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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칼럼] 무신론자는 과연 영리한 사람들인가?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l 16, 2017 10:14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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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기독교는 복음, 즉 사람들에게 전하는 좋은 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뉴스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뉴스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번에 무신론이 얼마나 증명하기 어려운 이론인지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기독교인들이 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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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로마서 1장1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그리고 다음 절에서 그는 "그(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유를 첫째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내재해 있으며, 둘째로 자연과 우주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두 가지 중에서 우리 안에 보여 주신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인생의 종교 본능 
  첫째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알 만한 능력은 인간의 종교심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현저한 것은 사람에게는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금수 사회에는 종교가 없습니다. 문명한 사회에도 교회가 있고, 야만 사회에도 신당이 있습니다. 동양에도 종교가 있고, 서양에도 종교가 있으며, 아프리카에도 종교가 있습니다. 또한 현대에도 종교가 있고, 옛날에도 종교가 있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어느 사회나 문화 가운데 종교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사는 사람들도 흔히 위급
한 일을 당하게 도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저는 전에 믿지 않는 형제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몇 해 전 38선을 몰래 넘어 오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괴뢰군에 억지로 붙들려 갔다가 석방되어 나온 애국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괴뢰군에게 붙잡혀서 북쪽으로 끌려가다가 삼각산 골짜기에 숨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유엔군 비행기들이 편대를 지어와서 폭격을 하고 기관총을 쏘아댔다고 합니다. 그 청년이 나중에 보니까 공산당들과 정치보위부 사람들이 모두 솔포기 아래 엎드려서 "하나님, 하나님"하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위급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류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고칠 수 없는 종교라는 병에 걸려 있다."

  또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본능이 있는데, 본능이 있으면 반드시 그 본능을 만족시킬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는 먹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먹는 본능을 만족시킬 음식물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사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교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성에 대한 본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본능을 만족시킬 남성과 여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능이 있으면 반드시 그 본능을 만족시킬 대상이 있습니다. 사실 그 대상이 있기 때문에 본능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빛이 있기 때문에 우리 눈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없으면 우리 눈은 아무 쓸모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또 사람의 육체에는 여러 가지 감각 기관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감각 기관이 감지할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코가 있으면, 그 코가 감지할 냄새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눈이 있으면 눈이 감지할 빛과 대상이 있습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깊은 굴속에 연못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연못에 사는 고기는 눈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캄캄한데 사는 고기에게 눈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각 기관이 있는 것은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니 눈이 생겼고 ,소리가 있어서 귀가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종교적 동물이요, 종교성이 있는 것도 그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숭배하려고 하고, 그 대상을 동경하는 마음은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킬 대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 속에 종교성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봄에 풀이 위로 자랍니까? 그것은 위에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의 마음이 높은 것을 앙망하고 동경합니까? 그것은 위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플라톤(Plato)라는 철학자는 "무신론은 한 질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를 일종의 환자로 간주했습니다.


2. 인간의 도덕성 
  둘째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알 만한 능력은 우리의 도덕으로 나타납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Kant)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이러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고 사람의 속에는 도덕적 의식이 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사람들 안에는 양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 안에는 이러한 양심이 존재하여,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이 선한 일인지, 아니면 악 한 일인지를 분별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때는 이 양심이 마비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양심이 완전하게 마비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어느 한 구석에서 선악을 분별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할 때는 마음이 기쁘고, 악한 일을 하면 얼굴이 경직되고 불안해 집니다. 양심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잘못하는 사람은 책망합니다. 물론 인간의 도덕성을 부인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양심을 여러 가지로 설명해 보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양심은 한 종족의 공통된 유전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양심이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려고 애씁니다. 

  물론 양심 가운데 후천적인 요소가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 안에는 분명히 선천적 요소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도덕적인 법칙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바울은 "양심이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말합니다(롬 2:12-15). 다시 말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이미 그 안에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연계에 자연법칙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은 이 자연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에게도 도덕적인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도덕적인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자연 법칙과 도덕적 법칙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물질은 시키지 않아도 자연법칙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 자유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양심을 부여하셨습니다. 인간은 이 양심의 법이 옳다고 하는 것을 따라 살 때에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양심의 법이 악하다고 하는 일을 하면 고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든지 다 새겨져 있습니다.

   이 골짜기를 파도 물이 나오고, 저 골짜기를 파도 물이 나오면 그 밑에 물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 이 사람의 마음 속에도 양심이 있고, 저 사람의 마음 속에도 양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인간의 배후에 그 양심을 심어 놓으신 큰 양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심은 우리 마음 속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음성을 볼 때에 그 음성을 발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는 양심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주 양심을 거역하기 때문에, 결국 양심이 불도장을 맞은 것처럼 되어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도 여전히 양심은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들(종교성, 도덕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우리는 앞에서 인간의 본성 안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들, 즉 종교심과 양심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뿐 아니라, 밖에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3. 우주의 원인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만드신 만물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이 말은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간단히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첫째로 '인과의 법칙'의 견지에서 이 우주를 한번 봅시다. 우리는 다 인과의 법칙을 믿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세상은 심는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과의 법칙으로 인해 세상에는 과학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인과의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과학의 법칙들은 성립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오게 한 원인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우리가 보는 거대한 우주도 이 우주를 존재하게 만든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를 있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원인이 하나님이라고 결론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정교하고 위대한 우주를 있게 할 수 있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데로 이미 모세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는 우주가 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움직임을 처음 시작한 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진리를 부인한다면 우주는 본래부터 존재했으며, 그대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가 영원하다. 우주 자체가 영원하다"는 주장은 현대에 와서 강하게 주장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과학적 연구 결과는 이 우주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의 대부분은 이 우주가 어느 순간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나 태양계, 또는 우주가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측정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라늄 원소의 방사량을 통해 측정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연령이 대략 33억 5천만년쯤 되었으며, 우주 전체의 연령은 약 백억 년으로 추산합니다. 물론 이러한 시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입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그들은 우주가 일정한 시각에 시작되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에는 여러 가지 생물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생물들이 이 지구에 영원 전부터 존재해 있었을까요? 지질학자들은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생물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영원 전부터 지구에 살았을까요? 지질학자들은 우리 인간들도 일정한 시기에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합니다. 우리 인간은 지구 상에 영원 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식물이나 동물도 영원 전부터 존재해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우주 자체가 영원 전부터 있어왔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3장 4절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우리도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과의 법칙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말하려고 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대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결과에 원인이 있다면, 하나님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도 원인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무지한 주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한 절대의 신입니다. 하나님의 배후에 다른 원인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수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무한대의 개념을 알 것입니다. 하나를 하나로 나누면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영으로 나누면 무한대라고 합니다. 이 무한대는 열을 영으로 나누거나, 만을 영으로 나누거나 모두 무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과의 법칙에서 볼 때에 우주가 반드시 지은 분이 있으며, 우주를 지으신 분은 무한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성경의 증거와 일치라고 있습니다.


