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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질서는 지키되, 남자는 여자를 존중하고 한없이 아껴야…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Aug 20, 2017 05:59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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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24] 독한 여자는, '못난 남자'의 작품

 

▲ⓒ박민호
(Photo : )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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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아직도 약자이다. 아무리 위상이 나아져도 여성은 영원한 약자일 것이다. 영원한 강자를 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은 남자이다. 적극적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자들은 소수이겠지만, 통념이나 무의식 속에서 여성들을 얕잡아 보는 남성은 의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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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욕 먹을 여성도 있겠지만, 똑같은 행동을 해도 여성이라서 더 욕을 먹는 게 사실이다. 잘못한 행동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더 큰 비난과 혐오가 더해진다.

오랫동안 억압받는 여성들 사이에서 나온 운동이 페미니즘이다. 이 운동은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달했는데, 사실은 비성경적이고 뉴에이지 운동과 각종 무신론적 사상들을 담고 있다. 여성 인권을 회복한다는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하나, 그 철학이나 실행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가 페미니즘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성경은 이미 여성을 아끼고 존중하고 있지만, 그것이 세상이 생각하는 평등과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잘못 이해된 것뿐이다. 세상은 모든 행동을 똑같이 할 수 있어야 양성평등으로 인정하지만, 성경은 남녀가 모든 부분에서 똑같지는 않고 역할에 따른 특수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화장실의 남녀 구분도 없애야 한다거나 남자도 임신할 수 있어야 하고,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평등이 아니다. 획일적 평등(epuality)보다 귀한 것은 공평(equity), 즉 '공명정대'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만든 일부다처제를 잘못으로 지적하고 여성의 인격과 영혼의 무게가 동일함을 말씀하지만, 남녀가 매사에 같은 권한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실상 '권한'이 아닌 역할의 차이일 뿐이며, 권한이라고 부른다 해도 양성이 서로에 대해 어떤 점은 낫고 어떤 점은 부족한 '서로 다름'과 '상호 보완'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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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페미니즘을 능가하는 한 움직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메갈리안', 줄여서 '메갈'이라고 불리는 이 여성들은 '일베'를 중심으로 남자들이 퍼부은 여성 혐오(여혐)에 맞서는 집단이다. 이들은 포털에서 독립했다가, 다시 옹호하는 대상과 표현 방식에 따라 다시 두 개의 새로운 이름의 단체로 분화했다고 한다.

그들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고 박수를 받기도 한다. 뜻은 좋지만 보기에 불편했던 '생리대 퍼포먼스' 같은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나, 소라넷 같은 음란사이트 폐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잘한 일 중 하나였다.

아무튼 메갈리안이 취하는 방식은 이른바 '미러링(mirroring)'으로, 자신들이 받은 혐오를 거울에 비추듯 되돌려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반사'하는 것이다. 여성 혐오론자들이 만든 '김치녀', 즉 명품밖에 모르면서 데이트 비용도 내지 않는 개념 없는 여자를 이르는 말은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부실한 벌레 같은 한국 남자라는 뜻의 '한남충'으로 바꾸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수탉이 울면...'으로 바꾸는 식이다.

이 여성들의 '반사'를 들어 보면 남성들이 그동안 어떤 폭력적 혐오를 가했는지 알 수 있다. 미러링이기 때문이다. "오늘 왜 이리 까칠해? 생리해?" 이런 무례한 말은 "오늘 왜 이리 까칠해? 몽정했어?" 이렇게 바뀐다는데, 여기서 거론할 수 있는 최대치가 이 정도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말들이 많다. 남자들이 먼저 던진 혐오가 얼마나 집요하고 치졸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메갈리안들의 집단 '메갈리아'는 원래 한 포털의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갤러리(토론방)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메르스 발병 당시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한 한국 여성이 홍콩 비행기의 격리 조치를 거부해 아시아에 메르스가 퍼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루머 때문에, 남녀 성 대결의 격론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 때부터 시작된 여성들의 반격을 통쾌하게 바라본 여성들이 성지처럼 여긴 곳이 이 '메르스 갤러리'인데, '메갈리아'라는 말은 '메르스 + 이갈리아'로 이갈리아(Egalia)는 남녀 역할이 뒤바뀐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게르드 브란텐베르그(Gerd Brantenberg)의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노르웨이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남자가 성폭행을 당하는 등 모든 면에서 남성이 억압받고 있다.

이런 미러링의 기법을 보니, <증오>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는 백인이 약자이고 흑인이 기득권층이다. 백인은 늘 차별받고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다. 대기업 회장도 흑인이다. 주인공 백인 남자는 돈이 없어서 아들이 좋아하는 흑인 슈퍼맨 인형을 사주지 못하는 비참한 처지다. 이런 것처럼 평소 보이지 않던 불평등이, 입장을 바꿔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는 효과를 활용한 것이 메갈리아의 방식이었다.

