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교수.
(Photo : ) ▲김충렬 교수.

 

 

제33장 내적인 인격으로서 아니마(1)

앞장에서 우리는 원형에 대해 고찰했다. 모든 것에 원래의 모델이 있는 것처럼 정신에도 원형이 있는데, 이 원형은 근본적으로 정신을 이루는 바탕으로서 특성을 갖는다. 정신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본래 있는 특성으로 내재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여성적 특성이 내부적으로는 남성에게서 정신의 특성을 이루면서도 외적으로는 인격으로 표출되는 것이 된다. 그 중에서 아니마는 여성의 특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건이다. 어떤 남성도 여성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을 정도로 완전히 남성적이기 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1. 아니마의 이해

자아는 두 가지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외부세계와 접촉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부세계를 위한 것이다. 외부 세계와 접촉하기 위해서 외부의 집단세계에 필요한 행동양식을 익히는 태도를 외적 태도(exteranl attitude)라 한다. 이를 외적 인격의 페르조나(Persona)라 부르는데 반해서, 자아는 내적인 세계, 즉 무의식에 적응하는 내적 태도를 가지는 내적 인격의 특성을 가진다. 자아의 내적 인격에 여성적인 특성으로서의 아니마가 있다. 이처럼 아니마는 여성적인 특성으로서 정신의 바탕으로 이루는 인격의 원형인 것이다.

1) 아니마의 정의

아니마(Anima)는 융에 의하면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이다. 아니마는 남성 안에 존재하는 여성인데, 이는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이며, 남성의 정신 안에 존재하는 여성적인 특성이다. 대단히 남자다운 남성이 때로는 잘 숨겨놓아서 여성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안에는 매우 부드러운 여성적인 특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남성에게는 여성적인 특징이 가급적이면 억압하는 것을 미덕으로 할 뿐이다.

아니마는 성격상 남성의 마음에서 모든 여성적 심리경향이 인격화한 막연한 느낌이다. 이리하여 남성에서의 아니마는 '기분'(mood)이나 '정동'(emotion)으로 나타난다. 남성이 기분이나 정서에 많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마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정신은 두 가지 정신,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도 한 신체 안에서 양성(남성, 여성)의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처럼 정신에서도 남성 안에 여성적인 특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융은 아니마를 언급 할 때 남성 안에 존재하는 여성적인 특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비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이지만, 이에 대한 이해를 더 쉽게 하기 위해서는 아니마는 그냥 여성적인 특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성적 특성을 기반으로 우리는 여성을 논한다. 여자는 어떻고, 이러저러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여성적인 특성은 생물학적인 차이와 더불어 생리적으로 다른 차이도 있지만, 이미 사회적으로도 "여성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통념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사회적인 통념은 이미 그런 여성의 특성이 경험된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심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경험하고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는 섬세하면서도 남성이 전혀 알지 못한 것에 느끼는가 하면, 남성이 관심을 전혀 갖지 못한 것에도 관심을 갖기도 한다는 점에서다. 이런 여성의 특성은 남성에 비해 매우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고 유연한 특성을 갖는다.

이처럼 여성과 남성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에 그 조화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경험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특성이 조화를 이룰 때는 가장 행복함을 경험할 수 있는 반면에, 잘 조화되지 않을 때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한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와 남자의 문제는 결국 서로 다른 특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여성적인 특성으로서의 아니마

아니마는 남성 속에 있는 여성적인 특성이라고 했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적인 인격이기에 남성이 여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융은 영혼의 여성적인 특성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남성과는 그렇게 다른 심리를 지니고 있는 여성은 남성이 전혀 눈 뜨지 못한 것에 대하여 여러가지 사실들을 가르쳐 주는 원천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영감(靈感, Inspiration)을 의미한다. 때로 남성을 훨씬 능가하는 여성의 예감능력(Ahnungsvermoegen)은 남성에게 유익한 경고를 주며 개인적인 것에 관심을 둔 여성의 감정은 남성에게 있는 별로 개인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감정으로는 찾기 어려운 길들을 가르쳐 줄 수 있다."

