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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깨졌다고, 다른 것을 깨뜨리지 말라

기독일보

입력 Jul 16, 2017 06:39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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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 목사의 호치민 단상] 깨진 마음을 고치는 방법

 

궁인 목사
궁인 목사

'이론타파'라는 설교 시리즈를 시작 했습니다. 벌써 5주 정도 설교했습니다. '이론타파'라는 말은 세상에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이론들을 깨뜨리고, 파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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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이란?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를 해명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설명한 것으로, 현재의 지식으로는 참되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침묵의 나선이론, 스톡홀름 증후군 등등이 그런 것입니다. 이런 이론들은 각 분야에서 검증되어 옳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런 이론에 적용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할 선언을 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의 이론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이 다르더라도 기죽지 마십시오.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론은 깨진 유리창 이론입니다. 미국 범죄심리학자 조지 켈링(Ceorge L. Kelling)의 말에 의하면, 범죄지대에 보닛을 열어놓은 차를 방치하였을 때 멀쩡한 차인 경우 범죄가 일어나지 않지만, 유리창 하나가 깨진 차의 경우 각종 범죄행위가 차량을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주변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쓰레기를 버려도 바로 청소하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쓰레기통이 있더라도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방치했다면, 사람들은 하나 둘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게 되고, 곧 그곳은 쓰레기장이 됩니다. 결국 깨진 유리장이 죄를 범해도 된다는 '사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창이 깨어질 때, 사단은 놓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죄악의 소굴로 만들어 버립니다.

보통 우리는 이럴 때 농담처럼 섭섭이, '서운이, 삐짐이가 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섭섭이는 사람들 마음에 섭섭함을 심어둡니다. 조금만 섭섭해도 그 섭섭함을 풀지 않고 붙들고 기억하고, 되새김질하게 만듭니다. 또 서운이는 서운한 게 많습니다.

삐짐이는 남들이 하는 말, 태도, 반응에 잘 삐집니다. 이 세 친구는 '자존심'이란 친구와 늘 함께 다닙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할 때마다 서운하고, 섭섭하고,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마태복음 12장 4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깨어진 마음의 창을 고치지 않으면, 깨어진 틈으로 온갖 종류의 사단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진 마음의 창을 고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그 방법을 알고 있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늘 마음이 깨어지고, 섭섭한 마음이 생길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갈렙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어떤 분들은 속으로 '갈렙이 무슨 마음이 깨어지는 삶을 살았어! 오히려 그는 나이를 극복하고 가나안을 점령한 위대한 사람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의 위대함은 나이를 극복한 데만 있지 않습니다. 가나안을 점령한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운명의 약점 속에서도, 늘 마음이 깨어지고 섭섭함이 찾아오는 환경에서도 하나님께 충성하였고 축복을 누렸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그가 어떤 운명의 약점을 가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고 축복을 누렸는지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갈렙의 삶을 통해 부서진 마음의 창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1. 깨진 파편을 온전히 치우고 원인을 용서해야 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접시나 유리컵을 깨뜨렸을 때 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은 아이들이 소리를 크게 내거나 호들갑을 떨지 못하게 합니다. 모두 그 자리에 가만 있으라고 하고 차분하게 만듭니다. 그리곤 누가 다친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한 사람만이 유리를 치웁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엄마 유리 깨뜨렸어, 아빠 엄마가 접시 깨뜨렸어' 라고 크게 소리지르면, 깨뜨린 사람은 더욱 놀라고 당황해서 급하게 유리 조각을 치우다 더 다치거나 손을 비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깨진 유리 조각이 두 번 상처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유리 조각도 차분하게 잘 치워야 하는 것처럼, 깨진 우리의 마음도 잘 치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 깨진 마음 때문에 다른 것들이 또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졌다고, 관계가 깨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졌다고, 믿음이 깨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졌다고, 소망이 깨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깨진 마음을 잘 치울까요? 
이것의 전문가인 갈렙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갈렙은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중 한 명이며 40년간 모세를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 정탐 후 살아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유일한 두 명 중 한명입니다. 믿음의 용사요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의 이름에는 재미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성경의 이름은 한 사람의 성품과 출신을 설명합니다. 가인에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이름이 뜻은 '허무하다'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한 에녹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동행하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기쁨을 주고 웃음을 주었던 귀한 아들 이삭의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이렇듯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에는 다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갈렙을 소개하면서 늘 이름 앞에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냥 여호수아라고 기록된 것에 비해 갈렙은 늘 아버지 여분네의 이름과 같이 나옵니다.

