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
(Photo : ) ▲C. S. 루이스.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변증가인 C. S. 루이스(Lewis)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정반대의 저술 두 권을 남겼다. 고통을 이론적·사색적·객관적으로 고찰한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1940)>와, 20년 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깊은 상실감 속에 있는 실제적·경험적 고통에 대한 애절한 독백이 담긴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 1963)>이 그것이다.

7월 3일 서울 반포동 남서울교회(담임 화종부 목사)에서 진행된 '2017 서울 C. S. 루이스 컨퍼런스'에서는 루이스의 저술들을 토대로 '루이스와 기독인의 고통과 기쁨(C. S. Lewis & Christian Pain and Joy)'에 대해 다뤘다.

첫 강의로 '루이스를 통해 본 고통의 구원론적 의미'를 고찰한 박성일 목사(美 필라델피아 기쁨의교회)는 "이 두 권의 책 때문에, 고통에 대한 루이스의 견해는 이론에서 실제로, 사색에서 경험으로 발전됐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라며 "그렇다면 루이스는 사변적이고 차가운 지성인이었다가 진짜 고통을 당한 후에야 인간적인 감성이 되살아났을까"라고 반문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C. S. 루이스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딴 박 목사는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고통과 아주 친한 사람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 마디가 온전하지 못해 어린 시절부터 다른 아이들처럼 손으로 만드는 것을 잘 하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타자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의 편지와 저술은 모두 형이 대신 타이핑해준 것"이라며 "더구나 루이스는 10세가 되기 전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안고 자랐고, 청소년기 역시 학교에서 왕따가 되는 등 비인간적 굴욕감을 앓았다. 옥스포드 예비생이 된 이후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그는 인생의 깊고 깊은 어두움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박성일 목사는 "이처럼 루이스의 삶에서 고통의 문제는 멀지 않았다"며 "루이스가 변증적 성격의 책 <고통의 문제>를 당시 저술한 이유는 고통도 모르는 이론가로서 사색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한 루이스에게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헤아려 본 슬픔>이 논리를 배제한 '감정적 소통'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루이스가 깊은 슬픔 가운데 '슬픔을 헤아려 본' 이유는 감정을 돋구기 위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고통의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내면의 관찰(introspection)'이었다"며 "떠나간 아내에 대한 기억에 집중하면 상실감이라는 슬픔이 몰려오지만, 슬픈 감정에 집중하면 어느덧 슬픔을 객관하고, 그 아픈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킬 수 있다는 논리"라고 전했다.

이후 박 목사는 일반적으로 루이스와 고통의 관계를 다룰 때 자주 언급되지 않는 '희열(Joy) 속에 숨겨진 고통에 대한 이해', 그리고 회심의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죽는(dying to self) 경험인 '회개의 고통'에 대해 다뤘다. 그는 "이 두 가지는 루이스가 이해하는 기독교 구원관에 있어 독특한 면을 보여주나, 오늘날 교회 안에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분"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비교적 예민한 한국교회 안에서도 가난과 질병, 사고와 핍박 같은 고난의 문제뿐 아니라, 신앙의 본질로서 동반되는 내면적이며 영적인 고통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오늘날 아무런 내적 고통을 동반하지 않은 값싼 은혜(cheap grace)의 저속한 종교가 기독교로 둔갑해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17 서울 루이스 컨퍼런스
▲박성일 목사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먼저 '희열(Joy) 속에 숨겨진 고통'에 대해선 "루이스에게 있어 'Joy'는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 경험 중 하나로, '복음의 준비(Praepatio Evangelica)'로 이해될 수 있는 'Joy'는 루이스에게 가장 중심적인 삶의 스토리"라며 "이 경험 속에는 두 가지 측면이 대립적으로 나타난다. 'Sweetness와 Pang'으로 설명돼 있는데, 하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달콤함, 포근함, 행복감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것이고, 다른 측면은 마치 아기를 해산하는 산모의 통증처럼 갑작스럽게 강렬하게 찾아오는 아픔, 깊이 찔림을 당하는 것 같은 고통"이라고 설명했다.

 

'Joy'의 출처는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Wordworth)의 시 'Surprised by joy(루이스의 책 <예기치 못한 기쁨> 제목)... impatient as the Wind'로, 여기서 'Joy'는 죽은 딸에 대한 기억이 갑작스럽게 강한 바람처럼 불어 닥치는 것"이라며 "'Sweet-Sorrow', 딸에 대한 기억은 너무 달콤하고 행복하지만, 그의 곁을 떠나간 딸에 대한 갈망은 고통스러운 절망감이다. 바로 이것이 인류의 중심적 경험이라고 루이스는 주장하는 것이고, 어찌 보면 이것이 '실낙원'적 인간의 존재적 갈등이고, 어거스틴이 말하는 'restless heart'이고 파스칼의 'God-shaped vacuum'"이라고 밝혔다.

