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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본분 (누가복음 9:57-62)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l 06, 2017 11:3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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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효 목사의 목회 칼럼

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예수님이 비장한 각오로 죽음의 길을 찾아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9:51을 보면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가는 길에 예수님이 쉴 곳을 찾아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으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야고보와 요한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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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감정이 앞서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3:17에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불같은 성격을 지녔음을 나타내는 별명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시는 모든 박해는 이 땅의 죄인들의 죄 값 때문이기에 예수님은 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다른 촌으로 가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 어떤 사람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은 냉담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 하나를 얻기 위해 애쓰시는 예수님이 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어디든 좇겠다고 하는 그 사람에게 이 같은 대답을 하셨을까요?

이 사람은 기복적인 기대감으로 육신적, 세상적 조건의 기대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오히려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사람은 영적 소망을 기대할 가능성조차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영적인 소망뿐이어야 합니다. 천국 가기 위해 근본적인 회개로 성령을 받음으로 부끄러운 자격으로 천국가지 않기 위해 땅에 사는 날 동안 복음 확장을 위한 선교사역에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성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로 천국에 목적을 둔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조건으로 함께 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58절에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부친이 지금 죽어 장사할 때가 아니지만, 부친이 연로하여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으니, 예수님을 따르고 싶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다가 돌아가시면 장례까지 치르고 잘 마무리한 후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말씀하신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말씀하며, 두 번째 ‘죽은 자들’은 육신으로 죽은 자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진리 안에서 거듭나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 산 자이면서 죽은 자에게 매여 살리는 일을 지연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반드시 시행해야할 교훈입니다. 여러분들은 성령으로 거듭나 천국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혼을 살리는 일에 힘써달라는 요청을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맡겨주는 직분과 직책들, 여러 모양으로 맡겨지는 일들을 여러 가지 핑계로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1-2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믿는 사람이 하는 일 중에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하는 일이 있고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일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직장을 나가야 하는 형편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는 고백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6:25-32에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교회를 통해서, 생활은 사회를 통해서라는 이중적인 처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셔서 영원한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하늘 조건으로 책임져 주셨다고 진정 믿어진다면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좇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입니다.

로마서 10:13-15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전도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전도의 사명보다 더 귀하고 복된 사명은 없습니다.

다니엘 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전도회는 전도를 위해 모인 단체입니다. 그 모임에는 죽은 자도 있을 것이며 산 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회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먼저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죽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을 살려 함께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산 자의 본분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61절에는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구원 얻어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쟁기를 잡은 자로 죄악에 찌들어 완악해진 심령의 밭을 갈아 회개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 오던 자였습니다.

디모데후서 2:3-4에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생활을 하면서 가족에 대한 인간관계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영적인 소망의 직분을 어떻게 균형 잡아 감당해 갈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온 가족으로 더불어 멍에를 같이 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면 부부 또는 부모나 자녀가 한 마음으로 함께 감당하고자 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다면 천국 확장과 권세를 위하여 모든 정성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고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육신이 요구하는 세상 조건만 가지고 기복적인 소망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교회는 다니지만 지옥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영적인 것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 직분도 받았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 같지도 않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자신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것을 빌미로 오히려 전도의 문을 막습니다. 이는 저주받은 인생의 모형입니다.

또한 산 자의 자격으로 살리는 일에 힘써 달라는 직분을 받아 놓고도 죽을 일들을 핑계 삼아 살리는 일을 지체하려고 할 때 예수님은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늘 소망을 얻어 놓고도 세상일에 분주하여 하나님의 맡기신 직분을 게을리하고 배임하게 될 때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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