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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은혜 언약’ 위에 세워진 이신칭의는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l 13, 2017 06:35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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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취소되지 않는 은혜 언약, 이신칭의

▲이경섭 목사. ⓒ이대웅 기자
(Photo : ) ▲이경섭 목사. ⓒ이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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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이 은혜 언약이었는가 행위 언약이었는가? 아브라함은 율법을 신실히 준수해서 의롭다 함을 받았는가?

여기에 대해 신율주의자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1)'는 야고보 사도의 말을 인용하며, 아브라함의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 규정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시내산의 율법 언약 보다 430년 앞선 은혜언약이며(창 15:6), 율법 언약이 소급하여 영향을 미칠 수 없었습니다(갈 3:17).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이 은혜 언약이라는 증거는 성경 곳곳에 나타납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언약 대상자로 지목된 것이 그에게 남다른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확인됩니다. 주지하듯 그는 하나님이 진노를 일으키는 우상 제작을 업으로 삼던 사람입니다.

혹은 예지예정론(Doctrine of preknowledge-predestination)자들의 주장처럼, 그에게서 언약의 당사자가 될 만한 싹수가 보여서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75세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창 15:6), 나이 100세에 이르러서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롬 4:19-22),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놀라운 순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종여일하지 못했습니다. 주지하듯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지 10년 후인 85세 때, 인내의 한계와 사라의 종용으로 여종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보았습니다(창 16:3-11). 또 그랄(Gerar) 왕 아비멜렉이 자기 아내 사라를 뺏으려고 하자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아내를 자매라며 유기했습니다(창 20:2-3). 이 아비멜렉 사건은 단지 자기 목숨 부지를 위해 아내를 버린 비겁한 남자라는 낙인을 찍히는 것을 넘어 구속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만행을 막지 않았다면 사라에게서 메시아의 조상(이삭)이 나는 언약 성취가 불가능했을 것이고, 구속사의 맥도 끊겼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행동은 신(信)·불신을 떠나 범부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졸렬한 행동이었을 뿐더러, 메시아의 계대를 잇고자 목숨 걸고(창 38:24) 시부(유다)의 씨를 품었던 일개 여성(다말)의 믿음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신의 행동이었습니다. 그의 실수는 이제껏 그의 믿음의 업적(?)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칭의유보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아브라함이 종말에 칭의를 받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할 만합니다. 성경 역시 아브라함에게는 의롭다고 인정받을 만한 행위가 없었으며, 그가 칭의를 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롬 4:2-3)."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설사 아브라함의 행위가 흠결없이 완전했다고 하더라도, 그 완전함이 칭의에 기여할 수 없다고 말하는 데 까지 나아갑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롬 3:20)." 풀어 말하면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라함 할애비라도 행위의 완전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는 없다는 결언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청교도 '아브라함 부스(Abraham Booth, 1734-1806)'의 말도 같은 어조를 띱니다. "아브라함 같은 승리의 믿음, 고결한 경건, 경이로운 순종의 사람도 자신의 행위로 인해서가 아니라 전가된 의에 의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진정한 노력 혹은 경건한 실체에 의해 하늘의 축복을 누릴 것인가? 여호와의 친구라 불릴 정도의 성품과 행위를 갖춘 사람들에 의해 비하면, 거론할 만한 실천은 없다."

언약은 그 속성상 당사자의 의무 준수를 요구하지만, 타락 후 그것이 불가능해진 인간이 하나님과 맺을 수 있는 구원 언약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은혜 언약뿐이었습니다(고전 11:25).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언약의 조건적 의미를 살리려다, 은혜 언약의 내용인 믿음을 조건으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이 조건화 되면, 그 틈새로 행위가 슬며시 숨어 들어와, 믿음에 행위가 포함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논점의 비약을 거쳐, 은혜 언약은 본격적으로 행위 언약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구원을 받아들이는 손으로 이해할 때, 그런 비약이 불가능해집니다. 여기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5:1)"는 말이, 믿음이 조건이 되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뜻이 아닌, 하나님이 값없이 제공하시는 의를 받아들여(믿어)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도, 구원 조건인 믿음이 충족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아서(믿지 않아) 입니다.