4. 우주의 질서와 고안
  이 우주를 다른 면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우주의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주의 현상은 가만히 살펴보면 조직이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되는대로 널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서 그 별들을 자세히 보면 조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에도 이러한 조직이 있습니다. 태양계 안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성들이 있습니다. 이 행성들은 일정한 궤도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또한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성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궤도와 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항성계가 모여서 갤럭시(별무리)가 되고, 이런 것들이 모여서 대 우주를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별들도 아무리 크다고 해도 다 그 안에는 일정한 조직과 질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과 질서는 큰 물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을 분석하는 과학자들은 분자를 원자로 분석합니다. 그들에 의하면 원자 속을 보면 그 안에 양자가 있고, 그 양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전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마치 작은 우주와도 같습니다. 이러한 물체들은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까지 질서가 있습니다. 또, 보십시오. 이 우주의 모든 현상을 살펴보면 모든 것에 계획된 디자인이 있습니다. 꽃 한 송이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이러한 꽃은 놀라운 솜씨로 계획된 디자인 된 것입니다. 새 한 마리를 보아도 이러한 놀라운 디자인이 발견되며, 나비 한 마리의 구조와 색깔에도 미와 기능을 겸비한 놀라운 계획이 발견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동물과 식물은 서로 조화되어 서로 도우면서 설계되어 있습니다. 꽃이 있으면 그 곳에는 벌과 나비가 왔다 갔다 합니다. 벌과 나비가 왜 왕래합니까? 물론 그들은 꽃 속의 꿀을 빨기 위해서 왕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꽃이 아무 이유 없이 벌에게 꿀을 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꽃은 그들을 통해 꽃가루를 퍼뜨려서 씨를 맺게 만듭니다. 누가 꽃과 벌과 나비들이 이렇게 서로 돕고 살게 만들었습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동물이 쓸데 없다고 해서 내뱉은 탄산가스는 나무와 풀에는 매우 유익합니다. 반대로 나무와 풀이 내뿜는 산소는 동물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동물과 식물이 협동하며 살게 만들었을까요?

  이렇게 이 우주에는 계획된 섭리와 고안이 있습니다. 비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태평양에 가면 물이 많습니다. 햇빛에 내리쪼이면 남태평양의 물은 수증기로 변해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수증기는 공중에서 찬바람을 만나면 다시 비가 되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비는 여러 가지 작용을 합니다. 비는 먼저 공기를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비는 내려오면서 공기 속의 먼지를 모두 잡아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비가 온 후에 공기는 매우 신선합니다. 그리고 비는 땅을 깨끗하게 청소해 줍니다. 그러므로 비가 오래 안 오면 땅이 아주 더러워집니다. 또한 비는 사막에 떨어져서 풀과 곡식을 자라게 하고, 나무에 열매를 맺게 만듭니다. 땅을 깨끗이 씻은 빗물은 시내와 강물을 이루어 더러운 것들을 모두 씻어서 바다로 들어갑니다. 바닷물은 짭니다. 왜 바닷물이 짤까요? 그것은 더러운 모든 것을 소독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비로 공기와 땅을 청소하고, 풀과 곡식과 나무를 자라게 하기 위해서 끝임 없이 순환하게 합니다.

  전에 제가 제네바에 가보니, 거기 호수 옆에 꽃으로 시계를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 글자를 모두 꽃으로 만들고, 그 속에 기계를 묻었습니다. 큰 바늘이 돌아갑니다. 꽃 시계입니다. 만일 누가 이 꽃 시계를 보고 그것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하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꽃 시계가 그렇다면, 오묘하고 질서 정연한 대 우주가 우연히 생겼다는 주장하는 사람은 분명히 더 큰 정신병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우주에 대해 선택할 이론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우주가 어떻게 된 건지 "나는 모르겠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며, 다른 하나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그리고 우연히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Photo : ) 한경직 목사
(Photo : ) 한경직 목사

  시편 기자는 시편 19편 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시편 기자의 노래와 같이 하늘은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으며,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솜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를 보면서 과연 하나님은 계시며,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그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와 개인의 운명,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운명도 하나님께서 부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홀 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그 뜻을 행하는 자에게 수천 대까지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삼 사대까지 징계하실 것입니다. 우리 동양에도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어떠한 역경을 당해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전파하여 우리 민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출처:biblenar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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