아니마에 대한 융의 언급은 여성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다. 아니마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가르쳐주는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것은 여성은 남성에게 영감(靈感, Inspiration)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여성의 영감은 남성이 전혀 알 수 없는 예감을 가능하게 만들어 미리 당할 일에 대하여 대처하는 조치를 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특성은 여성의 예감능력(Ahnungsvermoegen)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남성을 훨씬 능가하기에 남성에게 유익한 경고를 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여성은 개인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여성의 감정은 남성에게 그가 지니고 있는 별로 개인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감정으로는 찾기 힘든 길들을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융은 여성적인 것을 지니고 있지 않은 완전히 남성적인 남자들이란 전혀 없다고 단정한다. 말하자면 모든 남자는 유전적인 요인으로 여성적인 이미지를 자신 속에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자신이 의식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여성적인 특성은 남자들에게서도 여성적 특성이 그 흔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임을 의미한다.

남성 안에 존재하는 이 아니마의 여성성은 때로 남성성보다 더 발전된 경우도 있다. 여성성이 남성 안에서 발전된 사람을 가리켜 "저 남자는 꼭 여자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아니마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아니마의 특성은 때로 남자의 꿈에 무의식적인 여성적인 요소가 인격화된 상(像), 즉 내적인 상(像)을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현실에서는 일반적인 남성이 하지 못하는 일을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해내는 것을 들 수 있다.

남성이 여성적인 특성이 잘 발달되면, 여성이 하는 일에도 장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를 들 수 있고, 특히 예술적인 분야에 재주를 나타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섬세한 음악적인 재능을 보이는 것이나 고도의 감각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것, 그리고 섬세한 필치로 책을 저술하는 것 등이 모두 아나마의 특성을 힘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3) 아니마의 본질

아니마는 여성으로서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에 대응하는 무의식적인 내적 인격이다. 그것은 태초로부터 인류가 여성에 대해 상상하고 체험한 모든 것에서 우러나온 인격의 원형을 조건으로 하거나 토대로 하는 것으로 시대와 사회를 초월한 인류공통의 보편성을 지니는 여성적인 특성이다. 이런 아니마는 집단무의식이기는 하지만, 개인무의식에 속하는 특성도 있으므로 의식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보상하는 면이 개인적으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집단적인 사회적 여성관 속에도 인격의 원형적 바탕이 끼어들 수 있기에 집단적인 여성관에는 시대나 사회에 따라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특성이 경직된 사회에서는 개인에게 강요되거나 억압되는 조건이나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반드시 동일하게만 보이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아니마는 개인에게서 발달의 여하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마의 특성은 주로 막연한 여러 느낌과 기분, 예견이나 육감,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감수성, 개인적 사람의 능력, 자연에 대한 느낌, 그리고 무의식과의 관계 등과 같은 남성의 마음속에 숨은 모든 여성적인 심리경향들이 인격화로 나타날 수 있는 특성들이다. 이런 심리적인 경향은 여성이 남성보다는 수용적이며, 분석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느낌으로써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의 수용성과 포용성은 남성보다는 더 잘 할 수 있고, 그런 특성이 남성에 비해 우월적인 측면이기도 하며, 느낌이나 기분, 그리고 분위기에 강한 측면을 보인다. 이런 아니마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거나 발휘하는 여성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매우 "여성스럽다."고 표현하는 것은 모두 이런 아니마의 특성에 기초하여 평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아니마의 특성에 따라 여성은 남성이 관심을 갖는 반대적인 특성을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사회와 국가보다는 가정을, 추상적인 이념이나 학설, 보편적인 진리보다는 구체적인 개인의 감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여성은 남성이 사회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비하여 가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구체적인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바로 아니마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아니마의 특성이 극단적으로 작용하며 여성의 의식은 때로는 극도로 '개인적인' 것에 치중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니마는 여성적인 것의 모상, 원형으로서의 '어머니'는 출산이나 산출력을 가진 대지(大地)와 같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아니마의 여성적인 특성은 논리성을 초월하는 특성 때문에 죽음을 포용하는 등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특성과 영원한 것에 연계되기도 한다.

2. 아니마의 특징

아니마의 특성은 이미 아니마의 특징을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마의 특성은 그대로 아니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아니마가 무의식의 내적 인격에서 내면에 관계에 작용하여 인격의 원만성을 이루는 것으로 역할을 한다면, 이는 진정한 자기됨의 본질에 관여하는 것이 된다. 이런 아니마의 특징은 여성적인 측면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더 상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1) 기분과 감정에 작용하는 아니마

기분이나 감정은 아니마의 일차적인 특성이다. 기분이나 감정은 논리적인 것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분위기와 상당히 연계되어 있다. 이는 여성이 분위기(mood)를 좋아하고 거기에 끌리거나 압도되는 요건으로 말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멋진 경치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나 아름다운 영화장면에 마음이 감동되는 것, 그리고 감정에 유달리 압도당하는 것 등은 모두 아니마의 특성에 기반한 것이다.