이민자인 그는 "'Joy'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현 주소가 참된 본향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으로, 이는 이민자들이 느끼는 displacement'의 개념"이라며 "한국 역사 속에서 남북의 분단과 전쟁을 통해 고향과 가족을 떠나 생소한 자리에서 생존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모습이나, 해외로 이민을 떠나 문화적·언어적·인종적 이질감 속에 살아야 하는 모습과 연결점이 있다"고도 했다.

박 목사는 "이러한 고통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해결점을 향한 영혼의 움직임"이라며 "인간의 본질적 모습 속에 담겨진 영원에 대한 갈망, 그리고 쉽게 안주하지 않는 인간 영혼의 집요함, 이런 것들이 결국 이 갈망의 카타르시스를 향해 우리의 영적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고,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답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우리 영혼의 고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이 고통에 대한 이해가 없는 신앙관은 현세적 '복'을 복음의 목적으로 착각하게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현세적 '복'은 'Joy' 속에 숨겨진 고통의 의미를 망각하는 것"이라며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위로하고 만족시킬 수 없는 영혼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 답을 줄 수 없는 기독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참 믿음, 참 복음의 영역에 접근하지 못한 근시안적 종교에 불과하다"고 했다.

 

2017 서울 루이스 컨퍼런스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둘째로 '회심의 고통'에 대해 "루이스는 회심의 기쁨을 인정하면서도, 그 행복감은 잠시일 뿐 사실상 회심의 과정은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며 "왜냐하면 회심의 중심은 회개이고 참된 회개란 항복(surrender)이며 자신에 대한 죽음(death of self)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성일 목사는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열 수 없으므로, 루이스의 구원론에 있어 이것은 핵심적이다. 루이스에게 회심은 죽음을 동반하는 것이나, 결국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기에 이 죽음은 '선한, 좋은 죽음'"이라며 "그러나 죽음 자체는 자신을 포기하는 불안감과 상실감을 깊이 느끼게 하는 경험이다. 인간의 영적 질병은 자기 중심성(egocentrism)으로, 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근본적·근원적 해결점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 목사는 "루이스에게 죄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 사랑(self-love) 또는 자기 보전(self-preservation)'으로, 이런 자기 사랑의 죄는 하나의 행동 또는 연속적 행동들뿐 아니라 인간의 타락한 근성 속에 영구히 심겨져 있는 마음의 방향성"이라며 "타락한 근성으로 인간의 영적 의지가 약해진 정도가 아니라 망가지고 부패됐다는 것이 루이스의 죄성에 대한 이해였기에, 진정한 회심은 회개 즉 자아 또는 자신의 뜻을 조물주께 온전히 이양하는 항복(surrender)이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항복은 인간의 자연적인 종교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의 타락한 근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그러므로 회개란 자신의 안위와 목적에 대해 죽는 것이다. 자신을 향한 여정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로부터 참된 안식과 기쁨을 누리는 길"이라고 전했다.

박 목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한 죽음'은 선한 죽음이지만 전혀 편안할 수 없다. 이러한 불편함은 회심뿐 아니라 성화의 과정 그리고 육체적 죽음이라는 개인적 종말에 있어서도 고통으로 드러난다"며 "그러나 이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통과 나눔의 삶으로 들어가게 하는 당연하며 비껴갈 수 없는 길이다. 십자가 죽음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humiliation)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룬 구원을 '값싼 은혜'로 둔갑시키는 잘못된 구원관에 대한 엄중한 대안으로 C. S. 루이스의 구원론은 이 시대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큐리오스인터내셔널(대표 정성욱 교수)과 워싱턴 트리니티연구원(원장 심현찬) 주최로 매년 열리고 있는 '서울 C. S. 루이스 컨퍼런스'는 C. S. 루이스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따라 복음주의적 경건을 추구하는 신앙과 목회, 나아가 '성도-학자, 목회자-학자' 모델을 사모하는 한국교회의 동역자와 차세대를 격려하고 갱신과 개혁을 도모하고 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이후 이인성 교수(숭실대 영문학과)의 '루이스의 문학과 갈망(sehnsucht)', 정성욱 교수(美 덴버신학교)의 '루이스와 신정론의 다양한 모델들', 심현찬 원장의 '루이스의 생애에 나타난 고통과 기쁨' 등의 발제가 진행됐다.

C. S. 루이스(1898-1963)는 영국의 문학가이자 문학비평가, 기독교 변증가로 <순전한 기독교>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시편 사색>, <인간 폐지>, <영광의 무게> 등의 직접적 기독교 저술과 <나니아 연대기>, <순례자의 귀향>, <실낙원 서문>, '우주 3부작' 등 문학작품들을 남겼다.