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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나요?”

기독일보 이대웅 기자

입력 Jul 24, 2017 05:2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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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찬 목사, ‘기독교인의 소유’에 대한 이야기 전해

에쿠스. ⓒ손성찬 목사 페이스북

에쿠스. ⓒ손성찬 목사 페이스북

손성찬 목사(람원교회)가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인의 소유'에 대한 묵상을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나눴다.

손 목사는 "소그룹 모임을 하다 '소유'라는 주제가 나오면, 일부러 '목사는 에쿠스 타도 되는가?' 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에쿠스가 갖고 있는 함의가 있지 않나, 부유함의 상징이랄까"라며 "게다가 '목사'라는 직분의 함의도 있다. 목회자의 윤리, 소유에 대한 신앙적 답변과 철학에 대한 문제 등이 뒤섞여 있다. 결국 '목사가 과연 그런 부유함을 누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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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젊을수록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하더라. 일부 부유함을 추구하는 목사들의 일탈로 인해 이런 부정적 뉘앙스는 더욱 강해졌다"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배운 신학교에서는 '괜찮다'고 답한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무슨 이사회 같은 것 하면 검정색 에쿠스가 학교 주차장에 쫙 깔리더라"고 했다.

차에 관한 또 하나의 기억으로, 신학교 시절 한 교수가 타고 다닌 구형 '링컨 컨티넨탈'에 대해 "학생들 사이에서 '과연 저런 차를 타도 되는 것인가?'라는 주제가 나름 화두에 오르곤 했다. 물론 미국에서 오래 머물다 오셨고, 가족들이 여전히 미국에 계시고 꽤 돈을 잘 벌고 계셨으며, 미국에서 타던 차를 그대로 들여와 타고 있다는 팩트가 제공되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부정적 결론을 내렸다"며 "그분이 교수 이전에 목사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링컨 논쟁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할 일 없는 대화처럼 여겨진다. 그것이 과연 비판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일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살아온 맥락과 환경 등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채, 내 기준을 일방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진지한 의미로 목회 철학을 고민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돌아보니 사실 부러워서 그랬던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까"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가 물욕이 없다면 사실 누군가의 에쿠스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관심이 없으니까"라며 "애견가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나가던 개가 세인트버나드이던, 치와와이던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손성찬 목사는 "한때 청빈하셨던 예수의 행적, 그리고 빈부격차로 발생되는 사회의 혼란한 현실과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돌아보며, 돈과 소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하자라는 확고한 결단과 고백이 있었고 그리 살려고 노력했다"며 "그러나 돌아보면 지금까지 단지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눈 앞에 주어지지 않아서 였을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손 목사는 "소유를 부정적으로 보며 천착하지 않기 위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나름 만족할 정도로 물욕이 없어졌다 여겼는데, 어느날 확인했다. 다른 것은 다 줄였는데, 책은 늘어가고 있더라"며 "좋은 것이지만, 그 안에 지적 과시욕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놈의 성도제압용 책들, 이사가며 700여권 정도 정리했지만, 이미 3년 사이에 그만큼 채워졌다"고 전했다.

그는 "깨끗한 부자를 제창하는 '청부론', 뭔가 있어보이나 그리 성경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더 성경적으로 보이는 정반대의 '청빈론'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결국 예수 코스프레로 끝난다"며 "소유욕은 일부 초인같은 이들을 제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 쉬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아직 강렬히 원하는 것을 만나보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불의하게 모은 것이 아님에도 타인의 소유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미 스스로의 욕구가 투영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손 목사는 "욕구와 욕망은 구분해야 한다. 욕구는 '절제와 교정'이 필요한 것이지, '압제와 부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스스로 느끼는 결핍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욕망은 다르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나아가 타인의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변질된다. 혹은 그 정도의 배알도 없다면, 타인을 정죄함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느날 누가 주는 선물 하나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내 기준을 넘어선다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제 모습이 참 가엽더라. 또 어떤 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비싼 것을 거절했다며 자랑스레 얘기하지만, 어떤 분들은 그런 제안조차 받을 수 없는 분들 가운데서 묵묵히 자리매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결국 소유에 대한 부정도 자기 의가 될 수 있다. 차라리 이런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되,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소유욕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더 강렬해질 때, 자연스레 포기하고 희생하게 되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손성찬 목사는 "구조적 악이나 기득권이 내뿜는 악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더 크게 보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한다. 다만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제발 좀 너그럽게 접근하자"며 "'에쿠스'라는 특정 물화의 소유와 사용에 대한 상황윤리를 절대적으로 해석하면 늘 피곤한 것은 자신의 머리통과 기분이다. 나중엔 주변 사람들마저 피곤하게 할 뿐이다. 평범한 우리 주변에 뭐 그리 잘나고 특별한 인생들이 있다고, 그리 쥐 잡듯이 잡아대는가? 사치 비용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마시는 스타벅스도 누군가에겐 사치"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과연 목사는 에쿠스를 타도 됩니까?' 원론적으로는 타는 것도, 안 타는 것도 가하지만, 개인적으로 안 타는게 지혜롭다 생각한다"며 "하워드 스나이더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에서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동시에 가난한 자에게 등을 돌린다는 점이며, 새로 확보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태도가 변한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말한다.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가급적 검소한 차, 혹시 가능하다면 친환경적인 차를 이용하는게 지혜로워 보인다"고 권면했다.

