학적 통찰들은 각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제시될 수밖에 없다.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신학이 철학과 논쟁적·대화적 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특성은 현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신학은 다른 학문들에 의해 제기되는 도전적인 문제들을 피해서 게토(ghetto)에 머무를 수 없다. 그 안에 머무르는 것이 다소 안전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거기서 독백으로 외쳐지는 주장들은 기독교 자신을 폐쇄적으로 고립시키는 독소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현대 신학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신학적 성찰이 학제 간 비판적 논쟁 또는 대화의 장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기독교 인간론'도 예외일 수 없다. 몇 년 전 작고한 독일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1928-2014)는 신학이 현대 자연과학의 설명과 연구 결과들을 우회하거나 배제할 수 없다고 역설한 바 있는데, 그에 의하면 과연 자연과학을 위시한 다른 학문들은 신학적 주장들에 단순하게 대립되거나 모순적이기만 하지 않다.

과연 현대의 진화론, 생물학, 신경과학, 물리학, 정신의학 등은 신학 자신이 제기할 수 없는 다양한 차원의 문제들을 제기하는데, 기독교가 전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점도 내포하는 동시에, 자연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를 더욱 심원한 차원으로 이끌어 준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는 신학과 다른 학문들의 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언어게임)은 기본적으로 정당하지만 신학과 과학 사이의 소통을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더욱 진지한 학제 간 대화를 추구하는 상호 비판적 상관관계 모델이 요구된다(311쪽)."

신학과 과학 모두 독자적 영역을 존중하는 동시에, 양자가 전적으로 대립되기만 하지 않고 오히려 공명 가능하다는 점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 또한 신학과 과학이 공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이때 양자 간의 대화에는 상호-주관적인(inter-subjectively) 태도가 요구된다.

본서의 저자 또한 유사한 입장에서 학제 간 대화를 통해 기독교 인간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나간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전통적인 쟁점들과 현대적인 쟁점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양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또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오면서 전환되는 것은 무엇인지 포착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60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물론 나무도 세밀하게 봐야 한다.

"오늘날 인간론의 특징은 비(非)-이원론적이며 동시에 관계적(비-실체론적)이라는 데 있다. 즉 실체적 자아가 아닌 관계적 자아, 공동체(또는 사회)와의 관계성 안의 인간, 자연(또는 우주)과의 관계성 안의 인간에 대한 논의 등이 인간론의 주된 주제가 되고 있다(8쪽)."

따라서 독자들은 전통적인 실체론적 관점이 어떤 것인지, 비-실체론적 관점이란 무슨 의미인지 주의 깊게 살피는 동시에, 현대의 지평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쟁점들과 그것들로 인해 수정되는 것, 논박되는 것은 무엇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고유한 신학적 측면에서 볼 때, 삼위일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περιχώρησιϛ) 관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열린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개방성과 관계성에 대한 고찰로 연결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학제 간 대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다윈 이후의 진화론이 기계적·자연주의적으로만 전개될 경우, 거기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보전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정신 또는 영혼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283쪽). 마찬가지로 신경과학은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 있어 인간의 정신 혹은 영혼을 전적으로 뇌의 작용으로 보면서, 물리주의 또는 물리적 환원주의적 경향으로 이어지게 된다(293쪽). 이런 상황에서 대안적으로 제시되는 '비환원론적 물리주의, 창발적 전일론, 유신론적 창발론' 등은 어떤 개념들인가? 특별히 '탈종교적, 포스트휴먼 시대'는 무엇이며, 이로써 제기되는 문제는 어떤 것인가?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함께 고통당하는 공감적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은 또한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인 삶에 참여한다." (501쪽)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은 위기의 극복을 위한 희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에 달려 있다(449쪽)."

여러 쟁점들을 고찰해 나가면서, 저자는 최종적으로 삼위일체적 관계성 안에 계신 하나님이 본유적으로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관계성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10쪽). 또한 저자는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동료 인간들을 비롯한 창조세계의 모든 피조물과의 상호 의존적 관계 안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들이 공감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 땅에 평화를 심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507쪽).

