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Photo : )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종교개혁은 한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유럽을 바꾸려는 신앙인들의 순교적 운동이었다.

지난 오백 여년이 흐르는 동안에, 서구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개신교회"가 탄생했고, 전 세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에, 전 세계적으로 4백만 개의 교회가 있고, 3만 8천개의 교단들이 있어서 다양한 사역과 임무를 추진하고 있다.

 
때로는 너무나 개신교들이 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 감리교, 침례교, 메노나이트파 등 나뉘어져 있어서 통제도 안되고 통일성도 없다고 비난하거나 불편해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만큼 개신교회에서 다양하게 주장하는 진리의 근거는 사실상 단순하게 성경의 최종 권위라는 공통분모에 근거하고 있다. 

중세시대에서 인문주의 학문의 시대를 거쳐서 종교개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의 스콜라주의가 뒤섞여서 핵심 논쟁으로 등장하였다. 종교개혁은 스콜라주의와 서로 기독교 진리에 대한 신학적 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의 핵심 교리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함께, 칭의 교리와 대속의 교리, 구원론과 교회론을 "오직 성경으로만" (sola scriptura), "오직 은총으로만"(sola gratia), "오직 믿음으로만" (sola fide)만에 집약해서 다시 세워나갔다. 그리고 차츰 종교개혁의 신학사상이 확실하게 정착되면서, "오직 그리스도로만"(solus Christus)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soli Deo gloria)라는 조항들이 더욱 강조되어졌다.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도 이들 두가지 강조가 들어있는 것은 분명하다.

1. 종교개혁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정치투쟁이나 사회적 혁명이 아니라 성경적인 신학사상을 펴낸 것이다. 루터가 처음에 논쟁을 했던 면죄부와 칭의 교리에 관한 것들은 성경 원문을 연구하여 대학과 교회 곳곳에서 강의하면서 기독교 진리체계로 제기한 것들이다. 중세말기에는 스콜라주의와 기독교 인문주의가 겹쳐져서 교회와 대학에서 지성사회를 이끌고 있었는데, 여기에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적인 신학사상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기독교 진리의 최종 근거로 성경의 최고 권위(sola scriptura)를 강조하였다. 16세기는 여러 사상들과 운동들이 복합적으로 중첩되던 시기였는데, 중세 말기 스콜라주의와 르네상스 인문주의, 수도원 중심의 금욕주의, 대학의 발전으로 인한 지성적 학문운동, 교황의 권위에 대립하는 민족적인 정치의식 등이 긴장 속에서 상호관련을 맺고 있었다. 혼돈의 시대에 돌파구를 열었던 종교개혁자들이 새롭게 제기한 기독교 신학사상의 변화는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적 신학사상이 사회 전체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다. 개혁주의자들에 제시한 성경적 신학사상이 유럽 사회를 전체적으로 바꾸어 놓게 되었다.

지금도 세계 기독교 교회에서 열심히 증거하고, 신학을 연구하고 배우는 것들은 모두 다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사상에 연계되어져 있다. 현대 기독교 신자들에게 중요한 진리로 각인되어지고, 가슴에 되새기는 것들은 모두 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에서 터득한 것을 계승한 것이다.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운동이라 하더라도, 결코 진공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교회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유산과 교훈들은 모두 다 성경을 터득하고 배운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신학사상, 교리적 가르침들, 중심적인 교훈들은 모두 다 성경에 근거한 토론과 탐구에 근거한 것임에 주목해야만 한다.

종교개혁의 심장에 있었던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 이라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겨야만 할 때이다.

먼저는 인문주의 언어학자들이 성경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 스콜라주의와 논쟁을 시작하였고, 이것을 계승한 종교개혁자들이 기독교 신학을 새롭게 제시했다.

인문주의자들은 "근본으로 돌아가라"(ad fontes)라는 핵심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헬라어 성경본문의 정확한 번역에 집중하였다가, 점차 그 의미와 해석으로 확산하였다. 스위스 연방에 속한 자치주에서는 츠빙글리와 불링거가 인문주의 사상을 계승하여, 성경적인 제도와 윤리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하였다. 스위스 동맹이 강화되면서, 쮜리히에서 베른을 거쳐서 마침내 제네바에서 칼빈이 성취했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도시전체를 체계적으로 조직화하고, 교회제도와 예배를 크게 변화시켰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복음을 재발견하여, 당시 로마 가톨릭의 스콜라주의 신학의 오류를 시정하고, 기독교 교리들의 회복을 위한 노력들이었다.

루터는 1529년에  「대교리 문답서」에 십계명 강해, 주기도문 해설, 사도신경에 대한 설명을 담아서 출간하였다.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작심한 결과였다.

개혁자들은 기본적으로 가장 중심적인 교리의 본질에 대해 왜곡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고, 신학적인 주제들을 상세히 밝히고자 노력하면서 성경의 최고 권위에 의한 것임을 확고하게 내세웠고, 로마 교황의 선언이나 종교회의를 통해서 발표한 것들에 대해서는 심각한 오류들을 지적하였다.

정치적 혁명이나 사회개혁 운동이 아니라, 신학사상을 근간으로 기독교 신앙을 갱신하려던 운동이었다.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회복하면서, 사회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에서도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인정한다고 말하였지만, 정작 그들은 교황과 종교회의에 더 의존하였다. 인간의 권위를 더 높이고 있었기에, 루터와 칼빈은 교황이야말로 거짓 교사라고 정면에서 비판하였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 6:3,4)라고 바울 사도는 경고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이 신학적인 교리문제에 집중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를 파악해야만 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신앙과 구원에 관한 교훈들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은총과 협력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고,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해야만 하고, 선행으로 표현되야만 칭의를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다가 각 성도 자신들의 선행을 더해야만 하는데, 마리아와 성자들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마땅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도, 결국 로마 가톨릭에서는 구원이란 행위를 통해서 자격을 갖춘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선행과 공로를 쌓은 인간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신학사상은 모두 다 성경에서 나온 것들이다. 루터는 성경의 권위와 명료성과 충분성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의 전통이나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벗어나서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려 시도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인문주의에서 토대를 닦은 후에, 라틴어 번역성경이 아니라, 헬라어와 히브리어 원어성경을 파고 들어가서 새로운 신학사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