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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진정한 이웃이 필요한 시대

기독일보

입력 Sep 04, 2017 05:1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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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이웃을 잘 만나지 못하면 애로가 많다. 우리 윗집에서는 밤 11시가 넘어서도, 드물기는 하지만 심지어 새벽 1시에도 청소기를 돌린다. 드르륵 드르륵 돌아가는 청소기 소리가 잠자리를 방해한다. 그래도 목사 가정이어서 말 한 마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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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두고 우리 반대 집에는 중국교포들이 살고 있다. 금, 토요일이 되면 완전히 밤이 새도록 도박을 한다. 아침 6, 7시에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주변 사람들의 아침잠을 설치게 만든다. 속상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속을 앓을 뿐이다. 목사 신분 때문에.

"우리나라는 이웃을 잘못 만났어." 아내가 자주 하는 푸념이다. 북한은 멈추지 않고 시비를 걸어오고 협박과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사드 보복으로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주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했는데도, 중국은 기대할 수 없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이고, 러시아도 믿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마저 한미 FTA 체결을 폐지함으로 위축된 한국 경제에 또 다시 휘발유를 붓고 있다. 이웃 나라를 잘못 만난 우리나라 운명은 예측하기 어렵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술렁이고 있다. 닭에게 기생하는 진드기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닮에게 살충제 성분이 있는 약을 살포해서 마음놓고 닭이나 계란을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밥상과 계란은 너무나 친밀하다. 각종 음식이 계란과 연계돼 있다.

그런데 그 계란을 마음놓고 먹을 수 없으니 시민들이 얼마나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지 모른다. 살충제 파동으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충제를 살포하는 농가들 때문에 억울하게 덤핑으로 넘어가는 농가들도 적지 않다. 정직하게 유기농으로 사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통속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래서 울상이 되어 있다. '정직하지 못한 이웃'으로 인해 덩달아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최근 네티즌들이 공분하는 일이 있었다. 경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 때문이다. 30대 초등학교 여교사가 6학년 남학생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것 때문이다. 그것도 여교사는 남편과 아이를 둔 기혼여성이다. 더구나 교실과 승용차 안에서. 한두 번도 아니고 아홉 차례씩이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수사 과정에서 여교사는 진술했단다.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다. 서로 사랑했다." '잘 생겨서' 그랬다고? 아무리 잘 생겨도 그렇지, 초등학생을, 그것도 제자를, 말이 되는 일인가? 서로 사랑해서 그렇다고? 사랑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사랑도 감정이 끌리는 대로 할 수 없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사랑에 빠진다면, 세상은 난장판이 될 게다.

더구나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 주부가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교사라면 상식과 이성이 통용될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는 건 용납될 수 없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정말 나쁜 선생이요, 악한 이웃이다.

'잠잘 때 조심해야겠어.' 어느 날 아내와 나는 한 바탕 웃었다. 며칠 전에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남 여수시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아내가 잠을 자고 있던 남편의 성기를 자른 사건이다. 결혼 23년 2개월차를 맞는 부부이다. 게다가 18세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고 있는 남편의 '거시기'를 잘라버렸다. 더구나 성기를 변기에 버렸단다.

한밤중에 신음소리가 들려 놀란 옆집 주민이 달려가 보니,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들 부부는 괜찮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아줌마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여졌단 말인가? 아내는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렇게 실토했다. "집에는 생활비 한 푼을 주지 않으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구 돈을 쓰고 다니는 게 너무 화가 났다." "평상시 대화를 하려고 하면 마구 폭언을 하거나, 가재도구를 집어 던지는 바람에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이들 부부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단다. 남편은 아내를 무시하고 물건 등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폭력까지 행사했단다. 아내는 남편의 보험 사무실에서 일하며 78만원을 월급 명목으로 받았다. 남편은 이 돈 외에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자, 아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남편은 골프까지 즐기면서, 아내에게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단다. 게다가 아내는 남편의 외도까지 의심하는 지경이었다. 갑자기 홧김에 우발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무서운 사람들이 많다. 멀리 있기도 하지만, 가까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세상은 삭막하다. 불안하다. 안심할 수 없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세상을 새롭게 할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0:25)?"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러면 나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율법교사의 속에 품고 있는 불손한 동기를 다분히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한 비유를 들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질문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졌느냐?" 물론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게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을 듣고 보면 답은 명확하다. 그래서 율법 교사는 대답했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율법 교사에게 도전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이웃에 대한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뜨렸다. 유대인들은 지역과 혈통, 종교적인 틀 속에서 이웃을 규정했다. 그들이 정한 '이웃 개념'에 사마리아 사람은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을 '강도 만난 유대인의 이웃'이라고 단정지었다. 유대인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말이다. 어디 사마리아 사람을 이웃에 끼워줘?

그런데 예수님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주셨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살고 있는 여인도 찾아주셨다. 더구나 그녀는 5남자에게서 버림받은 여자다. 또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의 친구, 이웃이 되어 주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게 뭔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이웃'이라는 게다. 진정한 이웃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다. 누가 진정한 이웃이 되어 줄 건가? 예수님을 따라 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 바로 내가 아닌가? 제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아닐까?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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