저자 윤철호 교수(장신대).
저자 윤철호 교수(장신대).

3. 본서의 구성

제1부에서 저자는 성서와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인간 이해의 여러 관점들을 간략하게 개관한다. 그리고 '창발적 전일론(emergent holism)' 관점을 통해 영혼과 육체에 관한 이원론적 인간론과 일원론적 인간론의 대립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을 모색한다.

제2부에서 저자는 라인홀드 니버, 폴 틸리히, 칼 바르트,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스탠리 그렌츠와 마이클 호튼 등이 전개한 인간론을 분석한다. 여기서 우리는 각 신학자들이 죄, 구원,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등을 어떻게 이해하며, 그에 따라 그들의 인간론이 어떻게 다채롭게 전개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2부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은 조직신학적 논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제3부에서 저자는 진화론, 생물학, 신경과학, 심리학, 생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 인간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여기서는 낸시 머피의 '비환원론적 물리주의'와 필립 클레이턴의 '유신론적 창발론' 개념이 대안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저자는 남방 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불교의 인간론을 소개한다.

3부에서 우리는 비록 저자가 각 분야에 정통하지는 않을지라도, 기독교 외의 분야들과 비판적 대화를 진지하게 진행해 나가려는 것을 보게 된다. 혹시 기독교 인간론에 현대적으로 제기되는 쟁점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다면, 3부를 중심으로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 제4부에서 저자는 20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한, 세계적인 경제적 불균형, 차별과 배제, 억압, 생태계 파괴 등의 생태학적 문제들을 살피고, 이와 더불어 포스트휴머니즘의 문제를 다룬다. 
  
4. 나가는 말

정리하자면, 본서는 "성서적 전통에 충실한 동시에 다른 학문들과의 열린 대화를 통해 이해 가능한 통전적인 신학적 인간 이해의 길을 제시(9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연 본서를 읽다 보면 기독교, 그 중에서도 개혁교회가 견지하는 주요한 신학적 가치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대 신학의 흐름에 최대한 발맞추어 가려는 저자의 노력을 엿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부분들이 있는데, 우선 자연주의적 진화론 또는 물리주의 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창발' 개념(10장), 둘째로 정신분석 이론과 대상관계 이론을 비교하면서 저자가 이끌어내는 결론(11장), 셋째로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포스트휴먼 또는 트랜스휴먼 문제에 대한 신학적 고찰(17장) 등이 그것들이다.

물론 이것들은 대표적으로 흥미로운 것들이고, 필자에겐 본서의 다른 논문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느껴진다. 위와 같은 경우들을 세심히 읽으면서, 필자는 신학적 게토에서 뛰어나와 학제 간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려는 저자의 의지를 어느 정도 엿보게 되었다.

한편, 본서는 서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17개 논문들을 '기독교 인간론' 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 모아 놓은 책이다. 신학자뿐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그동안 자신이 작성했던 논문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 일은 왕왕 있는 일이다. 본서도 그런 류의 책인데, 여기서 한 가지 아쉬움 아닌 아쉬움을 지적하자면, 본서가 하나의 관점으로 일관성 있게 쓰인 책이 아닌 만큼 보기에 따라선 다소 산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와 동시에, 역시 어느 부분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이나 학문 분야의 복잡다단한 사상들을 세밀하게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분명 어떤 주제, 쟁점들은 그것 하나로도 책을 하나 쓸 수 있을 만큼 복잡하고, 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한 것일테다. 또 이 책이 다루지 못한 쟁점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한계들이, 저자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각 논문에 허용된 지면(紙面)상의 한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함축된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 때문에,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본서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이 책이 다루지 못한 쟁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서는 기독교 인간론이 다룰 수 있는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다양한 쟁점들을 나름 폭넓게, 그리고 세심하게 연구한 결과물이기에, 기독교 인간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여러 도움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비로운 인간 존재를 탐구해 나가는 데 있어 부분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영환
현재 장신대 조직신학 석사 과정에서 논문을 쓰는 중이다. 낮에는 판넨베르크의 성령론에 관련한 논문을 쓰고, 밤에는 잠시 청소 알바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