세상의 언약은 두 언약 당사자의 조건 이행을 전제로 맺어지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구원 언약(이신칭의)은 그런 조건적 언약과는 다릅니다. 언약의 속성상 조건의 형식을 갖추기는 했지만,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은혜 언약입니다.

세상 일반의 언약이 사전에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전제적(beforehand) 조건이라면, 은혜언약은 사후의 수납적(receipt) 조건입니다. 은혜언약인 이신칭의에 사족을 붙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의롭다함을 주시는데,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냥 값없이(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값을 지불하고(행위로) 받으려는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인간의 죄나 허물이 이미 체결된 은혜 언약을 폐기시킬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신율주의자들이 예수 믿는 자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시체로 엎드러진 사건입니다(히 3:17).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언약을 받아놓고도 자신들의 불의함으로 그 언약의 실현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오늘에 적용시켜, 예수 믿는다고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라야 한다(마 7:21)는 주장을 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입성을 못하고 광야에서 엎드려진 것은,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맺은 은혜 언약이 폐기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도 지옥에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모세가 지옥에 안간 것이 분명함은,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예수님과 더불어 담화를 나눈 사실에서도(마 17:3) 확인됩니다.

그리고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짐(히 3:17)'을 천국입성의 실패로 보는 것도 오류입니다.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들'은 두 부류로 갈려집니다. 한 부류는 겉으로는 믿는 것 같지만 가룟 유다처럼 믿음이 없어 지옥에 가는 자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예수를 믿기는 했으나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병들고 죽음에까지 이른 자들입니다(고전 11:29-30). 신약에서 계모를 범한 자(고전 5:5),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 삽비라(행 5:5-10)가 죽임을 당한 것이 그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자들이 범죄하여 '시체가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일을 당하더라도, 은혜 언약은 폐기되지 않아 구원에서 탈락되는 일은 없습니다(이병규). 이는 그들이 맺은 언약이 행위 언약이 아닌 은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까지도 죄 사함과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을 통해 맺은 은혜 언약은 어떤 경우에도 폐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정해줍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6-38)."

예수님 당시부터 이제껏 이스라엘 민족이 넘어진 채로 있지만, 여전히 그들을 향한 아브라함의 언약은 유효하며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반드시 일으키심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6-27)."

또한 이스라엘의 한시적 넘어짐과 이방인의 구원이 맞물리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알 때,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은혜 언약의 취소로 몰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11:25)."

이방인의 구원이 성취되면, 곧 이어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회개를 통해 일어설 것입니다.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 11:11-14)."

우리는 성경을 읽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관찰할 때, 지나치게 미시적 안목에서  '죄와 심판'이라는 윤리적 도식만 들이대지 말고, 언약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하나님의 전체 경륜을 조망해야 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그 경륜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하나님은 배교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징치하시고 일시적으로 배척하시기도 하지만, 그들을 영원히 버리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때렸다가 싸매시며, 일시적으로 버렸다가 다시 끌어안으심으로(호 6:1, 사 54:7-8) 그의 언약의 불변성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율주의자들이 은혜 언약을 행위 언약으로 만드는 또 한 경우를 말하고자 합니다. 곧 그리스도인의 언약 의무를 그리스도가 대행해 주시도록 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 왜곡입니다. 성경이 종종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언약'과 동일시함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언약 대행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은 그 대표적인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왕상 8:25)."

이는 솔로몬의 기도로, 만일 '네가 삼가 진실히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의 조건을 성취하면 왕위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언약인데, 이 염원과는 다르게 말년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므로 이 왕위(王位) 약속이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실패로 그 언약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왕국에 관한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호크마).

솔로몬에게 그러하셨듯 우리 역시 무능한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언약을 성취할 수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대행적 언약 성취를 통해 맺어진 언약의 열매를 우리로 따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림자와 실체를 구분짓지 못하는 신율주의자들은 우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대행적 언약준수는 간과하게 만든 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언약 준수에만 사람들을 매달리게 하므로서, 모든 사람들을 언약 실패자로 만들어 죽을 때까지 의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언약의 중보인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성취의 열매를 따먹는 우리는 모두 언약의 성취자들입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알기 쉬운 이신칭의(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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