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이라는 이름

가나안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없다. 그러나 가나안만큼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이름도 없다. 가나안 땅은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온갖 우상숭배와 음행과 타락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땅이요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나안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이 두 가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 가나안의 이름은 얼마든지 왜곡과 도용이 가능한 이름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나안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는 대체적으로 매우 사악하고 거칠고 공격적이다. 그들은 여러 개의 분산된 개체로서 이합집산의 산발하는 떠돌이로 출몰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나안은  하나의 이상향이자 소망의 대상이지만 실제의 가나안은 안락함이 있는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 치열한 전투장이고, 음행과 우상숭배가 만연한 타락의 땅이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저주받은 땅으로 등장한다.

가나안이라는 이름으로 시대마다 지역마다 이스라엘 앞에 나타나는 이들은 이스라엘을 역사적으로 시종일관 괴롭히고 성가시게 한다. 결국 그들의 유일한 공격 대상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이었다. 족보상으로는 분명히 가나안은 노아의 후손으로서 동족의 피를 나누고 있지만, 이들에게 있어 이스라엘은 오직 원수일 뿐이다. 특히 일명 '가나안 7족'으로 호칭되는 부족들은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노략질과 침공과 탄압으로 일관한다. 이스라엘과 가나안 부족은 단 한 번도 평화의 시기를 보낸 적이 없다.

이러한 가나안의 상징성과 의미는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경각심을 깨우쳐 주는 도구다. 지금도 가나안의 이름을 가진 실체 없는 악한 대적이 살아있는 신앙인들을 쉼 없이 공격하고 괴롭히고 공격하고 넘어뜨리고자 유혹하고 있다. 이에 가나안의 정체를 살피고 연구하고 이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일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사악한 영의 도전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가나안(Canaan)은 히브리어로 '케나안'인데 이는 '법률, 혹은 평평한 땅'을 뜻한다. 가나안은 사람 이름에서 유래하여 지역의 이름과 한 부족의 이름이 되었다. 원래 가나안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막내 아들이다(창 10:15). 가나안족은 바로 그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경에 따르면 가나안은 그의 아버지 함이 노아의 벗은 몸을 보고 버릇없이 행하여 노아로부터 아버지 함과 함께 저주를 받았다(창 9:24). 노아는 함과 가나안을 향해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고 했다. 이 저주는 당장 가나안에게 실행된 것이 아니라 후손에 이르러 이루어진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가나안족들을 종들로 삼아 부리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나안족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결론나지 않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가나안 7족만을 가나안족으로 삼아야 할지, 그들이 살았던 지역은 또 어느 곳인지에 대해 우리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일부 학자들은 주전 5세기 알라라크(Alalakh) 왕 이드리미의 비문에 있는 '마 아트 키 인 아 님(ma-at ki-in-a-nim, 가나안의 땅)'이라는 언급을 기초로 갈대 혹은 진한 자줏빛을 뜻하는 악카드어 어근 키나(Kina)와 가나안을 동일시한다. 또 주전 15세기 누지문서에 표기된 '키나후'(kinahhu, 가나안 사람의)라는 형용사가 원래 '자줏빛의 염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가나안족과 진한 자줏빛 직물과의 상관관계를 논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자들은 가나안이라는 이름은 가나안족의 고향 혹은 정신적 명사로 상징되는 이름이라는 해석을 지지한다. 다른 한편으로 가나안이라는 이름은 어떤 특별한 사회 계층, 즉 상인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히브리어 '케나아니'는 상인, 혹은 통상하는 자를 일컫는다. 상인으로서 가나안의 이름은 애굽의 아멘호텝 2세(주전 1449-1433)의 비석에도 나오고, 18세기 발견된 '마리서신'에는 도둑질하는 상인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이때 상인이 가나안인을 가리킨다고 보고 있다.

성경과 함께 역사 속에서 가나안 족속은 갖가지 사회 정치 문화적 분류 속에 열거된다. 이는 노아의 손자 가나안이 낳은 자녀들과 그 후손들의 번창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이다. 성경에는 가나안의 후손이 무려 11개 부족에 이르고, 그 분포지역이 팔레스타인 전체를 뒤덮는다고 보도한다.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창 10:15-19)

저주 받은 떠돌이들

상기 기록에 의하면 우선 노아의 손자 가나안은 11명의 자녀들을 낳고 이 자녀들이 그 이름대로 각 후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나안의 후예는 모두 11개 부족이 되는 셈이다. 이들은 모두 저주 받은 함의 후손들이기도 하다.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과 격리된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저주는 마귀의 자녀들의 출현과도 상관성이 있다. 하나님은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연모하여 그들을 아내로 삼은 것에 대해 진노하시어 홍수 심판을 단행하셨고, 그 결과 생존한 사람은 노아와 그 아내와 아들 삼형제와 세 며느리를 합해 8명이었다. 만약 함과 가나안이 저주를 받지 않았다면 이 후손들 모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어 복락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함과 가나안은 노아의 벗은 몸을 보고 그것을 힐난하는(?) 잘못을 범하여 저주를 받게 되고 하나님은 가나안족속의 경계를 정하고 난 다음 여러 곳으로 흩어지도록 심판하셨다.

가나안 족속의 영토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민수기 34:1-12절 에스겔 47:15-20절과 48:1-28에 의하면, 가나안 족속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하살에난에서 바산까지, 서쪽으로는 지중해까지, 남쪽으로는 사해, 북쪽으로는 아무르왕국과 접경을 이룬 하맛 어귀까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위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 족속의 경계는 현재의 지명으로 확인이 정확히 되지 않는 지역들이 대부분이다. 시돈과 그랄, 가사와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라사가 정확히 어디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직까지 모두 파악하지 못한다.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고대할 뿐이다.