"저 이른바 느닷없이 마음속에 일어나 제동을 거는 것들, 변덕스러운 기분이 정취, 막연한 느낌, 그리고 환상의 조각들, 때로는 집중해야 할 작업을, 때로는 가장 정상적인 사람의 마음의 안정을 해치며, 때로는 신체적인 원인, 때로는 그 밖의 동기 때문이라고 떠넘기는 것들, 이것들은 대개 의식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인 과정이 지각된 것들이다."

아니마는 반드시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다. 남성도 기분에 좌우되어 여자 이상으로 기분이나 감정에 이끌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대개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남자일수록 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런 것은 남성이 여성적인 경향에 강하게 사로잡힌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자신도 모르는 내적인 인격의 무의식의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기분이나 감정은 아니마의 특성에 의해 작용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도 여성처럼 기분이나 감정에 더 많이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특성은 조금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남자의 기분은 자신의 존재의 인정과 가치의 특성에 따라 기분이 상승되는 것이라면 여자의 기분이나 감정은 주변의 자극에서 느끼는 상황과 여건의 특성에 기반을 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의 여자는 더 많이 감정이 자유로워지게 되면서 자연히 말이 많아지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가라앉아 표현하는 능력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경우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무의식에서 작용하여 의식으로 드러난 결과로 볼 수 있다.

2) 육감과 예감에 작용하는 아니마

아니마의 육감과 예감은 여성이 그토록 자랑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여성의 예감을 남자는 못 속인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여성은 아니마의 특성으로 인해 남자와는 달리 더 예민하게 사물이나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 여성의 무의식이 예민하게 작용하여 남자가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예감하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논리적인 과정을 초월하는 것으로 남자를 능가하는 특별한 부분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편이다. 이로 인해 여성은 남성보다도 어떤 일에 대해서 그것이 되어질 상황을 더 먼저 아는 경우가 있다. 남성이 전혀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앞날에 대해서 여성은 그 예민성을 동원하여 알아내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육감(肉感)이란 말 그대로 육체가 느끼는 감각으로 어떤 상황이나 일에 대한 정보 없이 그것에 대하여 예측되는 본능적인 느낌이다. 이는 순수한 논리적인 과정의 뇌의 작용과는 다르게 본능적인 감각을 우선하여 판단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육감에는 "나는 육감적으로 그가 곧 떠나리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수선한 사무실 분위기에서 육감적으로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등이다.

반면 예감(豫感)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암시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미리 느끼는 것이다. 이런 예감은 미리 앞을 내다보거나 짐작하는 작용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대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건강이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신기할 정도로 어머니의 예감이 적중했다" 등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육감과 예감은 여성의 개인에 따라서는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특성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는 이런 특성이 잘 발달되어 있다고 보지만, 모든 여성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3) 부드러움과 유연성에 작용하는 아니마

부드러움과 유연성은 여성이 갖는 매우 특징적인 것이라고 해야 한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유연성은 남성이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부드러움은 우선 촉감적으로 닿거나 스치는 느낌이 거칠거나 뻣뻣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성질이나 태도가 억세지 아니하고 매우 따듯한 것을 포함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드럽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특성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여성의 부드러움은 남성이 가장 요구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남성은 부드러운 여성을 좋아하고, 또 그런 부드러움을 기대하기에 남성은 여성이 부드럽게 대응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요구하는 특성이 있다.

유연성도 그 특성상 부드러운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 여성의 유연성은 딱딱하거나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고 약간은 늘어지는 특성의 부드러운 성질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유연성은 남성의 딱딱함에 비하여 모든 것을 원만하게 만드는 특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성은 끊고 맺는 딱딱함에 비하여 여성의 부드러움은 사태를 단정하여 갑작스런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더 깊이 생각하거나 대응하여 사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데 장점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여성이 유연성을 갖고 대처하면 "여성답다."고 평가되어 여성적인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대신에 남성처럼 대범하거나 냉정하게 대응하면, 유연성이 결여되는 것으로 평가되어 여성적 가치가 하락되는 것으로 인정을 받기도 한다. 부드러움과 유연성은 겉으로는 약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전혀 반대의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부드러움과 유연성이 딱딱하고 강하게 보이는 것을 이기는 때가 바로 그런 경우다.