여호수아 14장 6-14절에서도 세 번이나 아버지 이름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성경은 갈렙의 아버지의 이름에 이렇게 집착할까요? 
그것은 바로 갈렙의 출신에 대해 설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분네의 아들이요 그니스 사람인 갈렙은 원래 유대 민족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니스족이라고 했습니다. 이 그니스족은 에돔의 후손입니다. 에돔은 두고 두고 이스라엘의 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은 민족이 에돔입니다. 왕후 에스더를 괴롭힌 하만이 에돔 사람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아기를 학살한 악명 높은 헤롯왕도 에돔 사람입니다. 이 정도면 갈렙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는 고사하고, 함께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여분네의 이름 뜻은 '돌아서다(TURN AWAY)'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갈렙의 아버지 여분네가 에돔을 떠나 이스라엘로 귀화한 에돔 사람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렙은 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원수의 자손으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갈렙의 이름입니다. 갈렙의 이름의 뜻은 개(bleK; 칼레브; 犬; dog)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를 신명기 23장에서는 부정한 짐승으로 묘사하고, 열왕기상 21장에서는 더럽고 천한 이방인을 칭할 때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가 욕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중동 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이 개라는 말이 얼마나 치욕적인 말이었으면, 골리앗은 다윗이 자신을 개라고 한 것에 격분해 싸움에 나섰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편견이 가득 묻어 있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쉽겠습니까!

여러분 욕이라고 밖에 할 수 있는 갈렙의 이름 속에는, 불평등과 차별의 삶이 숨어 있었습니다. 갈렙에게 삶은 놀림이고, 절망이요. 낙심이요,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양보해야 하고, 더 일해야 욕 안 먹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깨진 상처의 파편들이 믿음을 망가뜨리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민 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민 32: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신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라는 말씀과 같이 온전히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온전히 하나님을 따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사람들의 소리에 민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과의 문제로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문제가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개라고 놀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평가와 욕을 용서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가 바로 깨진 마음과 관계를 치유하는 비결이였습니다. 용서에 대해 오래 연구한 스탠포드 대학 프레드 러스킨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용서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삶이 허락하지 않을 때에도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삶이 나의 마음을 깨뜨려도 용서하십시오.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깨뜨려도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온전히 용서할 때, 나에게 행복이 다시 오고 축복이 주어집니다.

욥을 기억해 보십시오. 욥이 고난 중에 다시 회복되고 축복을 받은 것은 단순히 회개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이 친구들을 용서하고 기도할 때 주님은 다시 축복하였습니다. 여러분 나의 마음을 깨뜨리고, 나를 아프게 한 원인이 사람이든 환경이든 용서하십시오. 그 순간이 바로 축복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로 어떻게 해야 부서진 마음의 창을 고칠 수 있을까요?

2. 장래의 축복을 꿈꾸고 마음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R. 이안 시모어가 지은 <멘토>라는 책에는 호박벌 이야기가 나옵니다. 호박벌은 짜리몽땅하고 뚱뚱하게 생겼습니다. 몸 길이는 2.5cm 정도이고, 뚱뚱한 체형인데 날개는 무지무지 작다고 합니다.

곤충학자들은 공기역학적 이론상 날수 없는 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날기는커녕 이론상 공중에 뜨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그러나 모두의 말과 달리, 이 벌은 1초에 250번 날갯짓을 해서, 하루 평균 200km를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무엇이 과학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만든 것일까요? 오로지 '꿀'이라는 목표 때문입니다. 꿀을 향한 노력과 집중이 뚱뚱한 이 친구가 기적을 만들면서 엄청 날아다니도록 만든 것입니다.

