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구현한 살해 장소 현황. ⓒTJWG 제공
지도로 구현한 살해 장소 현황. ⓒTJWG 제공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을 살해한 장소가 최소 333곳, 집단 매장지와 시신 화장터가 47곳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 의회 기금 지원를 받는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ransitional Justice Working Group, TJWG)'에서 탈북민 375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실시해 '북한 반인도범죄 매핑 프로젝트'를 실시한 결과를 이 같이 발표했다.

이는 북한 내 반인도범죄 피해 사망자 집단매장 추정지와 살해 장소, 관련 문서증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조사하는 프로젝트이다.

'매핑 프로젝트'는 집단매장 추정지와 살해 장소, 관련 문서 등 인권유린 증거가 있을 만한 위치를 파악하고, 고유한 위·경도 좌표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방법은 375명의 탈북민을 인터뷰한 뒤, 지난 2년 동안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이용해 인권범죄 현장 위치를 디지털 지도로 구현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 봄,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 지도부와 인권범죄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국제사회가 행동할 것을 촉구한 것에 부응하면서 시작됐다. TJWG는 인권유린을 면밀하게 기록하는 '위치 기반 데이터(location-based data)'를 구축, 향후 북한 정권 지도부에 대한 책임규명 조치를 뒷받침하고자 했다.

또 인권침해 유형이나 인물정보를 중심으로 '사건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온 시민사회 인권단체와 정부조직이 여러 곳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 '위치 기반' 조사와 기록활동으로 현존하는 다른 북한인권 조사기록들을 보완하고자 기획됐다.

TJWG 측은 "시각화되는 지도와 관련 증언은 수십 년에 걸쳐 계속된 인권유린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만한 그림을 제공한다"며 "조사 초기단계임에도 몇 가지 경향이 보이기도 했다. 매장지들이 대개 주거지역과 떨어진 산악지역에 분포하지만, 감옥 주변이나 일반묘지 구역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또 "살해 장소는 강둑, 시장, 교량 근처, 구류 및 수감시설, 야외경기장에 주로 위치했다"며 "지금은 현장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수사에 입각한 분석은 어렵지만, 이 조사는 인권범죄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중요한 첫 단계"라고 밝혔다.

가장 많이 파악된 유형은 총살이 벌어진 곳으로, 375명의 탈북민이 위성지도를 이용해 북한 전역에 걸쳐 290곳을 지목했다. 다만 여러 사람이 같은 곳을 지목했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 실제 같은 곳이거나 매우 근접하여 같은 곳으로 간주될 수 있는 곳인지 판별하는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매장지나 시체처리장소로 지목된 곳들은 이러한 위치 묶기 작업을 완료한 결과이다.

1990년대에는 교수형이 종종 집행되다 국제사회의 비판과 인권개선 압력이 고조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거의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로 입증됐다. 조사에서 교수형 시기와 위치정보가 함께 확보된 총 30건 중 2005년 이후의 교수형은 한 건(2012년)에 불과했다. 한국 일부 진보좌파의 주장과 달리,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노력이 단순 '내정간섭'이 아닌 '실질적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집단매장 추정지와 시체 소각장 등 시신 처리장소로 파악된 47곳은 관리소나 교화소 같은 수감시설 밖 근처나, 민가로부터 떨어진 곳들이었다. 몇몇 증언자는 한 구덩이에 10-15명 정도의 시체가 집단 매장됐다며 위치를 지목하기도 했다. 파악된 매장 추정지로부터 1-4km 반경 이내에 수십 회 이상 살해 장소들이 함께 지목되는 경우들도 더러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매장지와 살해장소들 대부분은 함경북도에 위치하는데, 이는 인터뷰한 탈북민 중 58.9%(221명)가 이 지역 출신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 단계에서는 각 도별 인터뷰 참여자 수가 늘수록 추정 매장지와 시체 처리장소, 살해장소들도 대체로 늘어났지만, 살해와 암매장이 몇몇 지방에 편중된 것인지, 지역별 차이가 별로 없는지를 알려면 더 많은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요구된다.

탈북민들과의 인터뷰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탈북민 272명 중 79.41%가 피해사망자 유해 발굴이 필요하다 응답했다. 발굴 지지 이유는 "가해자 조사재판에 도움될 증거이기 때문에, 진상을 밝히기 위해, 유가족을 돕고 피해사망자를 추모하기 위해" 순이었다.

북한에 '전환기 도래'시 유해 발굴과 경제기반시설 건설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약 80%가 유해 발굴을 선택, 탈북민들은 개발보다 인권을 중시함을 알 수 있었다.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에 대해서는 94.8%가 강하게 선호했다. 성별이나 피해 경험, 남한 정착 후 거주기간에 따른 차이도 거의 없었다. 다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선호도가 다소 증가했으며, 70대 이상에서는 책임규명 선호 비율이 10-20대보다 14% 이상 높았다.

가해자들에게 행할 조치에 대에서는, 처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또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구하는 회복적 조치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죄를 사면하거나 용서하자는 응답은 낮았다.

피해자들의 배상 필요성에 대해서도 82%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입장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높아졌고, 북한에서 폭력 피해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 높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