4) 사랑과 양육에 작용하는 아니마

사랑과 양육은 매우 여성적인 특성이다. 사랑과 양육은 생명체를 아끼고 기르는 특성이다. 여성의 사랑과 양육은 남성과는 달리 사랑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된다. 여성이 유달리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나 사랑에 모든 심리적인 에너지를 집중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여성의 사랑의 본성은 이성(異性)과 연애할 때나 사랑할 때 더 많이 작용된다.

"청명한 가을날, 낙엽을 밝으며 걷던 한 남자가, 혹은 한 여인이 무언가 가슴을 헤집고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공연히 마음이 산란하여 일이 손에 안 잡힐 때, 그래서 내가 왜 이런가 자문하게 될 때, 혹은 반대로 뜨거운 열정과 함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감흥이 일 때, 마음에도 없는 생각들이 본의 아니게 꼬리를 물고 일어날 때, 혹은 누군가가 못 견디게 그리워질 때, 그 또는 그녀는 무의식의 과정이 내적 객체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양육은 일단은 아이를 잉태하여 출산하고 기르는 특성에서 이해된다. 여성이 아이를 보살피고 기르는 양육은 정확하게는 모성적인 특성이지만 이는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만이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런 양육의 특성 때문에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역할이 더 크게 나타난다.

좋은 양육의 특성을 가진 어머니에게서 자라나는 아동은 그만큼 건강한 정신이나 인격을 가질 수 있는 점이다. 이런 점은 편부(偏父)슬하에서 자란 아동과 편모(偏母)슬하에서 자라난 아동의 인격적 특성이 확연하게 다른 경우와도 같다.

그런가 하면 양육의 특성은 정신에서도 부족한 것을 다시 보완하여 성장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양육은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며 넘어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성장하게 만드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정신이나 심리에서 이런 양육의 특성이 발휘되면 약해진 정신적 특성이 채워짐으로 인해 보완되거나 보강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5) 수용과 포용에 작용하는 아니마

수용은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특성이고, 포용은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어떤 것을 잘 받아들이고 감싸주는 특성이 있다. 이런 특성은 남성이 잘잘못을 따지어 그것을 구분하거나 잘라버리는 것, 그리고 내치는 것과는 대립된다. 남성이 논리적으로 다른 것을 구분하고 정확하게 따지는 것에 비하여 여성은 웬만해서는 그것을 내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를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남성과는 달리 수용과 포용이 가능한 것은 다른 것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여성이 수용적이거나 포용적일 때는 "매우 여성스럽다"거나 참으로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여성이 수용적이거나 포용적이지 못 할 때 "여성답지 않다"고 말하게 된다.

여성의 수용과 포용의 특성은 여성의 모성애적인 특성에서 이해된다. 어려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것일까? 인간은 어릴 때 어머니의 이런 품에서 자라나서일까? 인간은 본성적으로 어머니의 품을 그리는 특성이 중단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어머니가 모든 잘못을 감싸주는 경험을 했고, 성장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저 감싸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융은 술을 많이 마시는 태도를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한다. 어린 시절에 많은 잘못을 해놓고서도 어머니의 품에 안기면 모든 것이 덮어지거나 용서되었던 것은 자신의 잘못을 문제 삼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이 모든 것을 감싸주고 무마해 주는 수단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대화가 통하지 않을수록 그 옛날에 넓은 아량으로 포옹해주거나 무마해주던 어머니의 품을 찾는 심정으로 술을 더 많이 찾는 것이다.

아니마의 특성은 여성이 갖는 특성이면서도 어머니가 갖는 모성애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를 여성적인 것으로 또 어떤 점을 모성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구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서로 상당히 중첩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그리고 그 특성적 구분에 따라 개념의 명확성이 더 드러날 수 있다는 점으로만 이해하면 될 것이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내적인 인격으로서 아니마에 대하여 기술했다. 앞 장에서 우리는 원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모든 것에 원래의 모델이 있는 것처럼 정신에도 원형이 있는데, 이 원형은 근본적으로 정신을 이루는 바탕으로서 특성을 갖는다. 정신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본래 있는 특성으로 내재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여성적인 특성이 내부적으로는 남성에게서 정신의 특성을 이루면서도 외적으로는 인격으로 표출되는 것이 된다. 그 중에서 아니마는 여성의 특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건이다. 어떤 남성도 여성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을 정도로 완전히 남성적이기 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