호박벌이 자신의 부족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200km를 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집중하면 마음 가득한 고민과 염려, 두려움마저 잊을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깨어진 마음과 욕심과 욕망, 그리고 고민과 아픔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이 주신 축복의 말씀과 비전이 더욱 선명하게 될 것입니다. 갈렙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집중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에 집중하고 온전히 쫓아야 합니다. 갈렙이 가나안에 집중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비전에 집중하는 것이 축복을 이끌어 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에 집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여호수아 14장 6-14절을 보면, 생존시키시고, 강건하게 하시고, 능력 주시며, 평안의 축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선 10절을 보면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광야에서 죽어갔지만, 갈렙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축복은 무엇인가를 더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는 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건강을 잃지 않는 것, 가족을 잃지 않는 것, 명예를 잃지 않는 것이 축복의 시작인 것입니다. 여전히 움직일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전히 생존하여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갈렙의 축복은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젊은이들과 함께 전쟁에 임할 수 있을 정도로 갈렙은 강건하였습니다. 그냥 생존한 것이 아닙니다. 비전을 바라보는 젊음이 그에게 여전히 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연설 중에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은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피부를 주름지게 할 뿐이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가슴에 새기고 자신이 누릴 그 땅을 매일매일 마음에 그렸습니다. 목표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2절에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결단합니다. 나이 85세 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확신 가운데 사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그리고 달려가십시오. 주님은 그런 확신에 응답하십니다. 

15절입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결국 갈렙은 가나안 땅을 유산으로 얻었고, 평화의 축복을 얻습니다. 여러분 갈렙의 축복은 깨진 마음의 창을 고치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질 축복을 늘 마음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에 지배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에 적용받는 사람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크게 이룩할 사람입니다.

쩨쩨하게 과거 상처에 낙심하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치졸하게 마음에 불편한 일에 사로잡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큰 그림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리십시오. 그때 당신에게 생존의 축복, 강건의 충복, 능력의 충복, 평안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부서진 마음의 창을 고칠 수 있을까요?

3. 작은 일을 더 소중히 여기고 성실히 충성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14장 7-8절을 같이 보기 원합니다.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7절에서는 성실한 마음, 8절에서는 충성하리라는 표현으로 갈렙의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충성을 영어 성경 NIV에서는 'wholeheartedly'라고 해놓았습니다. 모든 마음을 다 쏟는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큰 일, 작은 일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성실히 충성할 때 축복이 시작됩니다. 서두에 깨진 유리창 이론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작은 일에 집중해서 범죄를 극복한 유명한 일이 있습니다.

1990년대 뉴욕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하는 최악의 범죄소굴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뉴욕에서 지하철 타는 것은 위험한 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뉴욕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는 연일 계속 되는 범죄 문제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범죄를 완전히 뿌리뽑겠다며 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경찰 병력을 대폭 늘렸지만 강력범죄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우범 지역에 CCTV도 설치하였지만, 예상과 달리 범죄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산만 낭비하고 정책마다 실패하는 무능한 시장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가 절망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것이 낙서를 지우는 것이였습니다.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데 한가롭게 청소나 하고 있냐며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졌고, 급기야 시민들은 '범죄와의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낙서와의 전쟁'을 하냐며 시장의 사임을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 후 중범죄가 50% 이상 줄었고,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을 때는 중범죄가 75% 줄어든 것입니다.

도대체 왜, 낙서를 지웠을 뿐인데 범죄가 줄어든 것일까요? 
불법으로 그려진 낙서가 바로 깨진 유리창처럼 범죄를 해도 된다는 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깨진 유리창과도 같은 이 낙서를 지우자 범죄는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소한 낙서를 지우는 것이 범죄 소굴을 막는 중요한 비법이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있는 작은 낙서들은 어떤 것입니까?

나는 소망이 없어.
나는 부족해. 
나는 학문이 짧아.
돈이 없어.
부모를 잘못 만났어. 
건강이 안 좋아.
나는 운이 없어.
나는 팔자가 세.

이런 원망의 낙서, 미움의 낙서, 오해의 낙서, 거짓의 낙서, 불평의 낙서 내 마음의 작은 낙서를 지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악이 틈 못 타도록 내 마음의 작은 깨진 창을 고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큰 결과를 만드는 작은 일입니다. 이 작은 일에 성실히 임하고 충성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시다.

궁인 목사(호치민 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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