소설 속 이갈리아에서 여성은 움(wom)이고 남성은 맨움(manwom)이라고 한다. 맨(man)에 wo가 붙어 우먼(women)이 되는 언어도 불평등하므로 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물론 크리스천은 이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남자가 먼저 만들어졌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온 것이니까.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창세기의 말씀조차 남성우월주의적 문화가 만든 종교의 산물, 즉 남성적 세계관의 신화로 여기겠지만 말이다. 반발심이 오해를 낳고 질서를 바꾸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사람은 man이고, 이 단어에는 모든 사람, 즉 여자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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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안들은 사회적 지탄도 많이 받았지만, 여성들의 답답함도 이해가 간다. 그들이 몸을 옥죄는 '코르셋'이라고 부르는 여성 혐오, 차별, 무시, 억압과 유린 등 원인 제공을 한 것은 모두 참된 질서의 의미를 오해한 남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과격하고 극단적인 혐오 되돌려주기가 모든 여성의 공감을 얻은 것도 아니다. 남자들의 여성 혐오는 일종의 모욕이고 범죄인데, 아무리 억울해도 법의 힘을 빌지 않고 똑같은 범죄로 맞대응해 사적 응징을 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될 것은, 이 여성들은 궁극적으로는 남성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남성 혐오가 되는 면이 있지만 이들이 처음 하고자 했던 것은 '여혐혐', 즉 여성 혐오에 대한 혐오였다. 처음부터 남성을 혐오하려 했다면 바로 남자들을 비난하지, 미러링이라는 방식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혐오'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는 판단도 있다. 변호사이자 저술가인 마리 J. 마쓰다(M. J. Matsuda)가 정의한 혐오 발언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열등성'에 관한 메시지
-역사적으로 억압된 집단을 향한 메시지
-박해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비하적 메시지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메시지가 혐오라는 것이다. 자기보다 강자에게 하는 말은 비난이나 공격이라 해도, 혐오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흑인이 백인에게, 걸인이 재벌에게,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동자에게, 못생긴 사람이 잘생긴 사람에게 각각 상대의 특성에 대해 비난하는 욕설은 그 강도와 양이 확연히 다르며 혐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잘 생기면 다냐?"라는 말이 조롱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혐오 발언이란 상대방의 약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경멸적 언어로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반발은 남자들의 여성 혐오와는 성격이 다르며, 일대 일의 비교는 어렵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그녀들의 반란은 먼저 여성 혐오가 없었더라면 있지도 않았을 공격, 아니 방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한 여성을 창조한 것은 어쩌면 못난 남성들이 아닐까.

그렇다고 혐오를 주고받은 남성과 여성 어느 한 쪽이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면에서 권력을 쥔 남성들이 여성들을 더 배려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크리스천들은 신랑이신 예수님이 신부인 성도에게 베푸시는 사랑, 어떤 경우에도 버리지 않으시는 큰 사랑의 예표를 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참뜻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녀의 질서는 지키되 남자는 여자를 존중하고 한없이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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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익을 말할 때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인물이 멕시코의 학자이자 시인인 후아나 이네스(Juana Inés, 1651-1695) 수녀이다. 멕시코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기도 했던 인물 이네스는 여성이 해방되기 수 세기 전 살았던 독립 여성의 표본으로 불린다.

그녀는 그 시대의 여성들이 걸을 수밖에 없었던 전형적 선택인 결혼 대신 수녀원을 택했다. 학문을 탐구하고 시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러나 천부적인 재능과 지성으로 왕실의 총애를 받기도 했던 그녀는 시대를 역행하는 생각과 실천으로 대주교의 박해를 불렀고, 44세의 나이에 전염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이단을 심판하던 종교재판소는 그녀를 탄압하고 입을 막았다. 역사적으로 남녀에게 적용되던 이중적 기준을 주시하던 그녀의 예리한 시를 보면, 왜 남성들로 이루어진 이단재판소가 그녀를 불편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그릇되게 여성들을 책망하는 
그대 어리석은 남성들이여
그대들이 나무라는 것은 바로
그대들이 저지른 것임을 아오

그렇게 간절히 애태우며
여성들을 유혹해 내고서
왜 정절을 요구하나요
죄 짓도록 부추겨 놓고서

저항하는 여인을 짓밟고서
잠시 후엔 엄숙히 따져들지요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여성이 문란하기 때문이라고

속박이 풀린 이 열정 속에서
누가 더 큰 책망을 들어야 하나요?
남성의 유혹에 넘어간 여성인가요?
여성을 유혹한 타락한 남성인가요?

둘 다 오명을 벗을 순 없겠지만
죄는 정녕 누가 지은 것인가요?
대가를 바라며 죄를 짓는 여성인가요?
그 죄에 대가를 지불하는 남성인가요?

현대의 남성 혐오와는 달리 조심스럽고 자기성찰도 들어 있지만, 남성들의 심리와 부끄러운 이기심을 꿰뚫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서로에게 퍼부어지는 혐오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두고 공방할 문제가 아니다. 닭이 먼저 창조되었듯, 먼저 창조된 남자가 있다. 아담은 죄를 짓고 하나님이 찾으시자 숨어서 하나님과 여자를 동시에 타깃으로 삼아 핑계를 댄다.

"남자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으라고 주신 여자 곧 그녀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매 (창 3:12)".

먼저 창조된 남자가 먼저 여자를 '간접 디스'하는 장면이다. 이때부터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을 것을 알고 칼을 갈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남녀의 갈등, 남성과 여성의 대립과 혐오 공방이 있다면 남자가 먼저 풀어야 할 것이다.

나도 남자지만... 잊지 말자. '독한 여자'는 바로 '남자의 작품'임을.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www.woogy6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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