또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덕 차원의 권고인 상황윤리를 절대윤리로 환원시킨 시점부터, 우리는 신(新)바리새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봉고도 겨우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며 "나아가 만인제사장론을 강력하게 설파하면서 목사에게는 다른 잣대를 강력히 갖다대는 지독한 언발란스 상황을 자초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윤리학의 기본은 '내로남불은 불가하다' 아닌가? 결국 이 모든 논의는 목사만이 아닌 그리스도인 모두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글 전문.

짐을 가득 실은 한 교회 봉고 모습. ⓒ손성찬 목사 페이스북
 짐을 가득 실은 한 교회 봉고 모습. ⓒ손성찬 목사 페이스북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는가?

예전에 들었던 어떤 목사님의 강의. 주제는 '설교'였습니다. 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라 실물로 보며 강의를 듣는다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뻔한 이야기라도 연륜의 지혜로부터 나온 스쳐지나가는 단 한 문장이라도 얻어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뜬금없이 '부가티 베이런'이라는 값비싼 외제차 끌고 다니시는 얘기를 하시며, 설교 잘하면 이런 차도 누가 사준다는 동기부여를 하시네요. 많이 불편합디다. 너무 세속적으로 들려서도 그러하지만, 근 30년 목회하시고도 교회 봉고나 끌고 다니시는 제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에쿠스 타도 되는가?' 소그룹 모임을 하다 '소유'라는 주제가 나오면 일부러 이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에쿠스가 갖고 있는 함의가 있지 않습니까? 부유함의 상징이랄까요? 게다가 '목사'라는 직분의 함의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윤리, 소유에 대한 신앙적 답변과 철학에 대한 문제가 뒤섞여 있지요.

결국 '목사가 과연 그런 부유함을 누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젊을수록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하더군요. 일부 부유함을 추구하는 목사들의 일탈로 인해 이런 부정적 뉘앙스는 더욱 강해졌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배운 신학교에서는 '괜찮다'라고 답한다는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무슨 이사회 같은 것 하면 검정색 에쿠스가 학교 주차장에 쫙 깔리거든요. 뭘 피곤하게 기독교 윤리를 따집니까? 그냥 그 모습이 답입니다.

그런데 차에 관련 된 또 하나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한 교수님께서 구형 '링컨 컨티넨탈'을 타고 다니셨습니다. 부가티 베이런에는 쨉(?)도 안되지만, 당시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외제차였습니다.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과연 저런 차를 타도 되는 것인가?'라는 주제가 나름 화두에 오르곤 했지요. 물론 미국에서 오래 머물다 오셨고, 가족분이 여전히 미국에 계시며 꽤 돈을 잘 벌고 계셨으며, 미국에서 타던 차를 그대로 들여와 타고 있다는 팩트가 제공되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부정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분이 교수 이전에 목사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웃긴건 정작 본인은 모르셨을 거라는 사실이지요. 참 우리가 거시기해요. 저도 그 뒷담화의 현장들에 있었습니다. '도그마'의 본의는 개나 줘버린 채, 마치 '도그마귀'처럼 물어 뜯기만하던 시절이었지요. 실상 바른 믿음과 관계없는 내적 기준에 의한 부역자 청산이었습니다. 뭔가 배부름은 뱃대지에 기름낀 신앙없는 부르주아들의 모습처럼 보였기에, 저 역시 그 교수님을 마음속으로 신랄하게 폄하하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링컨 논쟁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할 일 없는 대화처럼 여겨집니다. 그것이 과연 비판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일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온 맥락과 환경 등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채, 내 기준을 일방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진지한 의미로 목회 철학을 고민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돌아보니 사실 부러워서 그랬던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까요? 자기가 물욕이 없다면 사실 누군가의 에쿠스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관심이 없으니까요. 애견가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나가던 개가 세인트버나드이던, 치와와이던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청빈하셨던 예수의 행적. 그리고 빈부격차로 발생되는 사회의 혼란한 현실과,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돌아보며, 돈과 소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하자라는 확고한 결단과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리 살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나 돌아보면 지금까지 단지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눈앞에 주어지지 않아서 였을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유를 부정적으로 보며 천착하지 않기 위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나름 만족할 정도로 물욕이 없어졌다 여겼는데, 어느날 확인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줄였는데, 책은 늘어가고 있더군요. 좋은 것이지만, 그 안에 지적 과시욕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놈의 성도제압용 책들. 이사가며 700여권 정도 정리했지만, 이미 3년 사이에 그만큼 채워졌습니다. 또한 애들을 낳고 나니까, 전혀 관심 없던 주거공간에 대한 욕심도 생깁니다. 좀 더 넓고,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고 싶어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깨끗한 부자를 제창하는 '청부론'. 뭔가 있어보이나, 그리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더 성경적으로 보이는 정반대의 '청빈론'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결국 예수 코스프레로 끝납니다. 소유욕은 일부 초인같은 이들을 제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 쉬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아직 강렬히 원하는 것을 만나보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더 농후하지요. 불의하게 모은 것이 아님에도 타인의 소유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미 스스로의 욕구가 투영된 것입니다.