대신 역사 문헌에 나타나는 가나안 지역에 대한 언급은 가나안 영토에 대한 간접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주전 14-13세기 애굽 문서에 의하면 가나안의 남쪽 경계는 '와디 엘 아리쉬(애굽 시내)'라고 밝히고 있다. 이곳은 실레(sile)로 부터 가사에 이르는 군사로가 있는 곳으로, 여호수아 15:1-4절에 의하면 사해 남동 해변까지 연장되어 있다. 즉 가나안 족속의 영토가 서로는 지중해, 북으로는 하맛 어귀까지요, 동으로는 하살에난에서 바산까지, 남으로는 사해까지로 나타난다.

여러 곳으로 흩어진 이들은 셈족, 비 셈족 요소로 이루어진 다양한 종족의 문화적 집단으로 성장한다. 후대에 이르면 가나안 족속이라는 말은 베니게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청동기 시대 때엔 특별히 가나안 문화의 계승자들이 나타남으로 하나의 독특한 문화의 양식을 소유한 부족으로 이해되기도 하며, 이후 가나안 족속은 갖가지 사회·정치·문화적 분류 속에 열거된다. 성경은 이들의 다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창 36:2-3)".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접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개척하라 하니라(수 17:15)".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겔 16:3)".

그런데 평화로웠던 초기 가나안의 촌락과 성읍은 주전 2,300년경 애굽 제6왕조의 침입으로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후 주전 2,000년부터 약 1,800년까지 가나안은 애굽 제 12왕조의 지배에 놓인다. 주전 18-17세기에는 힉소스 왕조와 함께 가나안 지역에는 강력한 성벽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도시들이 등장한다. 이들에 의해 주전 16세기 힉소스 왕조가 추방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애굽은 투트모스 3세 등이 가나안을 재침공하여 탈환을 시도하지만 이후 애굽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가나안 지역에는 헷 족속의 도시들이 성장하여 중심 세력이 되었다.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지도 아래 출애굽하고, 여호수아를 앞세워 가나안에 들어갔던 때가 바로 애굽과 가나안이 갈등을 겪던 시기였다. 정치·경제·군사적인 면에서 열악하기 그지 없던 히브리인들이 강력한 도시국가로 무장한 가나안 지역에 들어가 정착한 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었다.

애굽을 물리치고 앞선 문명국가였던 가나안은 그렇게 힘 없이 오합집산에 불과한 이스라엘과 주전 13세기경 지중해 연안에 정착한 블레셋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가나안 역사는 이렇게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가나안 인들이 사용하던 알파벳은 히브리어와 우가리트어, 페니키아어에 영향을 미쳐 현대 서양 알파벳의 기초가 되었다. 또 가나안인의 신들은 히브리 문학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었다. 오직 현세에서의 번영과 자손의 축복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존재한 가나안 신들은 이스라엘을 현혹하기에 다채롭고 매력적인 우상으로 군림했다. 이를 위해 가나안 신들은 매춘행위를 종교적 의식으로 격상시켜 매춘에 대한 죄의식을 무디게 했다.

비와 폭풍의 신인 '바알(주인)', 천둥의 신 '하닷', 곡물의 신 '다곤', 사랑의 신 '아세라' 등이 이스라엘 족속을 유혹한 대표적인 우상들이었다. 특히 '엘'이라는 용어는 구약 성경에도 그대로 차용되어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엘 엘룐(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 올람(영생하시는 하나님)', '엘 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로 유입되었다.

교훈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안에서 일명 '가나안 성도'라는 별칭이 공유되고 있다. 나름대로 여러 이유로 기존 교회에서 이탈한 채, 교회 출석을 미루거나 탐색하거나 저항하거나 등등의 이유로 '교회를 안 나가는 성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물론 이런 용어가 합당하다거나 이들을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런 부류의 성도들이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엄연한 현실이고, 마땅히 기존 교회와 지도자들과 책임자들이 이들이 제기하는 교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탐구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노아는 가나안에게 저주를 행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가나안 족속을 저주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마치 야벳이 셈의 장막 안에 거할 때 축복을 받는 것처럼 가나안 족속에게 영원히 저주를 내린 것이 아니라, 훗날 헷 족속으로 하여금 셈의 후예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헷 족속으로부터 매입했고(창23장), 다윗은 그의 수하에 헷 사람 아히멜렉(삼상 26:6)과 우리아(삼하 11:3)를 두었으며, 솔로몬 왕은 헷 사람과 혼인동맹을 맺고(왕상 11:1) 그들과 무역거래를 하였다(왕상 10:29). 이것이 가나안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大구원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속히 '떠돌이 성도'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들에게 바른 신학과 교리를 가르치고 참된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증거해야 한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참된 경건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모든 주의 종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너무 많은 실망감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다. 강제된 헌금과 각종 기부금 등에 얽힌 돈 문제, 교회 권력을 놓고 벌인 아귀다툼들, 성적 문제 등 차마 인정하기 싫은 부끄러운 사건들의 주인공이 되어 추태가 되고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받는 초라한 신세가 된 것이 사실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大개혁'을 선언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교단과 교회가 앞장서서 새로운 선언문을 작성하고 신앙을 새롭게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앞세우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 새로운 한국교회의 깃발을 높이 쳐들어야 할 것이다.

'진리의 깃발'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다. 이 성령의 바람은 회개한 자의 심령에 부는 바람임을 명심하자. 아멘.

최더함 목사
Th.D/역사신학. 마스터스세미너리 책임교수. 바로善개혁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