욕구와 욕망은 구분해야 합니다. 욕구는 '절제와 교정'이 필요한 것이지 '압제와 부정'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느끼는 결핍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욕망은 다릅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나아가 타인의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변질됩니다. 혹은 그 정도의 배알도 없다면, 타인을 정죄함으로 대리만족을 느끼지요.

어느날 누가 주는 선물 하나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내 기준을 넘어선다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제 모습이 참 가엽더군요. 또 어떤 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비싼 것을 거절했다며 자랑스레 얘기하지만, 어떤 분들은 그런 제안조차 받을 수 없는 분들 가운데서 묵묵히 자리매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소유에 대한 부정도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이런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되, 성령의 인도하심아래 소유욕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더 강렬해질 때, 자연스레 포기하고 희생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구조적 악이나 기득권이 내뿜는 악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더 크게 보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합니다. 다만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발 좀 너그럽게 접근합시다. 예전에 한 진보정당 총의 때, 유시민 씨가 고작 2,000짜리 아메리카노 마셨다고 부르주아라고 비난했던 사건이 떠오르네요.

'에쿠스'라는 특정 물화 소유와 사용에 대한 상황윤리를 절대적으로 해석하면 늘 피곤한 것은 자신의 머리통과 기분입니다. 나중엔 주변 사람들마저 피곤하게 하지요. 평범한 우리 주변에 뭐 그리 잘나고 특별한 인생들이 있다고, 그리 쥐 잡듯이 잡아댑니까? 사치비용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가 마시는 스타벅스도 누군가에겐 사치지요.

그래서 '과연 목사는 에쿠스를 타도 됩니까?' 원론적으로는 타는 것도, 안 타는 것도 가하지만, 개인적으로 안 타는게 지혜롭다 생각합니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동시에 가난한 자에게 등을 돌린다는 점이며, 새로 확보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태도가 변한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가급적 검소한 차, 혹시 가능하다면 친환경적인 차를 이용하는게 지혜로워 보입니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덕 차원의 권고인 상황윤리를 절대윤리로 환원시킨 시점부터 우리는 신(新)바리새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봉고도 겨우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만인제사장론을 강력하게 설파하면서 목사에게는 다른 잣대를 강력히 갖다대는 지독한 언발란스 상황을 자초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윤리학의 기본이 다른 게 아닙니다. '내로남불은 불가하다' 아닙니까? 결국 이 모든 논의는 목사만이 아닌 그리스도인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묘수가 있습니다. 제게 에쿠스 EQ900 리무진 한 대 주시고 시험해 보세요. 물론 절대 안탑니다. 소유에 자유해서가 아니라, 소유에 천착하는 제 모습을 알기에 피할 것입니다. 성도 중에 어려운 인생들이 있기에, 혹은 그것을 절대윤리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실족할까봐 안 탑니다. 실족은 너무 고상한 표현이네요. 걍 '눈치'봐서 안탑니다.

예전에는 청교도적 고결함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는 예수 코스프레 때문에 안탔겠지만, 이젠 유지비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못 탑니다. 차라리 팔아서 현금으로 쓰렵니다. 고결한 의미부여하며 더 이상은 구라 못 치겠습니다. 결론은 그저 복음에 빚진 자이기에, 누군가 그 복음을 오해하기 싫어 지혜롭게 행동하렵니다. 같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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